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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07. 2021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진짜 이유

사람은 왜 자기 집을 떠나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권으로 이주할까요?

한때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미국에 가면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한 줄 압니다. 

사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입니다. 

그들 모두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왔는데 한 단어로 줄이면 “돈”입니다. 

두 단어로 말하라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돈과 성공은 현대인들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돈과 성공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1848년 제임스 마샬이 캘리포니아 준주 콜로마의 슈터 밑에서 금을 발견하자 골드러시가 일어났습니다. 

골드러시로 인하여 샌프란시스코가 성장할 수 있었고, 캘리포니아의 도로, 교회, 학교, 마을이 건설되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큰 일을 이루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에 대한 설교를 여러차례 들었는데 대부분의 결론이 돈과 성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따랐더니 동방의 거부가 되고 성공하였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을 잘 믿고 따르자! 

잘 들어보면 목적이 돈과 성공이고, 하나님 신앙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요 방법일 뿐입니다. 

얼마나 아브라함 이야기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자녀를 위하여, 자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왜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났을까요?

정말 현대인들이 추구하려는 돈과 성공을 위해서 떠났을까요?

사람이 길을 떠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이유는 돈, 성공입니다. 

그 다음 이유는 자녀 교육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를 위하여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망이라고 해야겠지요. 

노동의 속박, 즉 노예의 삶에서 자유를 찾아 도망치는 경우는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자기만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함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탕자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떠나 먼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했습니다. 


아주 드물게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도를 얻기 위하여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이집트에서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 사막의 교부들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 이런 전통이 남아서 순례 여행이 있습니다.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짧은 여행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도 한 달이면 끝납니다. 

제 친구 목사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왔는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짧은 기간의 순례길이 아님니다.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인생 순례길이었습니다. 

애초부터 금위환향은 꿈도 꾸지 않는 여행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난 이유는 좀 색다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떠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생각해보아야 할 귀중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계십니까?

남이 걸어간 길을 뒤따라 걸어가고 계십니까?

우리 앞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지만, 성경은 크게 넓은 길과 좁은 길을 이야기했습니다. 

넓은 길은 많은 사람이 지나가서 길이 아주 평탄하게 잘 닦여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돈과 성공을 위해서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오직 그게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탕자같은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쾌락을 누리고, 행복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입니다. 

현대인들이 길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같은 사람은 남을 지배하고 정복하기 위하여 수많은 군대를 이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지배욕을 채우기 위하여 길 떠남입니다. 

정치가들 중에 도박같은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모두 명예욕, 지배욕을 채우기 위하여 길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자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사람은 그나마 조금 나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를 대타로 삼아 성공하기를 소망하여 자녀를 못살게 구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이런분은 조금 나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못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의 길 떠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세상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입니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비전과 목적은 돈도, 성공도, 명예도, 지배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입니다. 

그들을 만나 그들과 교제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삶은 속세의 삶이었습니다. 

속세의 삶이란 돈과 명예와 권세와 탐욕과 쾌락과 행복과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건강과 성공과 아무튼 현대인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이루려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는 그 모든 것은 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사람을 얻는 일, 사람과 관계맺으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를 나누고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길을 떠나 유랑하는 삶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삶이 담백하고 명쾌하고 간소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주렁주렁 달고서는 결코 길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는 세상의 자랑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조카 롯과 재산 분쟁이 붙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양보하는 자리에 서는 훈련을 했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그는 자신의 모든 생명을 내걸고 그를 구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마저 포기하는 자리에 가야만 했습니다. 

길 떠나는 사람이 해야 할 필수적인 훈련 과정입니다. 


아브라함은 돌아갈 고향도 없고, 도달해야 할 종착지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디에 서 있던 그곳이 자기 삶의 전부인 줄 알아서 자신의 온 마음을 바쳤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기쁨으로 환대하였고, 그의 발 아래 엎드려 기꺼이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희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을 만나 그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여 하나님 사람 만드는 것입니다. 

그가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로 하여금 새로운 민족이 생성되어야 합니다. 

그로 하여금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돈에 굴복한 나라가 아니라, 성공에 취해버린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소중한 줄 알아서, 사람에게 무릎 꿇고,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알 줄 아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 길을 과감히 걸어갔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도 바로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을 위하여 달려가고 쫓아갔습니다. 

새로운 사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사람에게 집중하였습니다. 

그가 노예든, 여자든, 나그네든, 이방인이든, 죄인이든,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이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4:4)


아브라함이 성공을 위해서 갔다고요. 천만에요. 

아브라함이 바란 성공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대로 새로운 사람,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는 삶을 위하여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만의 복을 위하여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걸어가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언어들에 유혹받아선 하나님 나라를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겨야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길,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길을 걸어갈 때에야 진정한 소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_LRxk2s8dI&t=6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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