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낸시 풀다. 『내가 하려는 말은』. 사계절(2025)

by 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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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무척 위로가 되는 책을 만났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의 이야기가 내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아 따뜻한 볕 아래 싹을 틔우는 느낌과 비슷하달까요? 좋은 책의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 하나는 '책장 속에 꽂아두고 가끔 한번씩 꺼내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낸시 풀다의 글과 백초윤님의 그림이 만난 『내가 하려는 말은』, 작품과 옮긴이의 말 그리고 사계절 서평단을 통해 받은 편집자님의 편지까지 셋 다 품에 간직하고 싶은 글이었네요.



첫 번째 단편소설 <움직임>은 청소년 자폐인 한나의 부모님이 신경 연구소 전문의에게 시냅스를 직접 이식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술에 대해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술 신봉자인 아버지는 최대한 빨리 시술을 받길 원하고, 기술을 믿지 않는 어머니는 시술로 인해 한나의 재능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며 한나에게 묻습니다.

한나, 그렇게 하고 싶니? 다른 아이들처럼 되고 싶어?(15쪽)

한나의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는 '시간적 자폐'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몇 시간, 몇 일이 지나고 나서야 질문에 답하는, 그마저도 동문서답일 때가 있는 오래되고 낡은 기계의 반응같이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그건 한나를 모르는 이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한나는 미세한 시간의 단위로 세상과 자신에 집중하여 관찰하고 탐험하고 감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과 관심사가 다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나는 손으로 창유리를 누른다. 손바닥 아래로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가 느껴진다. 유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 아래 분자 수준에서는 유리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원자들이 서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나치며 미끄러진다. 그 속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일어날 변화이다. 나는 유리를 좋아한다. 돌도 좋아한다. 빨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현미경 없이도 알아볼 만큼 변하기 전에 나도, 내 친척들도, 그들의 후손도 모두 죽을 것이다. (14쪽)

시간이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즐겁게 살아가는 삶은 어떤 걸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사는 삶은 어떤 걸까. (18쪽)


생각해보지 않은, 상상하기 어려운 지금의 나로부터 완전히 바뀔 수 있는 선택을 자신에게 물으며 재촉하는 어른들이 한나는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너무 어리다. 그런 결정을 하라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결정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원해야 할지 모르겠다. (22쪽)


한나는 자신에게 내가 아닌 무엇도 되지 말라고 하는 오빠를 좋아합니다. 만경(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반의 게임으로 추정)을 이용하는 오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과 달리, 한나는 만경과 오빠의 가능성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데요. 오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말을 찾기도 합니다. 과연 한나는, 혹은 한나의 부모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두 번째 단편소설 <다시, 기억>은 치매 환자 엘리엇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내 그레이스는 포기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그의 곁을 지키며 그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가족 안에서 행복함과 안정감을 누릴 수 있도록 돕지만, 엘리엇은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모습을 강요받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아내라고 하지만 연애 때부터 결혼, 그리고 그 후 아이들을 낳고 함께 살아간 기억들이 없는 상태에서 아내이기 때문에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느낍니다.



모르겠어?
난 당신이 잃어버린 그 남자가 아니야! 나는 결코 그가 될 수가 없어. (75쪽)


참다 못한 엘리엇이 폭발하고 그레이스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잘못해 왔던 거네."(76쪽)

이때까지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한 그레이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을 강요받던 엘리엇은 이 대화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이 작품을 번역한 정소연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치유는 필요하지 않거나 완전하지 않다. 장애라는 하나의 조건을 바꾼다고 해서 모든 일이 마법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비장애인 가족들이 막연히 기대하듯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다. 주인공의 고립감은 장애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장애 또는 장애의 경험을 주인공의 정체성에서 억지로 분리하고 싶어 하는 비장애인들의 기대 때문이라 생각했다. (88쪽, 옮긴이의 말)



저는 인생을 종종 롤러코스터라고 표현하는데요. 오르막이 있다가도 뚝 떨어지고 바닥에 처박힌 것 같을 때에도 버티다 보면 아주 작게나마 즐겁고 행복한 일이 생기며 제법 괜찮아지는 게 인생인 것 같아서요. 영원한 건 없습니다. '영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기대로 이어지고 때론 그 기대가 나를 처참히 무너지게 합니다. 기대라는 건 삶의 동기이자 원동력이면서 나를 향한 칼이기도 한 거죠. 기대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바로 그 모순이 삶을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게 하는 원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건 없고, 모든 것은 변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나는 과거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도 다릅니다. 옷을 갈아입듯 우리는 평생 다양한 모습과 특성들을 지녔다 잃었다 늘 조금씩 다르게 살아갈 겁니다. 나에게는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의 범주가 아닌 특성이 있을 수 있고, 만약 없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는 다른 소수자로서의 특성을 얻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정상'이 아님에 마냥 슬퍼하며 인생을, 나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살게 될까요?


이 작품은 자폐와 치매라는 장애(혹은 소수자성)를 가진 주인공들을 통해 이러한 특성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 아니며 이미 그 사람의 일부임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여성이고, 30대의 나이에 예술을 좋아한다는 특성들을 가진 것 처럼요.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장애가 그 사람을 이루는 특성 중 하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배려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은 어렵겠지만 노력은 우리의 배려하는 태도를 더욱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줄 겁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스스로에게 향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의 제목에 ( )를 넣었는데요. 여러분은 ( )에 무엇을 넣고 싶으신가요? 저는 항상 '나'를 넣고 싶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며 제 주변에 있는 존재들의 이름을 한 번씩 넣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엄마, 친구, 반려견, 들고양이, 나무, 곤충 등등. 이 모든 노력들이 결국 나에게로 향하는 길일 테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더욱 더 특별했던 하난와 엘리엇의 이야기, 「내가 하려는 말은」으로 만나보시기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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