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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an 11. 2021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나와 함께 가자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갓난아이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먹는 것에서 배설하는 것까지 일체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무력한 존재로 태어났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열등감을 느낍니다.

못하는 것투성이이기에 갓난아이는 좌절을 제일 먼저 느낍니다.

옆에서 잘한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인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넘어져도 할 수 있다. 격려하고, 바지에 오줌을 싸도 찡그리지 않고 뒤처리를 해주고, 배고플 때 먹여주고, 불안할 때 안아주는 가족 공동체가 있기에 사람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 되는 열쇠는 사랑과 돌봄과 인정입니다.

문제는 어느 가족 공동체도 사랑과 돌봄과 인정을 완벽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며, 어딘가는 넘치거나 과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더욱이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문제로 가득합니다.

유혹, 시련, 고통, 사고, 갈등, 다툼 등 헤아릴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쓰러지고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사람이 사람 되는 방법인 사랑을 외면할 때 사회는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타인을 판단하고, 손가락질하고, 정죄하고, 나아가 죽이려 할 때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와 그녀를 돌로 쳐 죽이려는 남자들이 나옵니다.

거기 죄를 저지르지 않은 남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만 자신은 깨끗한 척하며 소리를 지르고 돌을 들었다 놨다 하였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타인을 욕하거나, 비판하거나,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죄가 없으신 예수님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죄를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들을 사랑하십니다.

죄인들을 온전히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죄인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모든 죄 짐을 자신이 짊어지시고 죽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의 죄를 용서할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죄의 고백, 회개, 변화는 기독교인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정말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죄를 용서받았으면, 구원받았으면, 죄를 짓지 않습니까?

교회 다니면, 예수를 믿으면 죄를 짓지 않습니까?

성직자가 되면 죄를 짓지 않습니까?

만일 다시 죄를 짓는다면,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은 취소됩니까?

예수님은 이 여자가 돌아가서 두 번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완전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고 온전한 여인이 될 것을 기대하고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전 왠지 이 말씀이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전 이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다가 눈에 들어온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분명 죄인입니다.

그녀의 죄를 부정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녀는 분명 넘어진 여자고, 더러워진 여자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 되는 원리가 무엇입니까?

넘어졌다고 손가락질하고 발로 밟고 돌을 던지면 사람이 됩니까?

비록 그녀는 넘어졌고, 더러워졌고, 죄를 범했지만, 그녀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 독생자를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죄인인 줄 알면서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십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 짓을 했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을 짓을 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인정해 줍니다.

그녀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은 넘어질 수 있고, 더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소중히 생각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기회를 주십니다.

격려하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용기를 북돋우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인정하노라.

함께 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6d4VIHZ4w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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