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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Aug 08. 2020

가끔 집에 오시는 바보 손님

fool proof




바보 방지법


풀 프루프는 누구나 실패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산업현장에서는 단순한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바보 방지법이라고 부른다. 바보 방지법. 누구도 바보가 되지 않도록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드는 방법 말이다.


가끔 집에 오는 바보 손님


우리 집에는 몇 달에 한 번씩 오시는 손님이 있다. 바로 우리 남편이다. 장기 출장이 잦은 탓에 요즘은 일 년 중 집에 있는 날이 다 합쳐봐야 50일 정도인 것 같다. 남편은 이렇게 집에 가끔 오는 탓에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한 번은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하던 남편을 보고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다. 싱크대를 청소할 때 쓰는 수세미를 들고 밥 먹은 그릇들을 열심히 씻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수세미로 수챗구멍도 닦는단 말이다... 그 뒤 나는 수세미에 네임택을 달아두었다. 설거지용과 청소용으로 표시해 두니 한결 나았다. 집에서 모임이 있는 날도 함께 먹은 설거지를 친구들이 할 때가 있는데 그때도 번거로움을 줄였다.



하지만 이것을 바보 방지의 방법이라기엔 부족하다. 아직 글을 모르는 7살 딸아이가 의자를 놓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면 십중팔구 핑크색을 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용 수세미는 아예 청소용 세제 목에다 걸어 두었다. 그러면 누구나 저건 청소할 때 쓰는 것이겠구나 하고 알 것이고, 수세미를 바꿀 때마다 네임택을 만드는 수고로움도 덜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청소용 수세미를 아예 없앤 적도 있었는데 수챗구멍은 매일 설거지할 때마다 닦으면 검은 물때가 아예 생기지 않기 때문에 훨씬 깨끗하게 쓸 수 있다.)


바보 방지 =  환경설정


아이들의 손 씻기 습관을 기를 때도 이 방법은 빛을 발했다. 외출 후 집에 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귀에 딱지가 않게 잔소리하는 대신 현관문을 열면 보이는 중문에 손 모양을 크게 그려서 붙여 두었다. 처음에는 없던 그림이 있으니 알아차리고 손을 씻으러 갔는데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다시 제자리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줄 쳐서 막고 그 줄에 손그림 종이를 매달아 두었다. 바로 옆에 화장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말이다. 꽤 오랫동안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면 줄을 매 두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집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는다.




생각해보면 바보 방지법도 결국은 환경설정의 한 형태이다. 어떤 행동을 할 수밖에 또는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우리 집에 또 어떤 바보 방지법으로 더 나은 환경설정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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