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처럼 사랑받는 화가도 드물지만, 고흐처럼 오해받는 화가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고흐는 권총 자살을 하였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고흐가 자살했다는 주장에 반론도 만만치 않게 있다.
고흐의 자살설에는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첫째 자살의 뚜렷한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고흐는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그림을 몇 점 그리긴 했지만, 그건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고흐는 그림만 그려서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남겨놓지 않았다. 그는 편지로 그림에 대한 자기 생각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고흐의 그림은 반드시 편지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고흐가 죽은 후 그의 품속에 동생 테오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가 발견되었다. 거기엔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계획이 써있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친절한 편지와 그 속에 함께 보내 준 50프랑도 고맙게 받았다.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 집안이 평화롭다고 나를 안심시키려는 너의 노력도, 너의 행복과 불행을 다 알고 있는 나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니. 4층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나 요한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은 나도 잘 이해한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잘 풀리고 있는데 하찮은 일에 대하여 말해서 뭐 하겠니? 내 말은 우리가 좀 더 차분히 사업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 것이라는 말이다. (중략) 이것이 우리의 임무이며, 어려운 순간에 내가 너에게 말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중략) 그래, 나는 내 작업에 나의 인생을 걸었고 내 이성의 반을 대가로 치렀다. 좋다, 너는 아직 너의 입장을 결정할 수 있어. 네가 그 많은 화상 중 그냥 하나가 아니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참된 인간성으로 행동할 거라 확신해. (1890년 7월 23일, van Gogh, p.750-751)
그의 편지엔 죽음의 그림자가 전혀 없다. 오히려 미래형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임무나 계획 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때 삶의 의지로 가득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다음 날인 7월 24일에 더 길게 쓴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엔 물감을 더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다(Derek, p.271). 그러니까 고흐는 자살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
고흐의 자살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명백한 증거 앞에 고흐는 우발적 발작에 의해 자살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더욱 자살설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고흐는 권총 탄환이 복부에 박혀 죽었다. 만일 고흐가 권총 자살을 했다면, 권총을 미리 준비했다는 뜻이고, 그건 우발적 자살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고흐의 동생 테오가 경제환경이 안 좋아서, 평소 보내던 돈의 1/3밖에 보내지 않았다. 그는 물감을 살 돈도 없어 전전긍긍하였다. 그런 환경의 고흐가 어디서 권총을 샀을까? 고흐는 권총을 살만한 돈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권총을 살 이유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고흐의 권총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머리나 입에 쏘지 배에 쏘지 않는다. 배에 총을 쏘면 고통만 크지 잘 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에 권총을 쏘았다면 총알은 반드시 관통하여 나갈 것이다. 머리에 쏘아도 총알이 관통하는 데 배에 쏜 총알이 배에 박혔다는 것은 멀리서 쏘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흐의 죽음은 타살이거나 사고사일 가능성이 크다.
2011년 영국 저널리스트 두 명이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일종의 총기사고라는 새로운 주장을 하였다. 당시 동네 아이들 몇 명이 총기 사고를 일으킨 정황이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무엇보다 경찰이 와서 고흐에게 ‘당신은 자살을 시도한 것이냐?’고 물었을 때, 고흐는 ‘네’라고 하지 않고 ‘그런 셈’(I believe so)이라 답했고, 덧붙이기를 ‘이 일에 대해 누구도 추궁을 받아서는 안 된다(Don’t accuse anyone else)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고흐는 실수였든 의도였든 자신에게 총을 발생한 사람을 보호해주기 위해 그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고병권, E-book)
고흐 영화를 분석한 안신 교수에 따르면, 20세기 고흐 영화는 자살로 표현했지만, 21세기 고흐 영화 세 편은 모두 타살로 그리고 있다(안신, p.30). 세 편의 영화는 호프 감독이 연출한 <반 고흐: 위대한 유산>(The van Gogh Legacy, 2013)과 유화 애니메이션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2017)와 슈나벨 감독의 <영원의 문>(At Eternity’s Gate, 2018)이다. 러빙 빈센트는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의견을 따라 가셰 박사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타살이란 주장에 무게를 두어 영화를 제작하였다(Artaud, p.46-50).
고흐는 질병과 경제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그림과 편지로 죽음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설명하는 죽음은 우울하거나 비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추수하는 사람’을 그리고 동생에게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나는 수확을 끝내려고 아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죽음의 이미지를 보았다. 그것은 그 사람이 베는 밀은 인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전에 그렸던 ‘씨 뿌리는 사람’과는 상반되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죽음은 하나도 슬프지 않다. 태양이 지상 만물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운데 햇빛을 듬뿍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니까.(van Gogh’s letters 웹사이트)
고흐는 죽음을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영광스러운 여행처럼 생각하였다.
그는 1988년 7월 9일 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지도에서 도시와 마을을 나타내는 검은 점을 보면서 꿈을 꾸는 것처럼 나는 별을 올려다볼 때마다 꿈을 꾼다. 그리고 혼잣말로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에 그려진 검은 점에 가듯 하늘에서 반짝이는 점에 닿을 수는 없는 걸까? 기차를 타고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듯이, 우리는 죽음을 통해 별에 닿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진리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닿을 수 없다. 증기선과 합승마차, 철도가 지상의 교통수단이듯이 콜레라, 요로결석, 결핵, 암은 천상의 교통수단이 아니겠느냐. 가만히 있다가 늙어서 죽는다는 건 걸어서 그곳까지 가는 거나 다름없다.”(van Gogh’s letters 웹사이트)
그는 ‘별이 빛나는 밤’에서 거룩한 사랑과 은총과 우주의 광대함을 형상화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의 덧없는 삶을 영원불변한 우주의 시간과 대비하였다. 반 고흐는 별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었다(Erickson, p.310). 그는 만일 죽음이 다가온다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뜻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실수였든, 의도였든 자신에게 총을 쏜 십 대 소년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전에 읽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순례자처럼 천성을 향해 순례길을 떠났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마지막으로 말하였다.
“이게 내가 떠나고 싶은 방식이야. 얼마 남지 않았어.”(Bailey, P.145)
고흐가 남겨놓은 유일한 설교문이 있다.
우리의 삶은 순례자의 길과 같습니다. 순례자는 근심하지만 언제나 다시 기뻐하면서 계속 걸어갔습니다. 아득히 먼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괴롭기는 했지만 멀리 석양빛 속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영원한 도시를 올려다보며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 오래된 속담 두 개를 떠올렸습니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불화가 있을 것이며,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며, 많은 기도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는 평화가 함께 하리라(Erickson, p.305).
말(언어)로 복음을 전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고흐는 그림으로 일상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려고 하였다. 그는 평생 가난을 추구하였다. 그는 밀레를 누구보다 존경하였지만, 밀레의 작품이 파리에서 50만 프랑이라는 깜짝 놀랄 만한 금액에 팔렸다는 소식을 듣자, 고흐는 그것이 정당하고 느끼기 보다 오히려 비난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Naifeh & Smith, p.835-6). 농민 화가는 당연히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처럼 평생 희생과 헌신과 섬김을 지향하였고, 마침내 죽음 앞에서 자신에게 총을 쏜 십대 소년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말없이 하늘나라로 갔다. 고흐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림으로, 삶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간절히 소망한 사람이었다.
Antonin Artaud, Van Gogh, The Suicide Provoked by Society, 1947
Bailey Martin, The Sunflowers are Mine(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 박찬원 옮김, 아트북스, 2016.
Derek Fell, Van Gogh’s Women His Love Affairs and Journey into Madness(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 최일성 옮김, 세미콜론, 2007.
Erickson P. Kathleen, At Eternity’s Gate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안진이 옮김, 청림출판, 2008.
Naifeh Steven and Gregory White Smith, Van Gogh : The Life(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최준영 옮김, 민음사, 2016.
Vincent Van Gogh, Ever Yours : The Essential Letters, Yale University Press. 2014,
고병권, 철학자와 하녀, 메디치, 2014
안신, 고흐의 종교와 예술에 관한 연구, 대학과 선교 제42집 2019. 7-39(33)
http://www.webexhibits.org/vangogh/ van Gogh’s letters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