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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Oct 22. 2021

선한 목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다. 청년 시절 나는 방황하였다. 목회하던 아버지 속을 무던히도 썩여 드렸다. 군대 가는 날 아버지가 예배드리자고 하는데 온갖 인상을 써가면서 거부하였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앉아 예배를 드렸다. 그날 아버지는 이 시편 말씀을 읽어주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갈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마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아들아!"

그때는 몰랐지만, 그 이후 이 말씀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실패하였을 때, 비난받을 때, 자존심이 무너질 때, 상처받았을 때 시편 23편은 언제나 나를 회복시키는 말씀이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할 때가 많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40:11).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스러운 주님이 연상된다. 어린 양을 가슴에 안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 내가 주님 품에 안긴 것 같다.

그런데 이스라엘 여행을 가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큰 환상을 가졌는가를 깨달았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 잠시 목자들의 처소에 방문하였다. 목자들은 토굴에 머물면서 양을 쳤다. 그들은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냄새나고 더러웠다. 양들 또한 더럽기 그지없었다. 털은 뒤엉켜 있었고, 우락부락한 양은 마치 곰 같았다. 흙투성이 양은 지독한 냄새를 풍겨 안아주고 싶은 마음은 생겨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양은 너무 커서 내 힘으론 도저히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림에서 보는 귀엽고 하얀 어린 양은 찾을 수 없었다. 강원도 양 떼 목장에서 보았던 양도 없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 갈색으로 변한 양들은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생각한 양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실 목자는 힘들고 거친 직업이며 멸시와 천대를 받는 직업이다. 1세기 랍비 전승은 목자들을 부정(不淨)하다 했다. 고대 유대인들이 배척하는 직업이 다섯 개 있는데 그중 목자는 세 번째에 해당한다(Bailey, 2016, p56). 양들은 농작물을 밟아 망가뜨린다 하여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다. 결국, 목자들은 언제나 들판에서 노숙하며 양을 쳐야 했다. 편안하고 행복한 삶은 고사하고 제대로 씻지 못하여 부정한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 흔히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그들이 말한 죄인이란 어떤 특별한 죄를 범해서 죄인이라 하지 않고, 불명예스러운 직업을 가진 자로서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할 가능성이 큰 사람을 지칭하였다(Jeremias, p128). 부정한 직업의 대표자로서 세리와 목자가 포함되었다. 이스라엘이 만약 식민지국이 아니라면 세리는 고상한 직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 이스라엘에서 세리는 지배자인 로마와 연루된 자로서 부정한 직업이었다. 목자는 더럽고 추하고 멸시받는 직종으로 오래전부터 천한 직업으로 여겼다. 마을 공동체와 떨어져 광야와 들판에서 살아야 했던 목자는 비천하였다.


목자의 삶이 얼마나 거칠고 힘든 일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다. 일단 이스라엘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푸른 초장이 없다. 목축업으로 유명한 뉴질랜드에는 푸른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수만 마리 양이 먹고도 남을 목초지를 12개로 구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먹게 하였다. 목동은 한 달에 한 번 좋은 차를 타고 와서 펜스 문을 열어 다음 목초지로 양 떼를 이동시키고 떠난다. 뉴질랜드의 목자는 부자에다 고상한 직업이다. 그러나 양을 먹일 초지가 넉넉지 않은 이스라엘에서 양들은 주로 광야나 들판에서 살았으며, 먼지 구덩이에서 지내야 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중심으로 한 남쪽 유다는 황무한 산지와 광야이다. 일 년에 푸른 풀이 돋아나는 시기는 3개월 정도다. 비가 오지 않는 6개월의 건기에는 모든 것이 메말라 버린다. 그러다 10월경에 이른 비가 내리면서 메마른 대지에 생명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비록 비가 오긴 하지만 푸른 풀밭을 조성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풀이 돋기 시작하면 목자들의 삶은 바빠진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을 찾아가는데 도단까지 가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야곱이 살던 곳이 헤브론이니 도단까지 거리는 150km나 된다. 그 먼 곳까지 양들에게 풀을 먹이며 가던 목자의 삶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노숙하며 양을 쳤다. 길바닥이나 동굴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사람도 없는 광야를 지나며 그들이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깨끗하게 세탁된 하얀 옷 대신에 거칠고 더러운 옷을 입었다. 물이 있다면, 먼저 양들에게 양보하였지 씻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양들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물이 빠르게 흐르면 마시지 않았다. 중동의 목자들은 물살이 있는 개울에서 양을 방목할 때는 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땅을 판 다음 수로를 만들어 물을 마시게 하였다. 양들은 고요히 흐르는 잔잔한 물을 원하였다.


양이 얼마나 거칠고 미련한 짐승인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양이 길을 잃어버리고 가시덤불 속이나 바위 밑에 떨어져 상처 입고 피를 흘린다면, 그것을 구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목자의 수고가 말할 수 없이 크고 힘들었다. 진흙투성이의 더러운 양이 피를 흘려 엉겨 붙은 모습은 절대 사랑스럽지 않다. 더욱이 길을 잃은 양은 무기력하게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목자는 그 양을 안거나 어깨에 메고 나와 그 먼 길을 돌아와야 한다(Bailey, 2017, p256).


목자의 삶은 힘들고 고단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삯만 받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지 않는 목자가 있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자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목자를 심하게 책망하였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거짓 목자, 삯꾼 목자라고 규정하였다. 그들은 자기만 먹고 양 떼를 먹이지 않았다(겔34:2). 이기적인 삯꾼 목자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겔34:3). 결과적으로 양 떼는 흩어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지만, 찾는 이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영적 정신적 지도자들의 태만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노를 발하신다(슥10:3).


마르바 던(Marva Dawn)은 선한 목자라는 이미지 속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을 왜곡하는지 생각하라고 충고한다(Dawn, p54). 예수님은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비록 각기 제 길로 간다 할지라도, 비록 피투성이가 되어 골짜기에서 헤맨다 할지라도, 비록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고집을 부린다 할지라도, 악취를 풍기며 가까이하기 힘든 모습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구원하신다. 주님은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지칭한 것은 목자가 고상하고 품위있는 직업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가장 멸시받고 천한 직업이고,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향한 열망을 더 잘 표현한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음식을 먹는 깨끗하고 멋진 목자는 선한 목자라기보다는 돈만 밝히는 삯군 목자일 가능성이 거의 100%다. 하나님이 그리신 선한 목자는 더러운 냄새, 추한 모습, 온갖 오물로 더럽혀진 모습을 주저하지 않고 다가서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모습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목자로서 실패한 7가지 점을 지적하였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지 않았고, 병든 자를 고치지 않았고, 상한 자를 싸매주지 않았으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않았고, 길 잃은 자를 찾지 않았으며, 양들을 힘으로 통치하고 포악으로 다스렸다(Bailey, 2015, p124).


양들을 사랑하여 생명 바치는 선한 목자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친히 목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겔34:15).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선언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양을 먹이고 치라고 하였다(요21:15-17). 문제는 ‘오늘 한국 기독교의 영적 지도자들이 과연 선한 목자인가’이다. 혹시나 이기심과 욕심과 자기만족과 행복과 평안을 추구했던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선한 목자를 고상하고 품위있는 목자로 그리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타락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선한 목자를 냄새나고 더럽고 추하고 힘들고 피를 흘려야 하는 목자로 그린다면, 우리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모델로 삼게 된다.


참고도서

Bailey E. Kenneth, The Good Shepherd(선한 목자), 류호준, 양승학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Bailey Kenneth,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박규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

Bailey E. Kenneth, Poet & Peasant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오광만 옮김, 이레서원, 2017

Dawn Marva, Talking the Walk(언어의 영성), 오현미 옮김, 좋은 씨앗, 2009

Jeremias Joachim, Die Gleichnisse Jesu(예수의 비유), 허혁 옮김, 분도출판사, 1988

https://www.youtube.com/watch?v=JGTWjp7TVqY&t=62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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