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Oct 17. 2020

슬로브핫의 딸들

구약 성경 민수기 마지막 부분에 특별한 여성 5명이 등장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입니다.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다 입니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27장 1절에서 11절까지와 36장 전체에 걸쳐 이 여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성경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땅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에겐 아들은 없고 딸만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여성에게 재산 상속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광야 생활할 동안 재산 상속과 같은 일이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여자에게 상속권을 주지 않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도 관습적으로 그리 생각하지 않았나 합니다.

모세가 열두 지파에게 땅을 나누는 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분배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슬로보핫의 딸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서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민27:3-4)


이 여자들은 아주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보호해줄 남성이 없는 여성은 사회 최저 빈곤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이방 나그네를 특별히 돌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것만 해도 당시 주변 나라에 비하면, 엄청난 사회복지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아마 요즘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사회 안전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오빠나 남편이 없던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제 최저 빈곤층으로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러한 사회 복지 시스템에 기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갈 유산으로서의 자기들에게 땅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지도부는 모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관습법으로는 말도 안 되는 요구입니다.

여성의 권리가 인정받으려면, 그때로부터 수천 년이 지나 현대에 이르러야 겨우 선거권, 상속권을 받습니다.

4천년 전 고대 사회에서 이런 요구는 혁명적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답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

이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에는 아들이 없이 죽으면 딸이 유산을 상속받는 법을 만들었습니다.(민27:8)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혁명적이지요?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성경학자는 여성의 경제권을 확보한 쾌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을 보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가 모압 평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입니다.

땅은 한 평도 없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슬로브핫의 딸들이 앞으로 주어질 땅에 대하여 공연한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성경에 슬로브핫의 딸들 이야기를 27,36장 두 장에 걸쳐서 쓸 이유가 하나도 없겠지요.


민수기 26장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고 땅을 분배합니다.

이건 앞으로 가나안 땅에 세울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설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나라는 지파가 서로 균등하게 땅을 분배받고 동등한 역할을 감당하는 지파 연합 공동체 국가입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한 계급사회로 조직된 이집트에서 제일 하층민이었던 노예였습니다.

그들은 계급 사회가 아니라 평등한 사회, 모두가 함께 연합하여 공동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민수기 26장은 그 설계도입니다.

그때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나라에 여성이 서야 할 자리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한 여성 경제권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세우시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는 남녀가 차별이 없는 나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당시 주변 나라가 가지고 있던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뛰어넘어야 만들 수 있는 나라입니다.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세상 관습에 젖어 이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스라엘도 세상 나라처럼 남성 위주의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주변 나라 영향을 받아 지파 공동체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계급 사회를 만들고, 여성을 무시하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기본법으로 생각하는 모세 오경에 남녀평등 조항을 넣었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일을 했고, 모세는 이 사건을 두 장에 걸쳐서 기록하므로 그 뜻을 대대로 잊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성의 권리는 여전히 무시당하고,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 교단이 있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단순히 자기의 이익을 챙기므로 여성의 경제권 확보를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실 하나님 나라의 밑그림을 잘못 그려선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들이 이렇게 들고일어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슬로브핫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들 없이 죽으면서 남겨진 딸들을 생각한 슬로브핫이 여성의 권리, 여성이 당당하게 서서 활동하는 나라를 그 딸들에게 가르친 것이 아닐까요?

이건 그냥 저의 추측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슬로브핫의 딸들의 손을 들어주신 것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손을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하며, 또 여성의 권리를 적극 지지하고 가르쳤던 슬로브핫 같은 남자가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됩니다.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youtu.be/LI31QzXZS-Y

작가의 이전글 루터의 폭력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