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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I Church Nov 07. 2020

초대교회와 현대교회의 차이점

1865년 미국은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고 수정헌법 13조에 노예제 폐지를 언급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노예의 삶, 종의 삶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쓰였던 시대에는 사람 사이에 계급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종들은 온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다 하였습니다.

주인은 그늘에 앉아 쉬면서, 모든 귀찮은 일을 종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종은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하고, 집안에 들어오면 주인의 발을 씻기고, 주인의 식사를 준비하고, 주인이 다 먹은 후 설거지를 마친 후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종의 삶에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또 다른 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건 죄의 종입니다.

죄의 종이란 말이 무엇을 뜻할까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 본능을 따라 사는 사람, 세상의 풍조에 밀려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흔히 말합니다. “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은 죄의 종으로 살라는 뜻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인정, 세상의 성공,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전에 다 죄의 종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의의 종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부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리스도인은 교회 다닙니다.

그런데 교회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까?

이 말은 우리가 너무나 자주 사용하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여기 “구원받은”이라는 말은 완료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을 완료형으로만 쓴 것이 아니라 때로 현재 진행형으로도 사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저는 구원을 완료형으로만 생각하고 현재진행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은 받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맞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일까요?


우리가 성경의 지식, 복음의 지식을 알면 믿는 것일까요?

우리가 신조와 교리를 알면 예수를 믿는 것일까요?

우리가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을 하면 믿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개신교는 “지식, 교훈, 가르침”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과연 가르침이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가르침을 통해서 죄의 종이었던 사람이 의의 종이 될까요?

우리가 자녀에게 매일같이 가르치지만, 자녀가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신이 교인들의 머리만 키웠지, 가슴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한탄합니다.

가르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교훈의 본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여 준 것은 교훈만이 아니라 교훈의 본이었습니다.

그는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1:5)

사도바울이 전한 것은 단순한 지식이나 교리나 교훈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으로, 인격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된 것은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지식만 있는 사람,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삶으로써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실제로 보여주는 본이 되는 사람이 매우 적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이야기합니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여기 마음으로 순종한 사람은 바울입니까? 아니면 이 편지를 읽는 로마 교회 교인들입니까?

바울은 교훈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그것을 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살전2:13)

여러분 여기 초대교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 받지 않고 마음으로 받고 순종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현대 기독교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있지만, 모두 귓전으로 듣고 마는 시대입니다.

교훈은 전하지만 교훈의 본을 보이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전하여지는 교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사람의 말로 받아 그냥 외면하고 순종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게 바로 초대교회와 현대 교회의 차이점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순종함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신의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며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정말 의의 종이었습니다.


현대교회는 어떨까요?

우리는 아직도 죄에서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아직도 죄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들려오는 소식은 교회의 부정과 부패와 반사회적 태도 때문에 세상의 멸시와 천대를 받는다는 소식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지 사실은 세상을 추구하며, 세상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며 살까?

세상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자녀에게도 세상의 종이 되라고 늘 가르칩니다.

“본능대로 살아!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

나는 하고 싶은 것 하지지 못했거든

너는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


말씀대로 사는 사람 어디 없을까요?

말씀의 본, 교훈의 본을 보이며 사는 사람 어디 없을까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 어디 없을까요?

하나님은 지금 안타까이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의인 한 사람을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멸망해가는 예루살렘 성에 의인 한 명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영적 상황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통곡하였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통곡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정말 한국인 중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없는 걸까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명이면 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비록 나는 죄인이고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주여 나를 보내소서.

비록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지만, 주여 나를 사용하소서.

나는 기대합니다.

이 땅에 아직도 숨겨놓은 의인 7,000명이 있지 않을까 나는 기대합니다.

이제 더는 숨어만 있지 마시고 우리 모두 나와서 빛을 비추기를 소망합니다.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은 맛을 내야 가치가 있습니다.

등잔은 등경 아래 숨겨 놓아선 의미가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돌아보며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이 땅에 있음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CD-5ME3oI&t=5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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