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은 렘브란트와 고흐를 사랑하였다. 그는 1977년과 1979년, 예일대에서 ‘고흐의 사역’(The Ministry of Vincent van Gogh)을 강의하였다.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관점에서 강의하였는데 강의 후, 강의 내용을 America 잡지에 기고하였다. 글의 제목은 ‘긍휼 : 연대, 위안, 위로’(Compassion : Solidarity, consolation and Comfort)이다. 영어 원고는 구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미국 동북펜 한인교회 최종수 목사가 헨리 나우웬의 글을 번역하였다.
헨리 나우웬은 고흐가 쓴 편지와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고흐의 영성에 세 가지 주요한 면을 발견하였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고난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눈물을 흘림으로써 인간적 연대를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함께 삶의 상처를 깊이 아파함으로써 위안을 주고, 인간의 고통 저 너머에 빛나는 힘과 희망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위로해 줍니다.”(Nouwen, p.55)
긍휼은 누구누구와 함께 고난을 겪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고난 당하는 사람의 상황에 참여하고 연대한다. 고흐는 보르나주 탄광촌에서 사역할 때 동생에게 편지했하였다.
“우리 인생의 본분은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간구하자”Let us ask for our part in life that we may become the poor in the kingdom of God, God’s servants. 1875. 9. 17 p.56)
고흐는 광부들에게 그저 설교하고 가르치고 회개를 촉구하거나 그들의 삶의 형편을 바꾸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광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난한 그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사정을 깊이 체험하기를 원하였다. (Nouwen, p.57)
고흐는 청년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는 목회의 길을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자,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렇다고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다. 그는 목회자의 소명이나 화가의 소명이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화가는 목사나 교회직원일 필요는 없지만, 동료 인간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지녀야 한다”(An artist need not be a minister or a collector in church, but he must have a warm heart for people(p.246) 1882년 11월 1일
그는 여동생 윌에게도 편지하면서, 인물화는 사건과 달리 감정의 산물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Besides, a painted portrait is a thing of feeling made with love or respect for the being represented. p.696-697) 1889년 9월 19일
고흐는 복음전도자로 하려 했던 일을, 화가로서 그림을 그려 그 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 일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서 목사나 화가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목사이든 화가이든 둘은 다 사람들에게 가슴 울리는 감동을 주고자 하고, 또 흔히 메우기 어려운 간격의 아픔을 느끼고자 합니다.”(Nouwen, p.59)
긍휼의 두 번째 특징은 위안이다. 연대는 단지 긍휼을 위한 조건을 표현해 줄 뿐이지만, 위안은 긍휼이 지닌 내적 역동성을 파악하게 한다. 흔히 위안을 단지 아픔을 덮어주고, 고통스러운 부분을 피하거나, 어쩔 수 없다면 순응하도록 돕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역설적이게도 위안은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다. 즉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줄곧 인간 심령 깊은 곳에 도달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고흐에게 그림 그리기란 우리 인간을 함께 묶어주는 것을 뜻하였다. (Nouwen, p.62) 그는 동생에게 예술에 대하여 이렇게 편지하였다.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신성림 역, p.63-4)
고흐는 값싼 기쁨을 주려는 유혹, 삶의 표면에 머물고 싶은 유혹, 거짓 즐거움이나 거짓 우울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저항하였다. (Nouwen, p.63-64) 그는 쉐베닝겐(Scheveningen) 해변 그림을 보내면서 이렇게 씁니다.
“해변을 스케치한 그림에는 금발 색깔의 온화한 광경을 볼 수 있고, 숲을 그린 그림에는 어둡고 울적한, 엄숙한 색조를 볼 수 있다. 우리 인생에도 이 두 면이 다 있다는 것이 기쁘다.”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 삶의 기쁨과 죽음의 고통, 이 두 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바로 위안을 주려는 고흐의 고된 과업이었다. (Nouwen, p.64)
위로는 함께하는 능력이다. 약함 가운데 서로 감싸 안는 사람은 복되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훌륭한 재능 가운데 하나는 그림으로 위로를 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1890년 쌩 레미 요양소에서 피곤함에 지쳐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두 손 사이에 파묻은 채 의자에 앉은 노인을 그렸다. 그는 동생에게 이 그림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자기 작품 속에 사상을 담는 것이 화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에서 나는 밀레가 믿었던 무엇인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 하였다. 즉 하나님의 존재와 영원이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입증해 보려고 하였다. 화덕 모퉁이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작은 노인을 감명 깊게 표현함으로써, 그 노인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영원에 가 닿은 것을 분명하게 그려보려 하였다.”
It seems to me that a painter has a duty to try to put an idea into his work. I was trying to say this in this print?but I can’t say it as beautifully, as strikingly as reality, of which this is only a dim reflection seen in a dark mirror?that it seems to me that one of the strongest pieces of evidence for the existence of ‘something on high’ in which Millet believed, namely in the existence of a God and an eternity, is the unutterably moving quality that there can be in the expression of an old man like that, without his being aware of it perhaps, as he sits so quietly in the corner of his hearth. (p.248, 1882년 11월 하순)
고흐는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내적 아름다움과 그들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그리고 삶의 가장 더러운 구석에서 빛의 서광을 그려냄으로써 위로를 주었다. (Nouwen, p.68)
체스터톤은 미술 작품에서 그리스도인 성자와 불교도 성자가 서로 대조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불교도 성자는 항상 눈을 감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 성자는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불교도는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으나 그 눈꺼풀이 무거운 듯 지그시 감겨 있다. 중세의 성자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몸매지만 그 눈은 깜짝 놀란 듯 활짝 열려 있다. 불교도는 내면에 집중하는 독특한 눈빛을 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필사적으로 바깥을 응시하고 있다.”(Frost, p.17)
고흐는 필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마이클 프로스트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일상적인 삶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라고 하였다. 안신 교수는 반 고흐야말로 오늘날 무신론의 시대에 적합한 ‘예술을 통한 문화혁명’의 선교를 실천한 ‘종교적 인간’ 임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안신, P.35)
반 고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힘써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그 길이 바로 확고한 믿음에 도달할 것이라고 편지하였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친구를, 아내를 무엇이든 네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을 더 많이 아는 길 위에 있으리라. 그러나 사랑하고 고상하고 진지하게 친밀함과 동정심을 가지고 힘을 다하고 모든 지성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 도달할 것이다. 확고한 믿음에 도달할 것이다. (1880년 7월경 최종수 역 p.128)
But without intending it, I’m always inclined to believe that the best way of knowing God is to love a great deal. Love that friend, that person, that thing, whatever you like, you’ll be on the right path to knowing more thoroughly, afterwards; that’s what I say to myself. But you must love with a high, serious intimate sympathy, with a will, with intelligence, and you must always seek to know more thoroughly, better, and more. That leads to God, that leads to unshakable faith.(p.128)
반 고흐는 목사의 길을 포기하긴 했지만,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찾고, 믿음 위에 굳게 서려고 화가의 길을 선택하였다.
Frost Michael, Eyes Wide Open(일상, 하나님의 신비), 홍병룡 옮김, IVP, 2002
Nouwen Henri, Compassion Solidarity consolation and Comfort(영성신학 - 빈센트 반 고호의 사명 - 긍휼 :연대,위안,위로), 최종수 옮김, 세계의 신학, (53) 2001.12. 52-70(19pp.)
Vincent Van Gogh, Ever Yours : The Essential Letters, Yale University Press. 2014,
Vincent Van Gogh,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8.
안신, 고흐의 종교와 예술에 관한 연구, 대학과 선교 제42집 2019. 7-3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