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Aug 04. 2015

목사 아들

아버지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교회 개척할 때 우리는 삯을 셋방에서 살았다. 

비가 오면 집으로 물이 들이쳐서 온 가족이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내야 하는 반지하 방이었다. 

시골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서울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고 나면 모두 분식집에 가서 주점 부리를 사 먹었다. 

주머니에 돈이 없던 나는 그런 아이들을 뒤로하고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와야만 했다. 

그래도 가난한 것은 견딜 수 있었다. 

조금 불편하다고 못 사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교인들이 자신들도 잘 지키지 못하는 도덕과 규범을 목사 아들에게 요구할 때 참 힘들었다. 

어릴 때 나는 촐랑거렸고, 까불기를 잘하였다. 

그러면 교회 장로님과 집사님들은 “목사 아들이 그러면 쓰냐!” 하며 야단을 쳤다. 

나는 그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속에 강한 반발심이 생겼다. 


1. 아버지가 목사지. 내가 목사냐?

2. 목사 아들은 사람 아니냐? 너의 집 아이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아이다. 

3. 너의 집 아들에게 적용하지 못하는 규범을 왜 나에게만 적용하느냐?

4. 도덕과 규범을 말하는 너희는 그대로 살아가느냐? 가만 살펴보면 자신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왜 어린 나에게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우느냐!


사춘기가 되면서 나는 기독교의 가식과 위선 앞에 치를 떨기 시작하였다. 

말만 앞세우지 하나도 실천하지 않는 도덕주의자, 율법주의자, 신앙주의자들.

겉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신앙인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보다도 인간 냄새만 풍기는 사람들.

나는 그들 모두가 다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목사인 게 싫었다. 

나는 기독교가 싫었다. 


그때 허무주의를 말하고 자살을 권장했던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글들이 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신은 죽었다. 누가 죽였느냐? 우리가 죽였다. 위선적인 신앙인들인 너희가 죽였다.” 

니체의 말이 내게는 복음처럼 들렸다. 


목사 아들이라고 자동으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목사 아들, 어려서부터 규범과 틀 속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목사 아들이 빗나가기 쉬운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목사 아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민물 매운탕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