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유리조각

한강. 『흰』. 문학동네, 2016

by 로시


한강 작가의 책은 언제나 긴장된다. 아주 추운 겨울의 출근길, 건물 입구를 나서자마자 흡- 하고 숨을 들이쉰 후로 어딘가에 다다를 때까지 아주 얕게 들이마쉬고 내쉬길 반복한다. 얕은 숨이 길어져 어지러워질 때면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심호흡을 하며 내가 발을 디딘 양 쪽의 세상을 오간다.

소설의 구조가 특이하다. 총 3부로 이루어져있는데 각 부는 '흰'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에세이처럼 지면이 나뉘어있다.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 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10쪽)

주인공은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어머니의 첫 아기를 종종 떠올린다. 본 적도 없는 존재지만 제법 가깝게 느낀다. 일종의 부채감인지도 모른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경험을 묻자 차마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어머니의 첫 아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기르던 개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손을 뻗어 개의 목과 등을 쓰다듬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21쪽)


난 여름 도망치듯 찾아간 지구 반대편의 어느 도시에는 과거 전쟁으로 살해당한 이들이 있다. 현재 그들을 애도하는 이들의 꽃과 이야기가 있다. 토막난 장면으로 제시되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태어난 지 2시간만에 죽은 어머니의 첫 아기도, 전쟁 중 살해당한 타국의 사람들도 그리고 이 시대에 그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모두 시간과 공간, 존재의 무게까지 경계가 흐릿해지며 교차한다. 주인공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채로.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 벽 앞에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치는 것이 넋들을 위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살육당했던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래 애도를 연장하려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이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8쪽)



정교하게 세공한 유리조각같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워 아찔한 그런 아름다움이 심장을 조인다. 유리조각으로 놓여진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파삭거리는 소리와 발밑의 감각에 집중하며 글을 따라간다. 앞에 놓인 길이 어떻게 생겼을지, 길 위에서 무엇을 만날 수 있을지 따위의 생각은 불가하다. 지금 내딛는 걸음만이 이 순간 내가 느낄 수 있는 전부이다.

문장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책 전부를 필사하고 싶을 만큼 통째로 삼켜 내 안에 가둬두고 싶은 욕구가 든다. 목구멍으로 삼키면 위를 거쳐 장까지 갈 테고, 몸 구석구석 점막과 혈액을 통해 흡수되어 내 안에 자리잡았으면. 나의 일부분이 되어주었으면.


한강 작가의 글이나 인터뷰를 보면 모든 생명과 죽음의 무게가 벅차게만 느껴진다. 하나 하나의 무게들을 온 몸으로, 마음으로 고스란히 받아낸다. 감싸안기엔 두 팔이 너무 연약해 고통스럽게 짓눌린다. 휘청거리면서도 가슴 속에 타오르는 하얀 불꽃을 외면할 수 없어 글을 쓰는 작가님. 그녀는 하얀색이 참 잘어울린다.

글을 쓰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와 닮았다. 그래서 사랑이 그립고, 삶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 글을 찾아 읽는다. 사랑하고자 애쓴다.


눈송이가 성글게 흩날린다.
가로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검은 점은 허공에.
말없는 검은 나뭇가지들 위에.
고개를 수그리고 걷는 행인들의 머리에.
(55쪽)



한강의 작품을 읽을 때면 시와 산문, 소설의 경계가 무의미하다. 그저 아름다움만이 눈처럼 나려 마음에 조용히 쌓이고, 이내 땅 속에 스민다. 시리다못해 에는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초월한 채 생명과 생명을 마주하게 한다. 무게를 얹는 만큼 해방감을 더한다.

그래서 삶이라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벅차게 느껴질 때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 돌이킬 수 없는 무수한 생명들의 무게를 느끼며 내가 얼마나 이 세상에 깊은 자국을 내며 서있는지 보기 위함이다. 아무 색깔없이 그저 살아있기 위해 한강의 작품을 읽는다. 나와 다른 생명들을 마주하기 위해 한강의 글을 읽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