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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07. 2020

필리핀 노숙자는 살로메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

미국 풀러 신학교의 파스칼 바젤(Pascal D. Bazzell) 교수는 1998년부터 2014년까지 OMF 소속 선교사로 필리핀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필리핀 다바오 지역에서 노숙자 사역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마가복음을 읽었다. 그는 노숙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노숙자들에게 성경을 배웠다. 그는 노숙자들이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귀담아듣고 노트에 받아 적었다. 보통의 선교사들과는 정반대였다.

https://youtu.be/nN9VmtXpFIM

일반적으로 선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성경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기독교 문화라는 선진 문화를 가르친다. 사실 그건 기독교 문화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문화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문화가 있고, 처한 상황이 있는데 그건 미개하다고 일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가르치다 보니까 주장하게 되고, 주장하다 보니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다.


파스칼 교수는 태도를 바꾸었다. 그들이 무어라 말하는지 귀 기울였다. 한 번은 노숙자들과 함께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춤춘 이야기를 읽었다(막 6:17-29). 헤롯은 기뻐하여 살로메에게 말하였다.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막 6:23)

살로메는 어머니와 상의한 후 ‘나라’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 필리핀의 노숙자들은 이 본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파스칼 교수는 몹시 궁금했다.


매일같이 먹을 것을 구걸하는 노숙자들이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자면서 잠시 멈추어 선 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한 푼 달라고 하였다. 그들에게 제일 급한 것은 돈이고 먹을 것이었다. 바젤 교수는 노숙자의 답이 어떻게 나올지 짐작했다. 살로메의 요구가 바보 같고 나라의 절반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세속 자본주의에 깊이 물든 파스칼 교수의 착각이었다.


노숙자들은 한결같이 분노하면서 소리쳤다.

“당연히 세례 요한의 목이지요”

“아니 왜 세례 요한의 목입니까?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세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かお)가 없습니까?”

“우리도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지만 누가 우리 가족을 욕한다면, 참을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때때로 도둑질도 하고 잘못도 범하지만, 누가 우리의 잘못을 들어서 가족을 욕보인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의 멱을 딸 것입니다.”


파스칼 교수는 크게 깨달았다. 먹을 것이 없어 매일같이 구걸하는 노숙자도 사람이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음식과 돈만 주면 다 되는 줄 생각했다. 그게 선교라고 생각했다. 물론 노숙자에게 음식과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사람으로 대우하고 따뜻하게 다가와 주는 사람이 필요하였다. 자기 손을 잡아주고, 자기들의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선교사라는 사람들이 와서 먹을 것 주고, 돈 주는 것 고맙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그저 구제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엉망이라도 , 귀 기울일 줄 아는 선교사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리를 들어주고자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 폼 잡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구제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공감하려고 오셨다. 그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다. 기꺼이 우리 앞에 무릎 꿇으시고 발을 씻어 주었다.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따귀를 맞는 경험을 하면서 모욕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셨다. 그리고 죄로 가득하여 멸망할 짐승 같은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도 사람이다.”

“너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너희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너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한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어떤 짓을 하고 있나? 돈 있다고, 문화가 조금 수준 높다고,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지 않나? 조금 안다고 가르치려고 덤벼들지 않나? 선교한다면서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지 않나? 세상에 손가락질하고, 세상을 비판하고, 세상을 정죄하지 않나? 그건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다.


팀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바른 교리를 고수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회개, 기쁨 영적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는 방식으로 복음이 소통될 수도 있다. 이것이 일어나는 한 가지 방식은 죽은 정통을 통해서다. 교리적 정통성에 대한 우리의 교만이 자라나서 바른 교리와 바른 교회 관습들이 일종의 공로 의(works-righteousness)가 되는 것이다. 물론 교리와 실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중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 안에서 자기 의(self-righteousness)나 타자에 대한 조롱과 멸시, 논쟁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칭의 교리를 고백하면서도 강한 율법주의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지이다.”


파스칼 교수는 그들과 함께 읽었던 마가복음을 정리하여 ‘도시 교회학’(Urban Ecclesiology : Gospel of Mark, Familia Dei and a Filipino Community Facing Homelessness)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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