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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7. 201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허무한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

“DNA가 영혼입니다.

그건 생물학적 결정론이죠.”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대담, 도정일, 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서울대 교수니 꽤나 권위 있게 들린다. 최재천 교수는 현대인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였다. 진화론에 의하면, 이 세상은 우연한 산물이고,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것은 모두 의미 없음이다. 그건 우연이라는 진화과정 속에 우연히 나온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삶에 의미란 것은 애시당초 없다. 모두 각자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다 가면 그뿐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아주 잘 표현해 준 영화 한 편이 있다. 2007년 Time 지가 선정한 10대 영화 중 1위를 차지한 영화다. 2008년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휩쓸었다. 그동안 B급 영화만을 만들던 코엔 형제가 마침내 대박을 터트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이 영화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은 역할은 냉혹한 살인마 ‘안톤 시거’였다. 조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실제적 주인공은 바로 그다. 그는 살고 죽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의 살인은 아무런 양심적 가책이 없다. 간혹 그가 자비를 베푸는 수단인 동전 던지기 역시도 우연성을 뜻한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느냐 뒷면이 나오느냐는 순전히 우연이다. 그것을 맞추는 것도 우연이고, 그 우연의 결과로 생명이 오간다. 생과 사는 다 그렇게 우연일 뿐이다.

주연이던 를르윈 모스의 죽음은 허무하다 못해 허망하다. 악당 안톤 시거와 정면대결하며 싸우던 주인공이니 최소한 그의 죽음만큼은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감독은 치열한 대결은 커녕 죽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피범벅이 시신으로 쓰러진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잠깐. 그게 주인공의 삶이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영화의 끝 부분에 교통사고가 우연히 발생한다. 절대적 능력을 선보이며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안톤 시거’는 그렇게 무너졌다. 그 역시도 우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모든 관객은 "이게 뭐야? 끝이야? 뭐 이렇게 허무해!” 말한다. 음악 하나 없는 영화, 결말이 없는 영화. 이 영화는 결국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다.

우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인생사가 다 허무하다.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현대인의 삶이고 철학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찝찝해진다. 인생의 허무함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영화는 없다. 그리고 거기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더 찝찔해진다. 진화론의 결론은 허무주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인생에 희망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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