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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0. 2020

세상이 흔들리고 내가 흔들릴 때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바보 같은 질문이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에는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이 있습니다.

가짜 행복이란 당장은 행복한 것 같지만 결과는 불행입니다.

마약중독자는 당장은 행복하지만 결국은 멸망입니다.

세상의 쾌락으로 위안을 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물질로 표현해 왔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발달은 사람의 행복을 물질로 채워주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더 행복하기 위하여 더 많은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은 물질에 목을 매고 사는 물질적 존재로 타락하였습니다.


저는 “행복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신앙적 질문이라고 확신합니다.

행복을 주는 대상이 신앙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으면, 물질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행복을 준다고 믿으면, 하나님을 신앙합니다.


20세기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결하였습니다.

두 체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체제 모두 인간의 행복은 물질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공산주의는 물질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고, 자본주의는 노력한 만큼 물질이 돌아가게 하자고 했습니다.

두 사상 물질주의입니다.

두. 사상 모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물질 이상이라고 믿는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사람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사람을 영적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세상의 사상인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모두 사람은 그저 동물에서 진화한 고등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그들의 사상을 반영하였습니다.

사람을 동물로 볼 것이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것이냐는 각자의 신앙에 따라 결정하면 됩니다.

저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 존재로 믿습니다.


행복은 바로 이 깨달음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그저 돈 많으면 최고이고, 권세 있으며, 지식 있으면 최고로 칩니다.

이건 사람의 겉모습일 뿐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보지 않으면 행복은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무지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갈라집니다.


시편 저자는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아주 명쾌한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1:3-4)

행복한 사람을 나무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겨로 비유한 것은 절묘하지 않습니까?


겨는 곡식을 탈곡하고 남은 껍데기입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은 껍데기만 남은 사람입니다.

외모는 번지르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핵심, 본질, 생명은 없습니다.

좋은 집에서 살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공허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가치 없는 인생, 의미 없는 삶입니다.

남은 건 죄와 허물만 남은 껍데기뿐입니다.

이 사람은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만 집중할 뿐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에 힘을 쏟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는 나무와 같아서 땅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생명이 되는 수액을 끊임없이 빨아올립니다.

행복한 사람은 겉모습보다 속 모습, 곧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영혼의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겨는 형체 없는 무더기에 불과합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풍조가 이렇더라 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갑니다.

이들은 유행에 민감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중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결국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반면에 나무는 분명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행복한 사람은 삶의 목적과 방향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현재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차 나타날 모습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으로 비교하여 우울하거나 우쭐하지 않습니다.

중심을 잡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저는 펜데믹이 오면서 사람들이 크게 요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심이 잡힌 사람은 어떻습니까?

위기가 다가올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위기를 좋아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하며 창조적으로 삶을 개척합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레베카 솔닛은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녀는 아주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인류는 엄청난 재난을 만날 때 크게 도약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전까지는 현실에 안주하고 발상의 전환, 생각의 전환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가만 내버려두어도 잘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난이 다가오면 일상이 정지되고, 그동안 작동되던 시스템이 무너집니다.

그때 과거의 시스템을 회복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오히려 새로운 창조적 시스템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재난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베카 솔닛은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하느냐가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전 그리스도인, 행복한 사람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중심을 잡은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레베카 솔닛이 하나님으로 중심을 잡고 삶을 개척하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단순한 위기 극복이 아니라 참된 행복과 기쁨을 찾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계속해서 연결되는 말이지만 나무는 뿌리가 있지만 겨는 뿌리가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겨가 절대다수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군중 심리에 쉽게 사로잡혀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세상이 거짓뉴스로 한 번 훅 불면 사람들은 어느새 우르르 움직입니다.

아무리 수가 많고, 아무리 유행에 민감하고, 아무리 세상을 잘 읽어낸다 할지라도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행복한 사람은 세상의 풍조에 밀려다니지 않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붙잡고 흔들림 없이 살아갑니다.

뿌리가 있다는 말은 생명의 근원에 줄을 대고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이 수액을 어떻게 빨아올리느냐에 따라 나무의 성장 정도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직 어린나무가 있고, 성숙하게 자라 큰 그늘을 만들고 새와 동물들이 깃들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생명이고 성장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성장이나 성숙은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의 삶을 드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

행복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세상의 흐름에 민감하지 마시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들으려고 세상의 찢고 싸우는 뉴스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소망합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3ndye-xkTk&t=17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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