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는 무슨 권위로 자신들이 하는 설교를 복음이라고 하였을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질문하였습니다.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요8:53)
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이 하는 말씀의 권위의 출처가 무엇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도 같은 질문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그냥 무턱대고 “내가 하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라고 하였을까?
그건 불신 세계에서 씨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복음을 전파했을까요?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하였던 것은 구약 성경이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구약 성경이 정경으로 결정되는 데는 오래 시간이 걸렸습니다.
B.C. 400년경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정경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소위 가짜 뉴스들이 너무 남발하였기 때문이고,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정경으로 인정된 것은 신약에서 율법이라고 하는 모세 오경이었습니다.
B.C. 200년경에는 구약의 선지서들이 정경으로 인정되었고, A.D.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구약 정경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사도들이 살던 시대 구약 정경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회당에 들릴 때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복음을 전파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루터는 신약에 비추어 구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읽을 때만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입니다.
미국 예일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브레바드 차일즈는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 구약 성경의 역할을 루터식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극히 한 면으로 치우친 것으로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이 복음에 비추어 해석된 것은 분명하지만, 신약의 전승이 근본적으로 구약으로부터 형성된 것을 인정하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구약은 최소한 주후 2세기까지 교회의 유일한 경전이었습니다.
신약이 정경으로 인정되는 것도 구약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건 393년 힙포 공의회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비로소 정경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차일즈 교수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으로 인정되는 구약에 비추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이해했는가?”
그들은 구약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고, 그 믿음에 근거하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라고 주장한 가장 강력한 근거는 구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되었다는 사실이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이 없으면 복음을 증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약의 이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란 개혁파 교회 신학자요 목회자인 반더발은 그의 책에서 요한복음 전체는 구약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그것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요한이 사용하는 말씀, 진리, 생명, 빛 등의 표현을 잘못 이해하여 헬라 사상이나 영지주의 사상에 영향을 입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B.W. Bacon 같은 학자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가리켜 헬라 사람들의 복음이라고 하였고, C.H. Dodd나 불트만의 영향으로 요한복음이 헬라 사상이나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그것은 구약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오는 잘못입니다.
J.B. Lightfoot 교수는 요한의 책은 신약성서 안에서 가장 히브리적인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William Temple 역시 “요한복음서는 철저히 팔레스틴적이다. 이 복음서가 어떤 의미에서 헬라적이라는 생각은 복음서 전체의 경향과 배치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유대교와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자는 유대교에서 출교하기로 결의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이 그 점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요9:22, 12:42, 16:2)
요한복음은 이러한 배경에서 유대교와 복음은 같은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유대교적인 배경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요한복음이 구약을 직접 인용한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구약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많은 학자가 밝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 에스라 성경 대학원 조석민 교수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구약 절기와 요한의 신학’을 논문으로 썼습니다.
요한복음은 유월절을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구약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복음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오병이어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합니다.
요한은 오병이어 사건을 유월절과 연결하여 이해하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공관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유월절은 자기 몸을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설명합니다.
요한은 유월절 사건과 예수님의 생애 전체와 십자가를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건 유월절뿐만 아니라 초막절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