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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05. 2021

설교자가 어리석으면

오늘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정치적 권위에 대한 문제입니다.

가톨릭은 영적 권세가 세속의 모든 권세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들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세속 정치를 좌우하면서 최고 권위를 행사했습니다.

그 결과 부정과 부패와 탐욕으로 가득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둘째 로마 가톨릭은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에 대한 문제입니다.

오직 교황만이 성경을 오류 없이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모든 신자의 신앙 문제를 주장할 수 있으므로 신자들의 삶을 가르치고, 바르게 하고, 징계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해석의 권한은 신부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여 신자들에게 성경 읽기를 금하였습니다.

셋째 로마 가톨릭의 공의회 수장권이었습니다.

교황만이 공의회를 합법적으로 소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법을 만드는 권한이기에 당시에는 이 문제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누가 어떤 의도로 법을 만드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루터가 들고 나온 가장 큰 주제는 “만인 제사장설”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과 대항하기 위하여 먼저 독일의 귀족계급들이 깨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로마 가톨릭의 권력에 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터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세속 정치가들, 돈 많은 사람, 귀족들의 힘을 빌려야 했을 것입니다.

루터 전에도 종교개혁 사상을 가지고 로마 가톨릭을 비판하던 사보나롤라, 위클리프, 존 후스 등은 모두 로마 가톨릭에게 모두 종교재판을 받고 사형당했습니다.

그들의 실패를 알고 있었던 루터로서는 세속 권력을 등에 업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 종교(기독교)가 세속 정치 아래 들어가게 되고, 정치권력의 시녀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당시 재세례파 그룹은 아무리 앞선 종교개혁자들이 실패했어도, 정치권력의 힘에 의지하여 종교를 개혁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줄 예견하고 철저하게 평신도 위주의 종교개혁을 지향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과 종교개혁 양쪽에서 과격분자로 매도당하며 심각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재세례파 하면 마치 이단처럼 여기는 분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재세례파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종교개혁의 후예라고 하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두 번째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속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치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기독교가 그러합니다.

저는 어쩌면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였던 영적 권세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부정과 부패를 위한 것이 되어선 안 되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회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 권세가 회복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로마 카톨릭처럼 특정 종교 계급이 가지는 영적 권세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순종하고 삶으로써 가지게 되는 영적 권세를 가리킵니다.


루터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루터는 세속 정치가들에게 기대기 위하여 1520년 글을 씁니다.

“독일 국가의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그가 글을 쓴 대상이 그리스도인 귀족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만인 제사장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인 제사장설’에 대한 부분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교황들, 주교들, 사제들과 수도사들을 영적 신분(geistliche Stand)이라 부르고, 제후들, 군주들, 장인들과 농민들을 세속 신분(weltliche Stand)이라고 부르는 것은 완전히 조작된 것이다. 참으로 이것은 순전히 거짓과 위선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놀라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말하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영적 신분이며 그들 사이에는 직책 상의 차이 외엔 아무런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우리는 다 한 몸이나 모든 지체가 다른 지체를 섬기기 위하여 각기 자기 대로의 임무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례와 복음과 신앙만이 우리를 영적으로 되게 하고 같은 그리스 도인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여기서 제후들, 군주들, 장인들, 농민들도 만인제사장에 포함시킵니다.

그러나 후일 독일의 농민들이 제후의 폭정에 저항할 때 루터는 단호히 제후의 편에 서게 됩니다.

농민들은 그가 생각한 만인 제사장에 자신들도 포함된다는 것에 용기를 얻었지만, 루터는 농민을 저버리고 그들을 폭력으로 제압할 것을 제후들에게 권고합니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큰 문제점이요 한계였습니다.


루터의 만인 제사장설에서 주장한 두번째 요점은 가톨릭의 성서해석에 대한 독점적 권한에 저항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입니다.

그는 모든 신자는 신앙 문제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주신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고후2:15), 따라서 천국 열쇠는 교황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스스로 교정할 능력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평신도도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라틴어는 너무나 어려워 중세 가톨릭 신부들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였습니다.

성경 연구를 할 수 없었던 그들이 어떤 소리를 했겠습니까?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자기 생각과 주장을 마치 성경적 가르침인 양 떠들어 댔던 것입니다.

루터는 신부(목사)들이 무식하면 평신도라도 유식해야 종교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그의 친구요 화가였던 크라나흐와 합작해서 글과 그림을 적절하게 섞어 팸플릿을 만들어 독일 민중을 깨웠습니다.

사도 바울과 초대 사도들이 비대면 사회에서 편지라는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면,

루터와 크라나흐는 삽화와 만화라는 매스 미디어를 사용하여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유튜브를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무식하면 평신도라도 유식하자!

루터의 이 사상,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는 사상은 종교개혁의 굳건한 사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수용할 그릇을 갖추지 못한 채 이런 주장을 할 때 오는 위험성입니다.

성경을 읽게 하고 해석하게 하고 나니까 여기저기 다양한 생각과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개신교 종교지도자들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예전 로마 카톨릭처럼 통제하고 다스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은연중 평신도 우민화 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서는 담임목사나 부목사가 가르치는 성경공부 시간을 제외하고 다른 성경 연구는 듣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핑계로 교인들을 우민화하는 전략이지요.

평신도는 판단할 능력도 떨어지고, 성경을 해석할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뜻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는 명백히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생각과는 정 반대, 곧 로마 가톨릭이 가졌던 생각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을 어리석게 하여 목회하기 편한 구조를 만들고,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이야기, 비성경적인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양 위장하여 퍼트리는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기독교가 걸어가고 있는 길입니다.


제가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교인은 목회자 수준보다 뛰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건 매우 비성경적이고, 비종교개혁적 사상입니다.

종교개혁은 어리석은 신부,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사고와 관습과 가르침을 깨트리기 위하여 평신도를 깨웠던 운동입니다.

목회자가 수준이 떨어지면, 교인이라도 수준을 높이자.

목회자가 어리석으면 교인이라도 지혜롭자.

이게 종교개혁의 핵심 주장입니다.


루터가 주장한 세 번째 공의회 수장권, 즉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한에 대한 문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교회를 움직이는 주체는 당회입니다.

당회원의 구성은 모두 은퇴를 막 눈앞에 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진 생각에 개혁과 혁신과 변혁은 없습니다.

오직 안정과 전통과 보수와 자리보전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개혁, 종교개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개혁되려면 당회가 혁파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 칼빈, 츠빙글리 등 모든 개혁자의 평균 연령이 20대였습니다.

그들의 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리더십에 따랐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일어났습니다.

60대 노인들이 종교개혁을 했다는 기록은 역사에 없습니다.

한국 종교개혁이 일어나려면 세대의 혁파와 혁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qf2Q-8ZAs&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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