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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Aug 19. 2020

문간방에서 사무실까지

내 공간이 꼭 필요했다.




나는 내 공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단 한 평이어도 내 잡동사니들을 늘어놓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최고의 휴식처이고 내 모든 환경설정의 근원이다.  



처음 내 방을 가진 18살 이후부터 나는 항상 내 공간을 고수하며 살아왔다. 결혼 직전에는 자취를 하며 다른 사람들은 월세방에 하지 않는 현관문을 리폼하고, 싱크를 리폼했다. (물론 집주인의 허락을 받았고 한 것을 보고 좋아했다.) 내 공간을 아늑하게 꾸미고 그 안에서 지내는 내가 너무 좋았다. 양재천 근처에 있는 그 집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내 공간'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결혼하면서 집을 직접 꾸미고 쓸고 닦으며 이 집이 내 공간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 말고, 단 한 평이어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결혼 초기에는 주방에  내 공간이라는 의미를 두고 다른 이의(남편+a) 침범을 경계했다. 물론 주방에 못 들어오게 하는 조선시대 같은 상황을 연출한 건 아니다. 그저 내 공간이니 내 의도대로 하겠노라며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하려 했다. 엄청나게 싸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방은 내 공간이 아니었다.



내 공간이 없어지자 나는 공허하고 뭔가 헤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오래도록 그렇게 지낸 것 같다.




3년 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거실에서 택배를 싸고, 식탁에 노트북을 놓고, 팬트리에 있는 김치냉장고에 재고를 보관했다.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신나서 효율 같은 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다가 쌓여있는 설거지가 보이면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 끝나면 달려가 빨래를 꺼냈다. 뭔가 멀티태스킹의 천재 같은 느낌이 들면서 엄청 부지런해진 것 같았지만 그건 착각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가사도 업무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결국  제일 작은 문간방을 비워 김치냉장고를 옮기고 사무실을 차렸다. 너무 좋았다. 남편은 그 방을 '000 본사'라고 불렀다.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었고, 일의 규모는 점점 커져 더 넓은 공간을 갈망했다. 결정적으로 업소용 냉장고를 들이면부터 누진세가 붙을까 조마조마해하며 계량기를 수시로 체크했고, 상업용 전기를 쓸 수 있는 사무실을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사무실을 냈고 진짜 내 공간이 생겼다. 인테리어 같은 건 할 여력이 없었지만 내 나름의 기준으로 요리조리 가꾸고 꾸몄다. (꾸몄다고 하기엔 너무 창고 같지만) 매일 일 할 맛 이 났고, 집에 가기 싫었다. 물론 집과 사무실 두 공간을 오가며 두 집 살림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일의 능률을 높여줬다. 그리고 고정비가 크게 올랐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무실을 낸 것은 수익창출에 큰 몫을 했다.



그저 내 안정감을 위해 필요했던 내 공간은 이제 내가 가장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환경설정의 한 방법이 되었다. 일과 가사를 분리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고, 대출을 냈기 때문에 혹은 월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강제 장치가 되었다.



나는 공간의 힘을 믿는다. 인테리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채워지는 사람의 에너지와 애착이 그 공간을 힘 있게 또는 힘없게 만든다고 믿는다. 어디든 내가 만든 내 공간이 에너지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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