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Oct 22. 2020

포장된 행복

오늘날 이 시대는 자기를 홍보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고 잘산다고 포장하는 데 익숙합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다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포장일 때가 많습니다.

가만 들여다보면 그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고, 고민이 있고, 눈물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건 잘 포장했을 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포장이 아니라 진짜 행복을 찾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다이어트를 하면 행복할까?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

결혼하면 행복할까?

아닙니다. 그건 모두 포장입니다.

참된 행복은 어디 있을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걸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걸 모르면 그리스도인도 세상 사람처럼 겉으로 포장된 행복이 진짜인 줄 알고 그걸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지난 주 저는 시편을 통해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느냐? 네가 만일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너는 낙망하거나 불안할 필요가 있느냐?”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시편 저자는 분명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낙망하고 불안하였습니다..

저는 신앙의 등급을 나누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 중에는 분명 불쌍한 신앙인이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실체를 잘 모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믿음으로 사는 원리를 모를 때는 삶에 만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으로 생각해서 늘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게 쉽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들기도 어려운데 완벽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는 날마다 고해하고, 금식기도 하고, 완벽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예뻐하시고 축복하실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고 거룩할 수 없습니다.


요한웨슬레도 한 때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돼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구제도 하고, 전도도 하고, 교도소나 고아원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봉사했고, 선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그가 미국에 선교하러 갔다 돌아오는 배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평안한데 자신은 불안하여 전전긍긍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펜데믹 상황에서 모두 어려운 데 어떤 사람은 찬송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불안과 염려와 절망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나 요한 웨슬레가 깨달은 것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착한 행위나, 남들에게 잘 보이는 포장된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거로 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내가 잘하면 하나님이 칭찬해주시고, 내가 못하면 하나님이 벌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인과응보입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과 조건에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에 좋은 본보기로 탕자의 비유를 말하고 싶습니다.

탕자가 왜 탕자일까요?

아버지의 전 재산을 허랑방탕하여 낭비했기 때문에 탕자입니까?

기생 집에 가서 돈을 펑펑 쓰면서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탕자입니까?

탕자가 탕자인 이유는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먼 나라에 가서 근면 성실하게 일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두 배 세배를 불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탕자가 아닌가요?

아닙니다.

아버지를 떠난 순간부터 아들은 아버지의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밖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순간부터 아들을 기다립니다.

매일같이 동구 밖에 서서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립니다.


이 아들이 처음에 사업도 잘되고, 친구도 많고, 모든 일이 잘될 때 아버지를 생각합니까?

생각 안 합니다.

자기가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언제 아버지를 생각합니까?

사업도 망하고, 친구도 다 떠나가고, 돼지 울안에서 돼지 먹이인 주염 열매를 먹으려 하는데 그것마저도 없을 때 비로소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아 내가 아버지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내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정말 큰 죄를 저질렀구나”


그때 탕자가 결심합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야지.

무슨 낯짝으로 돌아갑니까?

사람이 최소한의 염치가 있어야지. 어떻게 돌아갑니까?

그런데 탕자에게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비록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어도, 내가 비록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쓰고, 내가 비록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했어도, 내가 만일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면 아버지는 나를 받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멋지게 성공해야만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탕자가 그런 상황에서 돌아가면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 밖은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오히려 의기양양 뻐기고 자랑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건 돌아가도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자꾸만 성공한 탕자로 돌아가는 것을 꿈꿉니다.

거기엔 믿음보다 인간적 자랑과 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에 대한 신뢰보다 자기에 대한 자랑, 자기 성공, 자기 이야기만 가득할 것입니다.

당당하고 뽐내고 멋진 모습입니다.

그게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건 거짓입니다.

거기에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오히려 벌거벗은 모습, 거지의 모습으로, 탕자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아버지를 제대로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에 대한 신뢰


성도 여러분 제 말을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요.

성공하고, 승리하고, 부유하고, 잘될 때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성공했어도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연약함, 자신의 죄 됨을 깨닫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날마다 감격하며 사는 훌륭한 사람도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펜데믹으로 지치고 힘들고, 번아웃되고, 탕진하고, 낙망하고, 눈물 흘리면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자랑할 것이 하나 없는데, 선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죄만 가득한데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바로 그런 깨달음에서, 바로 그런 돌이킴에서, 바로 그런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 행복이 있습니다.

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의 손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행복합니다.

나의 더러운 옷을 더럽고 냄새난다고 멀리하지 않으시고 그냥 안아주시는 아버지 덕분에 행복합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찾으시는 아버지가 계심을 알기에 행복합니다.

요즘 펜데믹으로 정말 어렵습니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이 다 다르고,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고 힘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여러분 곁에서 언제든 손잡아 주시고 사랑하시고 받아주시고 믿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81HmKnCRrg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흔들리고 내가 흔들릴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