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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19. 2020

새로운 피조물

로이드존스 설교 새롭게 읽기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 마틴 부버 같은 사람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매우 좋아합니다. 

인도의 간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인격을 찬양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인격은 탁월합니다. 

아무리 불신자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 여지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nOIyvIEk8&t=101s

간디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응용해서 샤타그라하 운동, 즉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과연 그러한 가르침이 효과가 있었을까요?

가르침으로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인도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이렇게 분열되었습니다. 

가르침이 훌륭하면 감동은 받지만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직접 가르친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죄성이 숨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만한 힘이 부족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가르침보다 행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므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다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킨 것과 못 지킨 것을 비교하여서 어느 쪽이 클까를 하나님께서. 측정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완전한 착각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법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법을 잘 지키면 칭찬할 만하지만 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모든 법을 잘 지키다가 단 하나라도 법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그는 죄인이 됩니다. 

그게 바로 법의 속성입니다. 

법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법을 강조하는 것이나 도덕을 강조하는 것이나 전통과 규례를 강조하는 것은 모두 비슷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롬 3:10-1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을까요?

어린이들은 노래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만약 길이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 도리를 발견한 이후 그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십자가는 윤리와 도덕의 원리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 대신에 희생하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곳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원리는 곧 사랑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에게 법과 도덕의 원리도 있지만 또 다른 원리 사랑의 원리가 있음을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은혜의 원리도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과 회복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 은혜의 원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물론 아직 부족하고 모자라고 넘어지기도 잘하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여 아장 거리면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욕합니다. 

교회만 다니면 다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것밖에 못하느냐?

말씀대로 살아야지. 최소한의 도덕과 규칙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의 책망을 인정합니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인 진실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아직 완벽하게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것 사실입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실수하고 심지어 죄를 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장걸음을 걷다가 넘어진다고 해서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십자가 부여잡고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자라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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