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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l 28. 2015

마지막 사중주

야론 질버맨이 감독한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라는 영화를 보았다. 25년 동안 수천 번이 넘는 공연을 함께해 온 현악 4중주단 ‘푸가’의 정신적인 지주인 첼리스트 피터(크리스토퍼 윌켄)가 파킨스씨병에 걸리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영화 초반부 피터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 제14번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베토벤은 이 곡을 쉼 없이 연주하도록 지시하는데, 이는 연주자들이 중간에 튜닝을 다시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주하는 동안 악기의 튜닝은 풀리고 하모니는 엉망이 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연주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불협화음이라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이것은 영화를 끝까지 풀어가는 하나의 Keyword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인생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명언이기도 하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아름답게 술술 풀려가지 않는다. 때로 이리저리 뒤엉켜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도 종종 있다. 너무나 뒤엉켜서 그만 여기서 끝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은 결코 무익한 노력은 아니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그동안 감추어왔던 갈등이 피터의 발병으로 인하여 서서히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인생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한 다니엘의 말처럼 푸가의 단원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깨지고 부서진다.

약속한 콘서트 날짜가 다가오는데 이렇게 푸가는 해체되어야 하는가? 감독은 모든 사람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 더는 불협화음을 지켜볼 수가 없다고 악기를 내팽개치고 떠나야 할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여기서 피터가 들려주는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이야기는 의미 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첼로의 거장 카잘스 앞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떨려서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하였지만, 카잘스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후일 그가 프로 연주자가 되어서 카잘스를 만나 그때 이야기를 했을 때 카잘스가 이렇게 말했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연주가 아니더라도,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감동을 주었을 때, 우리는 그 연주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비판하고 비평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우리의 수많은 결점과 약점과 부족한 점 사이에서 잘한 점을 찾아내어 칭찬해주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카잘스의 위대함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는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결국, 현악 4중주단 푸가는 불협화음으로 어우러지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까지 관객들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부족함과 약점 많은 인생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https://youtu.be/zKgVhhr3Y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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