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나이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극적으로 살아난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은 자신의 경험담을 소설 ‘밤’으로 출판하였다. 그가 수용소에서 겪은 일 중의 하나다. 한번은 수백 명에 이르는 다른 유대인들과 더불어 사흘 동안 좁은 방안에 갇혔다. 한정된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이들을 넣다 보니, 공기가 들어오는 통로가 사람에 의해 막혀서 질식사하는 일까지도 생겼다. 쓰레기더미처럼 사람들을 집어넣은 그곳에 바르샤바에서 온 수척한 소년 율리에크가 있었다. 그는 눈보라를 뚫고 수용소까지 내몰리는 죽음의 행진 동안에도 바이올린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졌거나 숨 막혀 죽어가는 이들 사이에서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소년은 베토벤의 콘체르토 가운데 한 대목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필경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 1악장에 나오는 바이올린 독주 부분이었을 것이다. 바이올린의 소리는 맑고도 섬뜩했다. 가느다란 바이올린 소리는 마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저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했다.
엘리 위젤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웠다. 바이올린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율리에크의 영혼이 활로 변한 듯했다. 소년은 스스로의 생명을 연주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꿈과 숯처럼 새카맣게 그을린 지난날에서 소멸된 미래까지 한 인간의 삶 자체가 현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다시는 연주하지 못할 곡을 율리에크는 연주했다.
...
지금도 눈을 감고 베토벤의 음악이 연주되는 걸 들을 때면, 어김없이 소중한 바이올린과 서서히 죽어가는 청중들에게 작별을 고하던 폴란드 친구의 서글프고 창백한 얼굴이 어둠 속에 떠오른다. 연주가 얼마나 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햇살이 들이비치고 있었다. 맞은편에 고꾸라진 채 숨져 있는 율리에크가 보였다. 한없이 작고 낯선 주검 곁에, 밟혀 뭉개진 바이올린이 뒹굴고 있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다.
죽음이 지배하는 그 수용소에서 예술은 찬란히 빛났다.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예술적 자기 표현 의지는 인간의 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