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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던져 주십시오

복음과 영적 전쟁 1

by Logos Brunch

저는 운동을 잘하지 못합니다. 왜 못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게으릅니다. 몸을 움직여서 뭔가를 한다는 게 귀찮고, 운동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두 번째 연습을 싫어합니다. 무슨 운동이든 처음 기초를 다질 때부터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 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세 번째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운동을 못하니까 게임만 하면 언제나 뒤처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난 승부에 연연하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운동과 담을 쌓다 보니 어느새 근력도 지구력도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살다 간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는 위기감에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저는 운동을 잘하지 못하지만, 구경하는 것은 좋아합니다. 운동 경기를 구경하다 보면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운동하다 보면 꼭 다칩니다. 격투기가 아니더라도 축구나 농구나 그 어떤 운동이든 부상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최고의 선수들인데도 쓰러지고 넘어지고 피를 흘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처와 부상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이를 악물고 재활 훈련을 하여 어느새 다시 복귀합니다.


저는 영적 전쟁도 운동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픔, 상처, 죽음, 고통, 눈물, 헌신, 동료애, 인내, 등. 자신은 한 데도 안 맞고 적만 일방적으로 때리고 무찌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가 운동을 싫어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게으르고, 연습도 없고, 상처 받고 고통당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약한 그리스도인, 뒤로 숨어 버리는 그리스도인, 비겁한 그리스도인으로 남게 됩니다. 당당한 그리스도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 멋있는 그리스도인, 향기 나는 그리스도인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은 교회를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세상 앞에서 교회는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기에 바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복음의 능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할 우리 자신이 무능력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근력과 지구력과 전투력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요? 최악이라고 하는 순간, 늦었다고 하는 순간이 다시 시작할 순간입니다.


프로선수들도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처방은 비슷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점검하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나 살펴봅니다. 기초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않고 쌓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곡산부사로 임명받은 후 부하 직원들을 모아 각자 역할을 주었습니다. 무너진 정당 건물을 신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약용은 말했습니다.

“집 지을 때 터를 굳게 다지지 않기 때문에 단청이 채 마르기도 전에 주추가 먼저 내려앉는 것이다.”(정민, 48)

다산은 꼬박 석 달간 터를 다지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터 다지는 데 석 달 걸렸고 짓는 데 석 달 걸렸습니다. 다산은 짓는 것만큼이나 기초를 다지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졸속 공사, 부실 공사가 무엇입니까? 사람들 눈에 보기 좋게 하려고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공사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어떠합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한 때 세계 제일 큰 교회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이었습니다. 속은 문드러지고 썩어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양만 번드르르 한 바리새인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힘을 주시며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 마틴 루터 한 사람을 사용하여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습니다. 분명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칠천 명이 있습니다. 불을 던지면 일어설 자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붙은 사람 한 명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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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뼈다귀들만 가득한 에스겔 골짜기에 여호와의 생기가 임했을 때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생명을 잃은 뼈다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의욕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불을 던져 주십시오. 루터처럼 불을 토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1. 정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파주 : 김영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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