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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18. 2022

고흐와 밀레

빈센트 반 고흐가 밀레에 대해 열성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21살 때였다. 1874년 런던 구필 화랑에서 일할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했다. “훌륭해, 이 그림은 시야”


그는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밀레의 추모 전시회에서 밀레의 파스텔화와 드로잉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Guzzoni, p.71). 그는 이렇게 썼다. “드로우 호텔의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이런 느낌이 들었단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그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소명 받을 때 들었던 말씀을 떠올렸다.

서양 미술사를 쓴 곰브리치는 고흐와 밀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과 벨기에의 광산촌에서 전도사로 일할 만큼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는데,밀레의 작품과 거기에 담긴 사회적 교훈에 큰 감명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Gombrich, p.544)


고흐가 밀레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은 프랑스 작가 겸 시인인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1815-1877)가 쓴 밀레의 전기를 읽은 후였다. 그는 밀레의 전기를 읽고 테오에게 편지했다.

‘들어봐, 테오야. 밀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난 드 보크한테 돈을 빌려서 상시에가 쓴 대작을 구입했어. 떨리는 가슴에 밤늦도록 등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지. 상시에의 <밀레>를 읽다가 밀레에 관한 한 문장에 감동하고 또 감동했단다. 이 문장이야. “예술은 전투다. 예술가는 전 생애를 예술에 바쳐야 한다”’(Guzzoni, p.72)


상시에는 밀레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수집가였다. 대개의 전기가 그러하듯, 상시에는 밀레를 이상적인 농민 화가로 그렸다. 고흐는 상시에게 묘사한 밀레의 모습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상시에의 밀레는 자기 미술의 가난한 대상과 연대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글에 따르면, 밀레는 1849년 소박한 농부들 속에서 살기 위해 파리의 도시생활에서 탈출했다. 그는 가난을 선택하였고, 농민을 위하여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밀레는 잿빛 스웨터를 입고 빈민들의 상징인 나막신까지 신었다. 밀레는 항상 가슴 속에 시골의 불쌍한 빈민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을 품었다. (Naifeh & Smith, p.492)


그러나 실제 밀레의 모습은 상시에가 묘사한 것과는 달랐다. 밀레는 농민보다는 파리의 세련된 친구들을 좋아했고, 명성만큼이나 낭비벽이 있어 많은 부채가 있었다. 그는 곧잘 소박한 옷을 입었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화려한 신사 복장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제단사에게 아낌없이 돈을 썼다(Naifeh & Smith, p.492).


그러나 상시에는 밀레를 철저하게 농민 화가의 모델로 묘사했다. 상시에는 전기에서 밀레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계속해서 고통을 느끼고 싶다. 고통이란 화가가 자신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하도록 해 준다.”


고흐는 상시에가 쓴 밀레의 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고흐는 아버지가 죽은 후, 밀레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밀레야 말로 농민화가로서 이타적으로 헌신하며 살아간다고 상상했다. 그는 밀레를 무시당한 대상을 위해 순교하는 그리스도이자, 정도를 벗어나 사치를 즐기는 화가들에게 예술의 소박함과 무한함 속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선지자로 보았다(Naifeh & Smith, p.493).


고흐는 테오에게 밀레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내가 느끼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것은 드라크루아와 렘브란트뿐이다. 그리고 밀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렸다. 그림이 아닌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외의 종교적인 그림들은 약간 냉소적으로 보게 된다.”


반 고흐는 그림과 책으로 접한 밀레를 자신이 평생 따라가야 할 모범으로 생각했다.  그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평생 30점 이상 그렸다(라영환, p.243). 밀레는 한 소재를 자신의 것으로 녹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가 그린 씨 뿌리는 사람 작품 중에 남아 있는 것은 1881년 4월에 그린 것뿐이다(박철수, p.292).


고흐는 상시에가 그린 밀레의 모습을 따라 농민 화가로 살기로 다짐했다. 고흐는 음식, 음료, 의복 및 잠자는 것까지 농민처럼 살기를 원했고, 밀레가 했던 것처럼 나막신을 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Wessels, p.20).


그는 테오에게 편지했습니다.

“더럽다, 상스럽다, 추잡하다, 악취가 난다는 등 비난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던 밀레나 드 그루 같은 여러 화가가 인격의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러한 비난에 흔들린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럴 수는 없다. 농부를 그리는 사람은 농부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한 사람 농부가 되어 그려야 한다. 왜냐하면 농부와 똑같이 되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1885년 4월 30일)(Gogh, p.420)


그러나 밀레의 실제 모습은 고흐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밀레는 농부들 삶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어두운 측면을 조심스럽게 가리고, 한편의 서정시로써 농촌 생활을 고상하게 미화하였다. 밀레는 무의식적으로 농부들을 아름답게 그렸다. 거름 냄새라고는 배어 있지 않은 그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경건하고 가끔은 아름답게 균형 잡힌 몸짓을 보았다.(Nigg, p.84-85)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의 전철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고흐 역시 밀레처럼 자연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고흐는 밀레의 전기에서 묘사한 것처럼 살려고 노력했으며, 농민들의 아픔과 눈물과 삶의 현실을 조금도 가감 없이 표현하려고 했다. 그는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는 농민들보다 자신을 더 낮추었고, 그의 수고와 희생하는 삶을 사람들이 비웃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밀레의 실제 삶이 어떠하든 고흐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밀레의 모습을 실제로 추구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고흐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한없이 낮아져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았다. 고흐 역시 예수님처럼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농민들 곁에 있기를 소망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씨 뿌리는 사람을 통해서 말씀을 파종하는 자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실존적 열망을 그렸다. 고흐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리면서, 그 그림에서 자기 삶을 요약하는 개념을 찾았다. (Guzzoni, p.73)


참고도서

Gombrich E.H., The Story of Art (16th Edition)(서양미술사), 백승길, 이종숭 옮김,  도서출판 예경, 2010

Guzzoni Mariella, ‘Vincent’s Books’(빈센트가 사랑한 책) 김한영 옮김, 이유출판, 2020년

Naifeh Steven and Gregory White Smith, Van Gogh : The Life(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최준영 옮김, 민음사, 2016.

Nigg Walter, Vincent van Gogh Der Blick in die Sonne(빈센트 반 고흐, 태양을 보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2011.

Vincent Van Gogh, Ever Yours :   The Essential Letters, Yale University Press. 2014

Wessels Anton, Van Gogh and the Art of Living, Henry Jansen tr, Wipf and Stock Publishers, 1984

라영환, 반 고흐, 꿈을 그리다, 피톤치드, 2020년

박철수, 반 고흐 상처입은 치유자, 대장간, 2019년


https://www.youtube.com/watch?v=YmaTRmt5I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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