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가족은 저녁마다 한 자리에 모여 큰 소리로 책 읽는 습관이 있었다. 가족은 성경에서부터 시와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공유하고 싶은 편지도 함께 읽었다. (Mariella, p.147) 1874년 아버지 테오도루스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우린 저녁에 자주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 지금은 불워의 케넬름 칠링리를 읽고 있어. 아름다운 문장이 아주 많구나?”
불워(Edward Bulwer-Lytton)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한 영국의 정치가이자 문필가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어려서부터 습관들인 책 읽기에 심취하였다. 그는 자신이 읽고 감동을 받은 책은 반드시 주변인들에게 책을 추천하거나 선물하였다. 그가 성경을 읽고 감동 받은 후 동생 테오에게 편지하였다.
“성경을 읽으면 너 한테 아주 좋을거야…. 성경은 곧 예수를 뜻한다. 구약성경은 예수라는 정점을 향하고 있지. 모든 철학자와 마법사 가운데 예수만이 영생과 무한함 그리고 죽음의 무효함을 확언했으며, 기쁜 마음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언했어. 그는 모든 예술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석과 점토 그리고 색채를 살아 있는 몸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1877년 도르트레흐트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쉬지 않고 성경을 읽었다. 책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서점 구석에 처박혀서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어 성경을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안재경, p.11-12) 그때 동생 테오에게 편지했다.
“너는 내가 얼마나 성경에 끌리고 있는지 알지 못할 거다. 나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있어. 나는 마음으로 그 성경을 알기를 원한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라는 구절의 빛에서 우리네 삶을 바라보기를 원한단다. (펀지 88)
빈센트가 가장 좋아한 성경 구절 중 하나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였다. 그의 삶은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항상 이 말씀처럼 기뻐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였다.
반 고흐는 문학작품도 많이 읽었다. 그가 책을 얼마나 사랑했고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는 그가 언급한 책 목록만 살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그가 편지에 언급한 작가만 해도 150여 명이 넘고, 그가 언급한 작품은 무려 800권이 넘는다. (박철수, p.41) 그는 발자크, 빅토르 위고, 찰스 디킨스, 르낭, 에밀 졸라, 모파상, 엘리엇, 셰익스피어, 칼라일 등 당시 영미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작가들의 책까지 두루 읽었다. (라영환, p.325) 그는 이렇게 편지했다.
“나는 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나는 마치 성장하기 위해서 빵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이 공부를 통해서 나를 향상시키고 싶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과거에 지금과는 달리 그림을 수집하거나 팔때 엄청난 열정이 있었지. 그리고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아.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어. 하지만 단지 과거를 그리워 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우울을 선택했어. 생동감 없이 침체된 그런 우울이 아닌, 희망을 품고 탐구하는 우울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성경과 미슐레의 〈프랑스 대혁명〉을 열심히 공부했었지…. 셰익스피어와 같이 신비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의 언어와 전개 방식은 마치 흥분과 감동에 떠는 붓과 같은 느낌이 들어. 사람은 보는 방식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하듯이 책을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해.” (1880. 6.22-24)
그는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을 그렸다. 성경이 펴져 있긴 하지만, 그 옆에 수없이 읽어 헤어진 책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 그려져 있다. 이를 두고 일반 미술사가들은 성경을 구세대로 보고, 에밀 졸라의 소설은 신세대로 보아, 이 그림은 성경이 대표하는 기독교는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계몽의 시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그림이라고 하였다. (안재경, p.20) 한 마디로 성경과 문학작품을 대조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화란의 자유대학 교수 안톤 웨셀(Anton Wessels)은 반고흐의 문학에 대한 언급이나 그림이 성경과 신앙에 대한 반대 사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Wessels, p.119) 그가 그린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성경 오른쪽 상단에 고흐는 프랑스어로 ‘이사야(Isaie)’, 그리고 성경 중간에 로마 숫자 LIII라고 선명하게 그렸다.
그건 이사야 53장이다. 이사야 53장은 고난 받는 종으로서 예수님을 노래한다. 고난 받는 예수는 고흐가 일생 따라 살아가고 싶어했던 롤 모델이었다. 고흐는 성경과 문학 작품이 서로 반대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상호 보완한다고 생각했다. 반 고흐는 무조건 믿습니다 외치면서 신앙만 강조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는 신앙이 삶으로 연결되기를 소망했다. 그는 세상을 알기를 원했고,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기를 원했다. 그는 책을 길동무이자 스승 그리고 소울 메이트로 여겼다. 책은 그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예술 매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는 좋아하는 작가들과 내면의 대화를 하였고, 자신의 예술적 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Mariella, p.167)
그는 빌레미엔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그 안에서 책을 만든 예술가를 찾는단다.
빈센트는 죽기 며칠 전 동생 테오에게 편지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 내가 변변치 않게 알고 있는 영어 몇 마디를 잊지 않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정말 아름다운 책이야. 우리 시대의 어떤 소설들처럼 여기에서도 내 가슴을 울리는 것은, 이 사람들의 목소리, 특히 이렇게 시공을 몇 백년이나 건너뛰어 다가오는 그 목소리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는 거란다. 아주 생생해서 마치 그들을 알고 있고, 그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 같구나. 내가 꼭 여기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바로 셰익스피어란다.”
빈센트 반 고흐는 죽는 순간까지 책 읽기 계획을 세웠고, 삶의 의지로 충만했다. 그는 동생에게 귀한 교훈의 편지를 했다.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패배하고 말거야.”(Gogh, p.20)
Guzzoni Mariella, ‘Vincent’s Books’(빈센트가 사랑한 책) 김한영 옮김, 이유출판, 2020년
Vincent Van Gogh,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8.
Wessels Anton, A Kind of Bible Vincent Van Gogh As Evangelist, SCM Press, 2000년
라영환, 반 고흐, 꿈을 그리다, 피톤치드, 2020년
박철수, 반 고흐 상처입은 치유자, 대장간, 2019년
안재경, 고흐의 하나님, 홍성사,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