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야기 5
아볼로는 장사와 종교 교육을 겸하면서 돌아다니는 이동 상인이라는 유형의 나그네 유대인이었다[1].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말씀을 정확히 깨닫게 되었고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그가 자기 본업에 따라 아가야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우리는 매우 기뻐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제안했다. 기왕 아가야까지 갈 것이면 조금 더 내려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고린도를 떠나온 후로 그들의 소식이 궁금하였기에 편지를 써서 아볼로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아울러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볼로를 사도 바울과 나를 대하는 것처럼 대접해 달라고 하였다.
과연 아볼로는 고린도를 방문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힘있게 증거하였다. 사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서 알레고리 해석을 처음 주창한 필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말에 능통하였다. 고린도 교인들은 아볼로의 설교를 좋아하였고, 바울 역시 아볼로가 하는 고린도 사역을 칭찬하였다.
아볼로가 떠나간 뒤 얼마 되지 않아 글라우디오 황제(Claudius, 41-54)는 재혼한 처 아그립피나(Agrippina)에 의해 독살당해 죽었다. 유대 그리스도인을 쫓아내었던 글라우디오가 죽었다는 소식에 우리는 급히 로마로 건너갔다. 로마에는 우리 집이 있고, 남아서 핍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들은 예배를 잘 드리고 있을까? 지도자 없이 흩어지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근심이 가득하였지만, 주님께서 그 어떤 인간 지도자보다 그들을 잘 보살펴 주리라 믿었다.
다행히 로마로 향하는 뱃길은 순탄하였다. 로마에 들렀을 때 아시아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에배네도가 우리를 맞이하였다[2]. 우리는 에배네도와 함께 로마 교회를 재건하였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와 달리 새로 황제가 된
네로는 아직 기독교를 핍박하지 않았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이 모여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로마 교회가 재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긴 편지를 써 보냈다. 바울은 우리와 함께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그때 이야기를 언급하였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바울은 우리의 진정한 동역자였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에는 계급이 없다.
우리는 순전한 마음으로 팀 사역을 하였다. 바울은 말씀을 증거하는 자로서 역할을 하였고, 나와 남편 아굴라는 공동체를 돌보는 사역을 주로 하였다. 서로가 믿고 의지하였기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함께 하였다. 앞서 바울이 한 말은 아마도 에베소에서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폭동을 일으켰을 때, 남편이 바울을 온몸으로 감싸 안으며 그 폭도들의 손에서 건져준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3]. 설령 그가 사도 바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를 위한 사랑과 희생은 누구라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 그리스, 로마의 모든 교회는 같은 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협과 핍박 속에 살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생명을 걸고 사랑하며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고 실천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교회는 말씀과 교제와 찬양과 감사와 예배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이루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신앙 공동체를 세계 곳곳에 세우기를 소망한다. 우리를 부르시는 자리가 있다면 어디든 주저함 없이 달려갈 것이다. 로마 교회는 날이 갈수록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고 부흥하였다. 불행하게도 글라우디오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네로도 점점 그 야만성을 드러내었다. A.D.64년 대화재가 발생하자 로마에 흉흉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네로가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하여 고의로 불을 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결국, 가장 약한 우리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예전 글라우디오 황제 때보다 더 큰 핍박이 찾아왔다. 우리는 더 이상 로마 교회를 이끌 수 없었다. 물론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 전파 사역을 할 수도 있겠지만, 순교만이 답은 아니다.
아직도 약한 신앙 공동체가 너무나 많다. 특별히 아시아에 두고 온 에베소 교회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마침 에베소 교회를 지도하던 디모데에게서 연락이 왔다. 함께 사역하자는 초청이었다. 우리는 다시금 제2의 고향 로마를 등지고 에베소를 향해 떠났다. 주님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신앙 공동체를 세우라고 하신 대로 우리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
에베소뿐만 아니라 어디든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나아갈 작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남편의 고향인 본도에도 들려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4].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 앞으로 어떻게 열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이끄심에 순종하여 나아갈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에베소에서 디모데와 함께 할 사역도 하나님께서 분명 선하게 이끌어 주실 것이다.
1) F.F. Bruce, “바울 곁의 사람들”(The Pauline Circle), 윤종석 옮김, 서울 : 기독지혜사, 56쪽, 2000년
2) 롬16:5
3) 행19:23-41
4) 전설에 의하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본도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다시 로마로 와서 복음 전하다 순교하였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은 7월 8일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다. Gien Karssen, “믿음의 여인들 1”(Her Name is Woman), 양은순 옮김, 서울 : 말씀사, 1980년, 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