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구약 성도가 펜데믹을 만났다면, 그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유지했을까요?
혹시 우리처럼 신앙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고통받았을까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였을까요?
오늘은 구약의 창세기 신앙 선배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했고, 그들의 신앙생활이 우리와 얼마나 달랐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타락 이전 에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였습니다.
에덴은 천국의 모형인데 그들은 매일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의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하나님께서 에덴의 아담과 하와에게 요구하신 것은 찬양과 영광과 예배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삶을 살아라. 일을 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타락이후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제단을 쌓고 예물을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나옵니다.
레위기에 5가지 제사가 나오지만, 그중에 가인이 드렸던 것처럼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소제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제물 그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형식에 담긴 마음과 의미가 무엇이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강조합니다.
사람은 외모와 외형을 보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십니다.
족장 시대 예배는 어떠했을까요?
물론 아브라함은 움직이는 곳마다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매 주일 정한 시간에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온 회중 -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318명의 종과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아브라함은 혼자서 제사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요셉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요셉이 신앙이 없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해석일 것입니다.
매주일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어도,
공동체로 모임을 가지지 않았어도 그들은 신앙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게할더스 보스는 아브라함의 신앙은 종교적인 행동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마음의 틀이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신학 101쪽)
아브라함은 특정 장소를 고집하여 그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보여 주는 것처럼, 족장의 신앙은 장소보다는 특정 인물과 연관시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장소 개념보다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더 마음을 썼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핵심은 장소, 시간, 모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고향 땅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나가는 행인과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매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했어도, 교회 건물이 없었어도 그는 삶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제사도 드렸지만, 제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창세기 18장 19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의와 공도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좀 추상적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그가 자기 자녀들과 후손들을 잘 인도하여 의롭고 선한 일을 하게 하여 경건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한 모든 약속을 이행할 것이다”
경건하게 사는 것은 곧 의롭고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족장들이 만일 펜데믹을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신앙생활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기회야말로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 의롭고 선한 일을 행할 때이다.
그는 약한 자, 병든 자, 힘들어하는 자를 위로하는 일에 기꺼이 앞장섰을 것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무서운 말씀을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들은 다 죽어도 나만 잘살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어려운 시기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펜데믹 상황을 맞이해서 구약 족장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현대 그리스도인의 갈 길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펜데믹 상황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