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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05. 2020

영웅은 사라졌습니다.

신학대학에 입학했을 때 존경하던 목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높은 자리보다는 낮은 자리에 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마치 홍길동 전에 나오는 활빈당 같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 남부 지방의 농민들이 의병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활빈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층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 분노했습니다. 

어떻게든 권력과 재력을 유지하려고 일본에 아부하는 모습이 역겨웠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상황을 더욱 가속화하려는 그들이 미웠습니다. 

비록 활빈당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상적인 사회와 국가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조금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입니까?

기득권층에 아부하고, 기득권층에 기생하면서, 자기도 더 잘 살아보고, 더 유명해지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는 것입니까?

신학교를 입학하면 언제나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물론 졸업식 때도 그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뉘앙스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입학 때는 순교하는 심정으로 불렀습니다. 

지옥 불구덩이에라도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졸업식 때는 달랐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골라잡아 가오리다”

기왕이면 큰 교회 부교역자가 되고 싶고, 기왕이면 성공하고 싶은 게 졸업생의 마음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공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큰 교회 사역하고 싶은 속물적 근성이 꿈틀거리며 일어설 때였습니다. 


그때 빈민촌에 들어가서 기꺼이 젊음을 바친 그 목사님은 우리에게 영웅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불같이 일어나는 속물근성을 향하여 강하게 책망하던 그는 존경받는 리더였습니다. 

신혼시절, 그분이 세운 교회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그분을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이 책을 출간할 때마다 사서 읽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그 분의 이름이 점점 잊혀 가던 어느 날, 그분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서 있는 자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기득권층 옆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의 교회는 엄청난 대형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낮은 자리, 비천한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높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영웅은 사라졌습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의 길은 이 세상이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런 ‘상향적인’ 길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끝나는 ‘하향적인’ 길입니다. 

미래 크리스천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힘과 지배력의 리더십이 아니라 무력함(powerlessness)과 겸손의 리더십이며, 그 속에서 고통받는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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