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등한가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습니다.
지금은 상식이 된 이 말이 고대 사회에서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는 계급사회의 역사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계급이 바로 남녀 간의 계급입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 쓰인 성경에는 평등사상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계획하셨던 인간 사회는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의미하는 바를 여러 각도로 생각하고 글을 썼습니다.
제가 읽어본 글 대부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맞는 설명이지만, 어딘가 조금은 부족한 듯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부분을 조금 달리 설명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4-5)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위를 마음에 두고 말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 왕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허락하셨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다시 보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이자 영광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생각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다스리는 사람은 오직 왕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들은 언제나 자신을 신의 아들, 혹은 신의 형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뿐만 아니라 고대 제국의 왕들은 모두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그 나라의 귀족은 물론, 평민은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결코 신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물며 애굽의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노예들이 “우리도 신의 형상”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엄청난 반역입니다.
1198년 고려 시대 말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그들은 노비가 없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노비의 난은 진압되었고 참여했던 노비들은 모두 수장당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노비들이 난을 일으켜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노비들이 세운 이스라엘 나라의 핵심 이념은 곧 평등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그 평등 개념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등 개념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장벽이 바로 남녀평등입니다.
노예들은 해방되었어도, 남녀 차별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그만큼 남녀평등의 문제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한국 보수 장로교는 여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습니다.
여자는 다스리는 권한이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 쓰인 창세기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 모두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그들”입니다.
그들은 누구인가요?
곧 남자와 여자, 아담과 하와 모두에게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다스림’의 권한을 의도적으로 외면하였습니다.
여자에게 다스림의 권한이 있다는 뜻을 숨기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열어주셨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로 열어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초대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사실은 통치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통치자는 신의 뜻을 이어받아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신의 뜻이기에 백성은 왕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해야 했습니다.
창세기는 1장부터 모든 사람, 곧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다스리는 권한과 능력을 갖췄다고 선언합니다.
애굽의 노예들이 했던 생각중에 가장 혁명적 생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귀한 생각이요 말씀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말씀은 수천 년 동안 왜곡됐습니다.
두번째로 평등 개념이 등장하는 곳은 ‘돕는 배필’이란 단어입니다.
이 말씀은 다음 편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rSNiSvHVNA&t=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