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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19. 2022

고흐와 렘브란트

렘브란트는 빈센트 반 고흐가 존경했던 화가다. 그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한 화가로 생각하였기에 ‘마술가 중의 마술가’(Gogh, p.141)라고 하였다.


그가 렘브란트를 좋아한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그는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인간성을 발견하고 기뻐하였다. 19세기가 되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성이 점차 상실되어가는 상황에서 고흐는 크게 실망하였다. 그때 고흐는 렘브란트야말로 인간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한 화가라고 생각했다. 렘브란트는 자연과 영원을 결합할 줄 알았고, 나이가 들수록 자기 예술의 이 신비를 더욱 강화할 줄 알았다(Nigg, p.92).

그는 테오에게 편지했다.

“화가 중에 한 사람, 오직 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렘브란트만이 가진 것이 바로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란다. 〈엠마오로 가는 길(Pilgrims at Emmaus)〉 이나 〈유대인 신부〉, 또는 네가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던 그 그림의 천사 같은 신비한 인물, 가슴 저미는 다정함,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 속에서 얼핏 비치는 초인적이고 무한한 존재 -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여러 곳에서 그런 존재를 마주치게 된단다 (Guzzoni, p.176).


고흐는 안톤과 함께 암스테르담 미술관을 방문해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았다. 그때 고흐는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를 보았는데 그만 얼어버렸다. 안톤은 그 그림에서 고흐를 떼어 낼 수 없었다. 결국, 안톤 혼자 미술관의 작품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고흐는 오직 그 그림만 집중하여 보았다. 안톤은 그 당시 그의 모습을 회고하였다.

“나중에 그 자리로 돌아와 보니, 빈센트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앉았다가 섰다가 기도하는 사람처럼 몽상에 빠져 두 손을 맞잡고 있다가 그 그림에서 겨우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강렬하게 응시했다가,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시야에서 사람들을 내쫓았다(Naifeh & Smith, p.518).


고흐는 유대인의 신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 앞에서 보름 동안 마른 빵 부스러기만 먹으며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내 삶의 십 년도 기꺼이 바치겠다.”


고흐는 렘브란트의 성경 독송을 모사한 판화를 무척 소중히 여겼다. 이 작품 속에는 늙은 여자, 젊은 어머니, 요람 속 아이가 있다. 젊은 여자는 성경을 읽었는데 당시 관습대로라면 큰 소리로 낭독하였을 것이다. 반 고흐 가정도 그 관습을 지켰다. 반고흐는 어렸을 적 가족과 함께 책을 읽던 기억 때문인지 이 판화를 소중히 여겼다. 그는 이 판화를 테오와 여동생과 시엔에게 주어 벽에 걸도록 하였다(Guzzoni, p.147).


그는 렘브란트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어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렘브란트의 그림을 사진으로 보았는데, 큰 감동을 하였다. 빛이 가슴, 목, 턱, 코와 뺨 위로 비치고 있는 한 여인의 초상화인데, 이마와 눈은 붉은 깃털이 달린 큰 모자에 가려 그늘져 보이고, 가슴이 깊게 파인 상의에도 노란색과 붉은색 깃털이 달려 있다. 배경은 아주 어둡다. 여인은,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는 미소를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Gogh, p.138).


고흐가 렘브란트를 좋아한 두 번째 이유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성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반 고흐는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할 때도 렘브란트는 크게 작용하였다. 그는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는 수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트리펜위스로 가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감상했다(Bonafoux, p.33). 그는 렘브란트야말로 인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화가로 생각하였다(Bonafoux, p.27). 그는 렘브란트를 한없이 존경하였다.


그는 테오에게 편지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 렘브란트를 좋아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사실을 분명하게 믿게 될 것이다."


그는 렘브란트가 그린 성경 이야기를 모사하기를 즐겼지만, 직접 그리기는 꺼렸다. 그는 성화를 그리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예쁘게 그린다고 성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렘브란트야말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표현한 화가라고 그는 생각했다.


네덜란드의 기독교 미술사학자 한스 로크마커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작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 작품들은 종교적 선전이나 거룩한 광고를 위한 수단으로 제작되지 않았다. 그 작품들은 영혼 구원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목적이며 유의미하다. 그러므로 그 작품들은 심오하고 소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Rookmaaker, p.41).


빈센트 반 고흐는 렘브란트와는 달리 일상적인 삶을 주제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길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는 일상의 언어가, 일상의 상징이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일으키는 길을 찾았다(안재경, p.259).


네덜란드 자유대학의 안톤 웨셀 교수는 그의 책 서론에서 고흐야말로 성경을 예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믿음의 삶을 표현하였다고 했다(Wessels, p.XV). 고흐는 화가나 설교자는 형제간이라고 단언하였다(Naifeh & Smith, p.232). 그는 렘브란트 안에 복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렘브란트가 그렸던 성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결국, 죽기 전에야 비로소 성화 세 점을 그릴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모사이지만, 그 나름의 생각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러나 고흐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성화라기보다는 그가 일상의 삶을 통해 표현한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과 정신을 드러낸 그림들이다. 문화가 삶이 되고 일상이 된 현시대에선 렘브란트보다 고흐가 훨씬 더 영향력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고흐의 그림은 일상 속에 자연히 녹아들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게 한다.


참고도서

Bonafoux Pascal, Van Gogh : Le soleil en face(반 고흐, 태양의 화가), 송숙자 옮김, 시공사, 1996

Guzzoni Mariella, ‘Vincent’s Books’(빈센트가 사랑한 책) 김한영 옮김, 이유출판, 2020년

Naifeh Steven and Gregory White Smith, Van Gogh : The Life(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최준영 옮김, 민음사, 2016.

Nigg Walter, Vincent van Gogh Der Blick in die Sonne(빈센트 반 고흐, 태양을 보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2011.

Rookmaaker R. Hans, Art needs no Justification(기독교와 현대예술), 김헌수 옮김, IVP, 1987.

Vincent Van Gogh, Ever Yours :   The Essential Letters, Yale University Press. 2014

Vincent Van Gogh,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8.

Wessels Anton, Van Gogh and the Art of Living, Henry Jansen tr, Wipf and Stock Publishers, 1984

안재경, 고흐의 하나님, 홍성사, 2021년

https://www.youtube.com/watch?v=2FmPxtaEA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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