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영적전쟁 6
사단은 어떤 존재일까? 흔히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스위스 바젤의 구약학 교수인 아이히로트(Walther Eichrodt, 1890-1978)는 이렇게 말했다. “‘사단’이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어근의 적절성은 이 인물이 이방으로부터 차용해 온 것임을 거부한다. ‘소추하다’, ‘싸우다’, ‘고발로써 공격하다’, ‘고발하다’를 뜻하는 동사 ‘사단’과 ‘적대자’, ‘대적자’를 뜻하는 명사 ‘사단’은 모든 인간 존재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Eichrodt, 226).
이원론은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세계를 해석한다. 이원론은 선을 대표하는 하나님과 악을 대표하는 사단이 대등한 관계에서 싸움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때로는 악의 힘이 더 강하여 선을 이기고 핍박하고 억누르는 것처럼 이해할 때도 있다. 세상의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대중매체는 오히려 사단의 힘이 더 강력함을 자주 보여준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마저 세상 사고방식에 휩싸여서 악한 힘의 권세 앞에 두려워 떨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단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가 타락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듯이 천사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시퍼(Lucifer, 계명성)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하였다(사 14:13-14). 사단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였다.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결과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다. 사단은 명백히 피조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맞대결할 능력이 없는 자이다.
선과 악, 하나님과 사단을 대등 관계로 놓고 보려는 이원론은 명백한 잘못이다. 더욱이 사단의 권세 앞에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귀신론은 더욱 잘못이다.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작고 사소한 문제마다 사단이 역사한 것으로 이해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더러운 귀신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막 1:24). 사단의 세력은 감히 하나님과 대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을 대적한다. 사단은 누구보다 사람을 위하는 척 접근하면서 사실은 사람을 망가뜨리고 파괴하여 멸망시키려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단의 주공격 대상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이 집어삼킬 자를 찾아 헤맨다(벧전 5:8). 그러나 사단의 공격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29). 사도 바울도 이점을 강력하게 선포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그렇다고 사단의 공격이 무력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망가뜨리려고 한다. 그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님을 아직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이다. 바울은 사단을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였다(엡 2:2). 사단은 주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한다. 그들 가운데 역사하여 세상의 문화 곧 사단의 문화가 바른 것이라고 선전한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 풍조를 따르게 한다. 따르지 않는 자는 주류 사회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한다.
사단은 세상을 장악하고 그 권세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정치인들을 사용한다. 바울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같은 무리로 묘사하였다(엡 6:12). 기본적으로 내가 세상의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아무리 목사요 장로요 전도사라 할지라도 정치판에서 뒹구는 사람은 사단의 하수인이 되기 쉽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인들은 언제나 권력을 추구하기에 사단의 먹잇감이 되기 제일 쉽다. 사도 바울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역사책을 진지하게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사단은 세상 권세와 물질을 가지고 세상의 풍조와 문화를 만들고 그 앞에 굴복하라고 요구한다. 정치적으로 좌우 어느 한쪽에 머리 숙이라고 요구한다. 물질적으로 자본주의 앞에 머리 숙이라고 요구한다. 영적 전쟁은 능력 사역(엑소시즘, 치유)만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사단이 만들어 놓은 세상 나라, 세상 문화, 세상 풍조와의 싸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문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Walther Eichrodt, ‘구약성서신학 2’(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박문재 옮김, 서울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