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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23. 2022

회개의 새로운 의미

이스라엘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한 이후 독립 국가로 존재한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은 4백 년 이상 타민족에게 식민지배를 받았다. 우리나라도 일본에 36년간 식민지배를 받았다. 해방이 된지 7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파라는 말이 최고의 욕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일본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사회 이슈이다.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리고 식민지배를 받는 백성은 권리와 이익을 보호받지 못한다. 강제로 징용되어 전쟁터에 나가 젊은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탄광이든 공장이든 어디든 끌려가서 노동하다 목숨을 잃어도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 대포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놋그릇, 놋수저를 빼앗아 가도 당해야만 했다. 먹을 것을 다 빼앗기고, 소나무 껍질이나 풀뿌리를 먹어야 했다. 일본의 억압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이를 갈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일하여 번 돈을 모아 독립헌금을 하였다. 독립운동하다 체포되고 고문받아 손톱과 이빨이 뽑힌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선 죽음도 마다치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열사라고 부른다. 오죽하면 자기 생명까지 바쳐 저항했겠는가?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36년 식민 지배가 그 정도였다면, 400년 이상 식민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은 어떠했을까? 그 당시는 폭탄이 없어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면서 저항하던 열심당이 있었다. 나라를 구한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메시아로 여기고 사람들은 쫓아다녔다. 로마군의 폭력과 로마 앞잡이들의 간사함과, 로마와 타협하는 지도층과 종교지도자들은 온갖 비난과 험담의 대상이었다. 백성의 90% 이상이 절대 빈곤에 시달렸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증오와 억울함과 저항과 분노가 400년 동안 차곡차곡 쌓였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은 병들었다. 만일 그들이 힘을 가지면, 로마군과 로마의 앞잡이들을 처단할 것이다. 그동안 괴롭힘 받은 것의 백 배, 천 배로 갚아줄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이제 피해자는 가해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때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선포하였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2)

누구에게 회개하라고 하셨는가? 로마군과 로마의 앞잡이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는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하셨는가? 그동안 온갖 수모와 억압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회개는 자기 죄를 버리고 구원에 관한 교리를 받아들이라는 말로 해석한다. 진실한 회개가 없으면 죄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다고 가르치는 극단적 기독교인도 있다. 영성 지도자 칼훈은 회개란 “우리 삶의 안 좋은 부분들을 하나님께 공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우리 죄를 보아 달라고 청하는 것’이라고 하였다(Calhoun, p.138). 캐나다 맥길 대학의 더글라스 교수는 ‘회개란 삶의 철저한 방향 전환, 자기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는 것”이라고 하였다(Douglas, p.190). 모두 멋진 정의이다. 그러나 조금은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 그건 회개를 개인에게 한정 지어 해석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 그의 책 ‘성도의 교제’에서 공동체의 회개를 언급하였다. 

“부름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인격에게 주어진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회개해야 한다. 죄를 지은 자는 개인이 아니라 백성이다. 따라서 백성도 위로를 받아야 한다.(사 40:1) 백성이 부름을 받는 바로 그때에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존재한다. 이는 개인이 부름을 받는 바로 그때에 그의 역사가 체험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뜻도 존재한다.”


몰트만은 공동체의 회개와 연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해방된 자들의 공동체, 회개하는 자들의 공동체, 희망하는 자들의 공동체다. 그들의 공동체는 세상에서 자유의 부름을 확산하는 일에 기여하며, 새로운 공동체로서 스스로 희망의 사회적인 형태가 되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적인 봉사에 참여하며, 복음의 증인이다” (Moltmann,  p.139).


예일대학의 미로슬라브 볼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에서 회개를 성찰하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회개는 가해자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피해자에게도 해당한다고 역설하였다. 가해자가 회개하는 건 상식적인 요구이지만, 피해자도 회개해야 하는가? 그건 그들이 그동안 온갖 피해를 받으면서 마음에 쌓았던 분노와 적개심과 복수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이슬람의 자살 폭탄 테러처럼 복수심으로 자신의 몸을 불사를 수 있다. 그러한 분노의 방식, 폭력의 방식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내게 힘이 없고, 돈이 없으니, 판을 갈아엎어서 나도 힘과 돈을 쟁취하여 억울함과 피해당함을 고스란히 되갚아주자는 마음은 파괴적이다. 볼프는 이렇게 말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자주 압제자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스스로 원수의 거울 이미지가 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Volf,  p.184). 
“만약 오늘 희생자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그들이 가해자가 되어 자기 기만 속에 스스로 희생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비행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고 할 것이다”(Volf,  p.185). 


회개는 옛 세계의 사회 체계, 질서 체계를 단호히 거부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를 하나님의 윤리와 방법으로 만들겠다는 방향전환이다. 마르바 던은 안식을 설명하면서 회개를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쉼은 우상숭배에서 믿음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세상이 제공하는 안전은 모두 속임수이며 거짓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며 그것을 신뢰하는 것을 그친다. 특별히 스스로 헤쳐나가거나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포함한다”(Dawn,  p.75).


결론적으로 회개는 단순히 개인의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 좁게 해석하면 안된다. 회개는 월터 윙크 식으로 표현하면, 세상이 지배하는 체제 아래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마음으로는 이 세상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따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를 이루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가 해야 하며, 기존의 세상 질서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며, 마커스 보그의 표현대로 신나는 길이다(Borg,  p.233).


참고도서

Bonhoeffer Dietrich, Sanctorum Communio(성도의 교제), 유석성,이신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 E-book

Calhoun Adele Ahlberg, ‘영성훈련 핸드북’(Spiritual Disciplines Handbook), 양혜원, 노종문 옮김, 서울 : IVP, 2010년

Dawn Marva J., Keeping the Sabbah Wholly(안식), 전의우 옮김, 서울 : IVP, 2001년

Douglas John Hall, 그리스도교를 다시 묻다(What Christianity is Not ; an exercise in ‘negative’ theology) 이민희 옮김, 비아 : 서울, 2020년

Marcus J. Borg, Speaking Christian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김태현 옮김, 비아, 2017

Moltmann Jürgen, Kirche in der Kraft des Geistes - Ein Beitrag zur messianischen Ekklesiologie(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이신건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

Volf Miroslav, Exclusion and Embrace(배제와 포용) , 박세혁 옮김, IVP, 2014

Wink Walter, Engaging the Power : Discernment and Resistance in a World of Domination(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https://www.youtube.com/watch?v=yORlnkLTh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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