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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15. 2020

루터의 폭력성

모두가 알다시피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 인물입니다.

그는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 서민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할 때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후대 성경 해석의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교회 개혁 뿐만 아니라 교육, 음악, 미술까지 다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성경해석에 중세의 영향이 남아 성경을 알레고리칼한 영적 해석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나쁜 점은 폭력성입니다.

그가 번역한 성경을 읽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농민들이 반응하였습니다.

끝없는 수탈과 압정에 견디다 못해 농민들은 봉기하였습니다. 

그들은 루터에게 자신들을 지도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미 그들의 통치자인 선제후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루터는 농민들이 자기 말을 무조건 들을 것으로 예상하고 설득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민의 현실을 외면한 그의 설득은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루터는 설득을 포기하고 오히려 농민들을 제압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는 1525년 ‘도적질하고 살인하는 농민 강도 떼들에 대항하여’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영주에게 살인하고 약탈하는 농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할 수 있다면 찔러라. 몽둥이질하라. 그리고 목을 졸라라. 이로써 너희에게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너는 성스러운 죽음을 결코 맞이하지 못하리라. 지금 시대는 얼마나 놀라운가! 다른 사람들은 기도로서 천국을 맞이할 때, 너희는 제후의 당연한 폭력에 의해서 피 흘리며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루터는 농민들이 종교개혁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들을 저주하였습니다.

농민들은 영혼이나 육신이 10번 이상의 죽임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따르지 않고, 자기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 자는 죽여도 좋다는 생각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유대인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는 처음엔 유대인들에 대해 상당히 옹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유대인들도 참된 복음을 알면 예수를 믿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기독교로 개종하는 유대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돌변하였습니다.


1543년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에 대하여”를 쓰면서 유대인 탄압을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첫째, 그들의 회당들과 학교들을 불사르고, 불사를 수 없는 것들은 매장하고 흙으로 덮을 것 ...

둘째, 나는 또한 그들의 집들을 무너뜨리고 파괴할 것을 권고한다 ...

셋째, 나는 모든 그들의 기도서들과 탈무드 저서들을 몰수할 것을 권고한다. 그 안에는 우상 숭배, 거짓, 저주, 신성모독을 가르치고 있다 ...

넷째, 나는 앞으로 그들의 랍비들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할 것을 권고하며, 이를 어기면 생명과 신체를 잃게 할 것을 권고한다 ...

다섯째, 나는 유대인들에게는 노상에서의 안전 통행권을 완전히 폐지할 것을 권고한다 ...

여섯째, 나는 그들에게 고리 대금업을 금지하고 모든 현금과 은금을 빼앗아 보관할 것을 권고한다 ...

일곱째, 나는 젊고 튼튼한 유대인 남녀들이 손에 도리깨, 도끼, 괭이, 삽, 실감개 대, 물레가락을 주어 이마의 땀으로 빵을 벌게 할 것을 권고한다.


그는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는 자기가 생각하는 이신칭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부스러기 서신이라 불렀으며 구약성경의 에스더서는 유대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마땅히 빼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왕국과 왕실에 동화되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어하는 에스더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힘을 썼지만, 기본적으로 이방 불신 세계에서 민족적인 안녕과 평화를 추구한 것이지 결코 유대 민족 국가의 부활을 꿈꾼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에스더서는 유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책이 아닙니다. 


아무튼 루터는 자기 생각과 맞지 않을 때, 또 자기의 설득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 그는 폭력성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폭력성을 히틀러가 그대로 이어받아 유대인 몰살을 시도하였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보수 기독교가 루터의 폭력성을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손가락질하고, 정죄하고, 파괴하고, 몰살하려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모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https://youtu.be/Y1-DIADOR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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