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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Jun 03. 2022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총 2천여점을 작품(유화 850여점, 소묘 1100여점)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 초기 대표작은 ‘감자 먹는 사람들’이고 후기 대표작은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1885년 뉘넨에서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은 습작이 아니라 완성작이라 여겼던 첫 작품이며 일생 동안 가장 사랑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Erickson, p.158).


그는 이 작품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동생 테오에게 보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안재경, p.59).

이번엔 친구인 화가 반 라파르트(Van Rappart,1858-1892)에게 잔뜩 기대를 가지고 석판화 작품을 보냈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혹독한 비평이었습니다

라파르트의 편지는 이러합니다. 

“그러한 작품에 진지한 의도가 없다는 나의 말에 동의할 것이네. 다행히도 자네는 그보다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모든 것을 그처럼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피상적으로 다루는가? 왜 움직임을 배우지 않는가? 사람들은 그저 포즈를 취하고 있을 뿐이고 배경에 있는 여인의 귀여운 작은 손은 사실감이 전혀 없다네. …오른쪽의 남자는 어째서 무릎, 배, 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리고 그의 팔이 그렇게 짧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 코가 반밖에 없이 지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처럼 그리면서도 뻔뻔스럽게 밀레와 브르통의 이름을 들먹이다니. 제발! 예술이란 너무 숭고한 것이어서 그처럼 무심하게 다루어선 안된다고 나는 생각하네.”(서성록, p.16)

빈센트 반 고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흐가 대표작이라고 여겼던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모델의 포즈나 인체의 비율을 거론하면서 예술을 전혀 모른다고 혹평하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기 작품의 의도를 설명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라파르트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그림을 본 많은 화가들이나 미술사학자들이 혹평하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사학을 가르치는 양정무 교수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무겁고 칙칙하다고 평가합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의 화풍이 지속됐다면 과연 반 고흐가 후대에 유명해졌을까? 의문을 가집니다. 

그런 그가 프랑스 파리에 가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색을 쓰면서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일견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사촌인 안톤 모베(Anton Mauve)에게서 색채사용과 모델관찰 등 그림의 기초를 배운 것 외에는 정규학습을 받지 않았습니다.(서성록, p.15)

그의 미술 훈련은 주로 밀레, 들라크루아, 렘브란트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독학한 것이 전부입니다. 

비록 정규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그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그림에 담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림에 대한 자기 생각을 테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고흐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림만 보아서는 안되고, 그가 쓴 편지를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85년 겨울에서 1886년 이른 봄까지 ‘농촌 회화’라는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복음 전도자가 되고 싶어 보리나주를 찾아 걸어갈 때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서 감자 몇 알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 검게 그을린 얼굴과 주름진 손과 굽은 허리를 보면서, 삶의 고단함만 본 것은 아닙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한다.” (신성림 옮김, p.120)

그는 손에 흙을 뭍히고 일하는 농부의 삶은 고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밀레나 이스라엘스가 농민들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린 농부의 삶은 실제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어딘지 모르게 향수가 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라영환, p.268) 

밀레의 그림은 지나치게 경건성을 강조하였고, 이스라엘스의 그림은 우아하였습니다. 


고흐는 이렇게 말합니다. 

“농부의 삶을 담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게 아니다. 마구간 그림이 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훌륭하다고 해야겠지. 바로 그게 마구간이니까.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신성림 옮김, p.122)


그는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면서 농부들의 고단한 삶을 그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농부의 수수한 회색 집을 지나쳤습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는 즉시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안재경, p.55).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수개월에 걸쳐 이리 저리 연구해봅니다. 

농부의 머리는 40번이나 반복적으로 그렸습니다(신성림 옮김, p.132).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녹초가 될 때까지 작업했습니다. 


얼핏 보면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색채는 꽤 어두워보여 칙칙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빈센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땅에 밀착된 노동자들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어둡고 단조로우며 탁하고 우중충한 색을 사용했습니다

이 색은 흙 묻은 감자와 비슷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더러운 색을 보면 언짢아하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Nigg, p.90)

감자는 흙에 대한 빈센트의 사랑과 토양과의 교감을 상징합니다(Fell, p.100).


그는 기교보다는 표현의 힘을 추구했으며, 자신의 영혼을 작품에 불어넣으려고 했습니다(Nigg, p.74)

빈센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은 우리 자신의 기교나 지식이나 배움 보다 더 위대한, 더 높은 무엇이라는 적극적인 의식에 근거한다는 것일세. 예술은 인간의 손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지 손뿐만 아니라, 더 깊은 원천으로부터, 우리 영혼으로부터 용솟음치는 무엇이라네.”(박홍규 옮김,p.308)

빈센트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빛의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벽에 반사된 불빛은 삶에 찌들리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농부들을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그건 어둠 속의 빛이고, 슬픔 속의 희망입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그림이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안식을 주기를 원했습니다(라영환, p.291).

그는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신성림 옮김, p.121).


발터 니그는 ‘감자 먹는 사람들’의 초라한 식사에서 성만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Nigg, p.131)

샤피로는 “식탁은 그들의 제단이요 빵은 그들이 농사지어 얻은 성례물”이라고 하였습니다(서성록,p.250 재인용)

반 고흐가 “음식과 종교를 결부시킨 데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가장 평범한 일 속에서 성스러움의 전통적인 소재인 십자가와 예배당보다 더욱 큰 감동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Erickson, p.159).


빈센트는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성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사상의 겟세마네 동산을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고뇌의 인간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또 마음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산상수훈의 인물을 그릴 필요가 없음”(박홍규 옮김, p.725)을 역설했습니다.

마틴 부버는 “유대 - 기독교 신앙은 이 비종교적인 속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이미 이 세상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법,평범한 것을 취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Frost, p.59)

빈센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박제된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시면서 우리에게 다시 사랑하라고 뿌리칠 수 없는 권유를 하는 하나님이 계시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Cliff, p.128 재인용)

To me, to believe in God is to feel that there is a God, not dead or stuffed but alive, urging us to love again with irresistible force —that is my opinion. (Letter 161)

빈센트는 일상 속에서 느낀 하나님과 사람을 그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고흐는 그저 평범한, 아니 심하게 말하면 정신 이상 증세로 인물화나 풍경화를 그렸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빈센트의 예술은 믿음 깊은 사실주의가 들어 있습니다(Nigg, p.88).


참고도서

라영환, 반 고흐, 꿈을 그리다, 피톤치드, 2020년

서성록,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연구, 예술과 미디어 12권 3호, 2013, 7-30(24)

안재경, 고흐의 하나님, 홍성사, 2021년

Cliff Edwards, The Shoes of Van Gogh, A Crossroad Book, 2004.

Erickson Kathleen P. , At Eternity’s Gate : The Spiritual Vision of Vincent Van Gogh(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 안진이 옮김, 청림출판, 2008

Fell Derek, Van Gogh’s Women, His Love Affairs And Journey Into Madness(반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 최일성 옮김, 세미콜론, 2007.

Frost Michael, Eyes Wide Open Seeing God in the Ordinary(일상, 하나님의 신비), 홍병룡 옮김, IVP, 2002.

Nigg Walter, Vincent van Gogh Der Blick in die Sonne(빈센트 반 고흐, 태양을 보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2011.

Vincent Van Gogh,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8.

Vincent van Gogh, Letters from Vincent van Gogh(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박홍규 옮김, 아트북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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