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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Aug 07. 2020

커피 없인 못살아

카페인 중독자의 변명




나에게 첫 커피는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며 홀짝인 자판기 커피가 처음이었다. 달고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그 맛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종이컵에 반밖에 담기지 않은 자판기 커피는 독서실에 들어가며 한잔, 졸리면 또 한잔, 오며 가며 동전이 있으면 또 한잔씩 나에게 카페인과 당을 제공했다. 믹스커피에 길들여진 내 입맛은 시내에 우후죽순 생겨난 카페에서도 시럽 듬뿍 담긴 캐러멜 마끼아또만 선택했고, 커피보다는 논 커피 음료를 더 자주 선택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보라카이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방학을 맞이한 동생이 놀러 와서 한 달 정도 같이 지냈다. 그때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며 어른인척을 하던 동생은 ‘아메리카노’를 마셔 봤냐며 나에게 권했다. 처음에 나는 ‘윽 그 쓴걸 왜 먹냐’하고 반응했다. 하지만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입안에 퍼지는 그 맛은 이내 나를 커피의 매력에 빠트렸다.


여름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종일 비가 오는 우기가 되면 서늘한 날씨가 이어졌는데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커피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우기가 되면 방안에 가득한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에어컨을 켜놓고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이면 덜덜 떨며 눈을 떴다. 그래서 눈뜨면 대충 옷을 꿰어 입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카페로 나갔다. 해변에 세차게 부는 바람과 거센 파도를 보면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삼키면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나의 행동은 완벽하게 습관으로 굳어졌고, 그 패턴은 약간 바뀌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창 첫 아이를 낳고 고군분투하던 시절에는 카페에 나가는 것이 힘들어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러 나가는 것이 소원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남편은 나에게 네스프레소 머신을 사주었다. 당시 캡슐커피는 신문물이었고 나는 수많은 캡슐들을 탐닉하며 커피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거기에 갓난쟁이를 돌보며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졸린 눈을 뜨려고 하루 네다섯 잔의 커피를 들이부었다. 어쩌다 캡슐이 떨어져 커피를 못 마시는 날이면 눈이 떠지지 않는 몽롱함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커피에 집착하며 하루에 적게는 3잔 많게는 7잔의 커피를 마셨다.


심각한 카페인 중독자가 되어버린 나는 완벽한 야행성이 되었으나 이젠 낮에는 일을 하고 아이들을 챙겨야 하니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면 부채를 쌓아왔다. 지금은 잘 자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오후에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마시는 커피의 양을 줄이기도 했다. 한 달 정도 완전히 끊은 적도 있지만 일찍 자는 습관은 아직 멀기만 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내가 좋다. 볕 좋은 자리에 앉아 진한 커피 한잔과 책 한권만 있으면 나는 더없이 풍족한 기분이 든다. 만약 내 삶에서 커피를 몰아내야 한다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다. 우선 3대나 갖고 있는 커피머신을 처분해야 한다. 애정하고 소유하는 물건을 처분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이 커피를 놓을 수가 없다.  


엄마는 쓴 커피를 왜 마시냐는 아이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거 사실 엄마 약이야.”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힘겨운 고비고비를 넘게 해 준 것이 커피였다면 이제는 바쁜 틈바구니 속에서 여유를 만들어주는 도구로 내 인생에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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