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대 버거 중 하나인 '인 앤 아웃'(In&Out)은 음료수 컵 밑바닥에 눈에 보일 듯 말 듯 성경 구절을 써 놓았다. 모르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성경 구절을 써넣으려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써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유가 궁금하였다.
나에게 골프를 가르쳐주는 사이먼 홍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오래전 그는 음식점을 시작하면서 사람들 눈에 잘 띄게 컵 표면에 말씀을 인쇄하였다. 말씀이 새겨진 컵은 사이먼 홍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는 자기 음식점이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사업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손님들은 대체로 좋아하였지만, 어느 날 한 명이 불만을 터트렸다. “컵에 성경 구절을 붙여 놓는 것은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나 같은 불신자는 음료를 마실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기독교가 주류인 미국에서 성경 말씀을 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하였다. 고민하던 사이먼 홍은 '인 앤 아웃'에 메일을 보냈다. 오랜 사업 경험이 있는 '인 앤 아웃'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친절하게도 답은 바로 왔다. “컵 밑바닥에 성경구절을 써넣은 이유는 말씀을 찾는 자(Seeker)를 위함입니다. 보물은 그 값어치를 아는 사람에게 보물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말씀은 보물이 아니라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러 와서 마음이 불편하면 안되지요.”
'인 앤 아웃'은 두 가지를 생각하였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찾는 자이다. 어디에 숨겨 놓아도 보화를 찾아내듯이 말씀을 찾아내고 기뻐하기 마련이다. 둘째, 인 앤 아웃은 불신자를 배려하고 존중하였다. 말씀은 강요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기독교는 식민지 개발의 선봉장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였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쓰지 못할 방법은 없었다. 군대의 힘이건, 물질의 힘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라고 생각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독교는 사랑과 자유의 종교이지만 이슬람은 무조건적 굴복을 요구하는 사납고 비합리적 신을 중심으로 하는 복종과 폭력의 종교라고 생각한다”(Volf, 134). 그러나 세상의 평가는 다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세계 종교 중 가장 막무가내식 전도를 하는 종교는 기독교라고 하였다(Volf, 133).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빨간 글씨로 쓴 전도 문구를 보면 가슴이 섬뜩하다. 불신자 중 누가 그 글을 읽고 예수를 믿을까? 아우성치는 고함은 전도가 아니다. 고성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자신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 오늘날 기독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는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랑하셨다. '서번트 리더십'을 쓴 제임스 헌터(James C. Hunter)는 존중을 이렇게 정의했다. "존중은 타인을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것이다"(Hunter, 64%).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고 존중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폴 그리피스(Paul Griffiths)와 델마스 루이스(Delmas Lewis)는 타 종교인, 불신자를 대할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전통의 세계관에 잘못된 요소가 있음을 - 이성적인 근거에서 - 믿으면서도 그 대표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가능하다”(McGrath, 232).
“존경하는 마음자세는 참으로,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기회까지 제공한다”(Shenk, 80). 상대방에게 마음(복음)을 전달하려면, 반드시 존중과 신뢰를 쌓는 방식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사진작가 데이비드 두쉬민(David Duchemin)은 사진 찍을 때의 자세를 말하였다. “사진에 담고 싶은 사람에게 존중을 보여주려면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찍고 달아나는 식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속도를 늦추고, 함께 차를 마시고, 질문을 던지면서, 언어의 장벽이 만만치 않더라도 대화의 노력을 해야 한다” (Duchemin, 228)
모르는 지역에 가서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해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관계를 맺은 후 사진을 찍는다. 오늘날 기독교는 불신자들을 존중하는가? 한 영혼을 정말 소중히 여기는가? 복음을 전하고 싶은 성급함 때문에 혹여 함부로 대하진 않는가?
도덕철학자 스티븐 다윌(Stephen Darwall)은 존중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평가 존중이고 다른 하나는 인정 존중이다. 평가 존중은 누군가의 업적이나 덕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인정 존중은,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가지는 가치에서 나온다(Volf & Ryan, 288). 평가 존중은 위험 요소가 많다. 무엇이 존중할 가치가 있는지, 누가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어떤 가치 기준으로 남들을 평가하는가? 예수님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셨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자, 나환자, 민족을 배반한 세리까지도 예수님은 그들을 귀히 여기셨다.
“존중은 신사의 형식적인 예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다는 자각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존중이다”(Osborne, 74%). 설령 신앙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 사람을 만날 때라도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친다고 하실 때에도 그는 왕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하였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단 4:19). 이것은 다니엘이 바벨론에 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Volf Miroslav, ‘인간의 번영’(Flourishing), 양혜원 옮김, 서울 : IVP, 2017년
Volf Miroslav & Ryan McAnnally-Linz, ‘행동하는 기독교’(Public Faith in Action), 김명희 옮김, 서울 : IVP, 2018년
James C. Hunter, ‘서번트 리더십’(The Servant : A Simple Story About the True Essence of Leadership) E-book, 김광수 옮김, 서울 : 시대의 창, 2013년
Daivd W. Shenk, ‘무슬림과 친구 되는 열두 가지 방법’(Christian. Muslim. Friend), 이창산 옮김, 논산 : 대장간, 2018년
Duchemin David, ‘프레임 안에서’(Withein the Frame : The Journey of Photographic Vision), 서울 : 정보문화사, 2014년
Larry Osborne,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Thriving in Babylon) E-book, 정성묵 옮김, 서울 : 두란노, 2016년
McGrath Alister E.,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A Passion for Truth), 김선일 옮김, 서울 : IVP,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