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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Aug 09. 2020

그리운 제주 시절...

3년간의 제주살이



많은 사람들이 제주살이의 판타지를 갖고 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첫 아이가 막 돌이 지났을 무렵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제주살이의 판타지를 품고 제주로 향했다. 기간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딱 3년만 살아보고 결정하자며 이사를 했고, 정말 딱 3년을 살고 다시 육지(제주에서는 제주와 섬 외 지역을 육지라고 한다)로 이사를 나왔다.




제주행을 결정한 후 남편은 제주도로 이직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육아휴직 이후 복직을 포기하고 제주도에 카페를 차려볼까 게스트하우스를 열어볼까 여러 가지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를 하고 얼마 뒤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했던 꿈은 그냥 꿈에만 머물렀다.


임신기간을 제주에서 보낸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지척에 바다를 두고 마음만 먹으면 끝없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해서 원래도 바다를 좋아하긴 했지만 에너지가 고갈되고 가슴이 답답할 땐 멀리서 보기만 해도 좋았다. 해변에서 보는 예쁜 색깔의 바다도 좋았고, 살랑이는 파도에 몸을 싣고 둥둥 떠다니는 것도 좋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매일 바다를 보며 태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하원한 아이의 모래놀이를 위해 매일 갔던 삼양 검은 모래 해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첫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다. 너른 마당이 있는 어린이집이 정말 좋았다. 어떤 날은 하원 하며 가방에 귤이 달린 귤나무 가지를 넣어 오기도 하고, 정원을 정비하며 잘린 수국 꽃을 가져오기도 했다. 등원 길에 산딸기를 따먹기도 하고, 하원후 모래놀이를 하러 가기도 했다. 도심에 살고 있었다면 경험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하원 하는 아이의 가방이 무거워서 열어보니 귤나무가 들어있었다.




이사할 당시 제주의 이사철인 신구간(설 전후 몇 주간을 신구간이라고 부르며 이사철로 여긴다.)이 아니어서 집을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운 좋게 1층인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꿈은 제주시를 벗어나 시골에 있는 주택을 얻는 것이었지만 아이가 어려서 소아과나 여러 인프라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제주시의 끝자락에 집을 얻었다. 그 집은 부엌 창으로 손톱만큼이었지만 바다가 보였다. (같은 라인 고층은 한라산과 바다가 보여 정말 멋졌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실천하며 매일 저녁 요리를 해 세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면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이를 유아차에 앉히고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는데 만삭 때까도 꾸준히 이어온 저녁 산책 덕분에 출산도 쉬웠다. 그리고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그 시간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시간이었다.



매일 저녁 산책했던 삼양 검은 모래 해변



하지만 둘째를 낳고, 연고도 없는 곳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말 힘이 들었지만 제주에서 사귄 친구들 덕분에 어려운 고비고비를 버틸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는 처음이었다. 나이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친구가 되었고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에서 살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딸, 친구, 추억이라고 답할 만큼 좋은 친구로 남았다.




제주에서 살면서 좋은 점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육지에 비해 인건비가 낮은 제주도는 주 5일 근무하는 곳도 흔하지 않았다. 남편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이직을 했지만 육지에서 받는 연봉을 반으로 줄여서 한 이직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선택이었고 연봉 이외의 것들이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휴직 급여 기간이 끝나고 다른 부수입도 없어지면서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작은아이를 임신한 나는 경제활동을 완전히 멈춰버린 상태였고 이후 작은아이가 태어나 입은 늘고 벌이는 줄어들어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판타지가 산산조각 나고 현실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제주도로 가기 전에 조금만 더 재무적으로 생각을 하고 계획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그리고 제주도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파란 하늘에 옥빛 바다를 뽐내지만 제주도는 1년 중 흐린 날이 더 많다. 그래서 우중충한 먹구름을 머리에 얹고 있는 날이 길어지면 쉽게 우울해졌고, 유달리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하루 종일 쳐져있기도 했다. 하지만 맑은 날은 정말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정말 좋은 곳이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들도 많지만 목적이 뚜렷하다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제주살이는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가 아니었다면 제주로 훌쩍 떠날 수 없었을 것이고 수많은 추억들도 다른 것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집에 놀러 오신 친정엄마를 모시고 우도 하고수동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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