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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3. 2020

기독교의 이율배반

오늘은 “개신교란 무엇일까요?”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초대 기독교는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점에선 하나였지만, 나라와 문화와 인종마다 믿음의 색갈은 달랐습니다. 

핍박받으면서 복음을 증거하던 초대교회는 다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초대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이단이라 정죄받고, 로마인들에게선 무신론자라 핍박받았습니다. 

로마의 다신교를 받아 들이지 않고 유일신 하나님만 고집한다고 핍박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대교회는 다신교 사회에서 결코 해가 되지 않는 종교임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러니까 초대 기독교는 다신교 사회, 다문화 사회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문제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힘과 권력을 손에 쥐자 태도를 돌변하였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사라졌고, 다신교나 다문화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독교만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불신자, 타종교, 유대교, 타문화권에 속한 자들을 잔인하게 핍박하였습니다. 

핍박받던 기독교가 핍박하는 기독교로 바뀌었습니다. 


교회의 권력은 점점 커져 하늘을 찌르고, 왕은 교황 앞에 머리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이 죄를 저지르면 교회는 왕에게 성지순례를 명령 함으로 참회하도록 하였다. 

혈기왕성하여 육정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던 앙주의 백작 풀크 3세(972-1040)는 네 차례 예루살렘 순례를 처방받았고, 마지막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던 중 객사하였습니다. 

이런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드르던 중세 상황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기독교의 원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외쳤고, 함께 핍박받던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같음을 주장하던 가톨릭 앞에서 다름을 인정하라고 외쳤습니다. 

획일을 주장하던 가톨릭과 다른 생각과 사상을 전하던 종교개혁자들은 무수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주교와 성직자의 손에서 빼앗아 평신도의 손에 주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예배도 독일어로 드렸습니다. 

독일의 평민들은 비로소 예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하며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역사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그의 책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에서 종교개혁 사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하였습니다. 

성경 해석의 권한을 교황에게서 빼앗아 평신도의 손에 맡길 때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01년판 세계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전세계 개신교 교파는 무려 33,000개입니다. 

그 다양성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미국의 기독교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그의 책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에서 개신교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중세 가톨릭 교회는 극단적 개신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결과입니다. 

개신교는 다양합니다. 

그냥 다양하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말할 수 없이 다양합니다.

그건 개신교 사이에도 신학과 교리와 생각이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모든 교단과 교파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전세계 개신교 중에 장로교는 3.4%이고 그중 절반은 대한민국에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장로교도 기독교 장로교의 자유주의와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측이나 합동측의 보수주의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잠시 이야기가 엇나갔지만, 루터나 칼빈이 처음에 종교의 자유를 외쳤지만, 그들이 실제로 권력을 가지는 순간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사라졌습니다. 

루터는 교황의 권력을 세속 정치 권력에게 주고, 대신 독일을 루터교 국가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루터교 외에 모든 개신교, 가톨릭, 유대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루터는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루터교 외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칼빈은 루터보다 훨씬 더 심각하였습니다. 

주일 예배 출석은 의무였고, 지각은 벌금형에 처했습니다. 

칼빈이나 성직자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면 징역형이나 강제 출국형에 해당하였습니다. 

의복 색깔과 수량, 식사 때 먹을 음식 가짓수도 법적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아이들 이름은 구약의 인물로만 지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네바의 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였습니다. 


핍박 받던 시절에는 ‘다름’을 인정하던 종교개혁자들이 권력을 가지자 가톨릭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다름을 처벌하였습니다. 

종교개혁 국가들에서 마녀재판이 끊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때문입니다. 

19세기 나다나엘 호손은 ‘주홍글씨’라는 작품을 통해 당시 미국 개신교의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을 그렸습니다. 

마녀를 처별하는 식의 종교재판은 그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국가는 종교를 법으로 강제하였고, 십일조를 강제 징수하여 성직자들에게 주었습니다. 

대신 종교개혁가들은 교회의 모든 권한을 세속 정치가들에게 헌납하고 그들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타협입니다. 

전 오늘 대한민국도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보수와 진보 정치 세력 뒤에 줄을 서있는 기독교의 모습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은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문화, 타종교 사회에서 다름을 기꺼이 인정하고 복음을 전파했던 그들의 관용적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은 결코 기독교 하나로 획일화될 수 없습니다. 

솔직히 기독교도 33,000개로 분화되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같음을 주장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건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함으로 창조하였습니다. 

사람의 피부색, 성격, 생각, 삶의 상황과 경험, 민족의 다양성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도대체 같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누구와 같아야 할까요?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것이 기준이라고요? 

누가 그런 권위를 주었나요?

현재 개신교단은 마치 중세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가진 듯 다름을 정죄합니다. 

세상의 다양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마음을 크고 넓게 가져 그들을 품어 안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속이 답답해서 한 소리 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NWQUEbxIek&t=1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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