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플마 Aug 06. 2023

생선을 더+더 맛있게 먹는 방법

   "저쪽에 가서 '케케' 해보세요."

의사가 내게 말했다. 나이가 아주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 의사이시다. 아마도 이런 치료에는 경험이 많으신가 보다.

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의원의 한쪽 구석에서 '케케'를 반복했다.

그러자 목구멍 안쪽에 걸려있던 생선 가시가 쑥 튀어나왔다.

어제 저녁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던 놈이다.

이제 치료가 되었으니 치료비를 내야 한다. 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이런 것도 치료라고 해야 하나?'

이런 속마음을 읽었는지 간호사분이 씩 웃더니,

   "저희 선생님께서 환자분 목 속을 살펴보고 내린 처방입니다. 환자분 상태를 진단하셨으니 치료비는 내셔야 합니다."

나는 약간 멋쩍어하며 돈을 지불했다. 토요일이라 할증까지 붙여서 지불했다.

   '돈이 좀 아깝기는 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아내가 시키는 대로 집에서 케케를 할걸.'

헛 돈을 썼다는 생각에 처음엔 허탈하기만 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난 거금 7만 원을 절약했지 않은가? 결과적으론 잘한 것도 있잖아.'

근데 갑자기 '7만 원 절약'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사연은 이렇다. 어제 저녁 생선을 먹던 중에 제법 큰 가시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다 걸렸다. 입안에 있을 때 감지를 했었으나 아차 하는 사이에 넘어간 것이다. 이런 가시에 난 겁이 많다. 아예 삼켜버리거나 다시 내뱉거나 해야만 했었겠지만 난 그런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다가 가시가 목구멍에 박혀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낚시 바늘이 물고기 입에 꿰이는 것처럼. 아내는 내게 '케케'를 해보라고 했지만, 내가 말을 듣지 않자, '견딜만한가 보네?'라며 씩 웃고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가 계속 거슬렸으나 특별히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좀 참았다가 다음날 이비인후과를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새벽녘 즈음에 목이 약간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난 이런 것에 예민하다. '혹시 못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인근의 대형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돈이 좀 들더라도 큰 탈이 생기기 전에 미리 예방을 하는 게 좋아.'

그런데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응급실의 안내문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글 때문이었다.

   <야간 응급실 진료비 70,000원>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다만 7만 원이라는 숫자는 정확한 숫자이다.

   '아니, 생선가시 하나 빼자고 7만 원이나 써야 하나? 이건 좀 심하잖아.'

목에 걸려있는 생선가시가 거북하기는 했지만 7만 원이라는 거금의 진료비를 보자 못 견딜 것도 아니었다. 몇 시간만 참았다가 동네 이비인후과를 가는 게 났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이비인후과에서 '케케'로 치료하는 처방을 받아 무사히 가시를 빼낼 수 있었다.




앞의 일화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생선은 먹기 싫어. 가시 발라 먹기 귀찮아.'


하지만 이는 옛날 얘기이다.

지금은 생선을 잘 먹는 편이다.

가시도 잘 발라 먹는다.

내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이것이 이 글의 소재이자 주제이다.




일단 생선이란 음식을 내가 왜 싫어했는지부터 시작해 보자. '가시'만이 싫어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생선은 내 입 맛에 맞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난 등푸른 생선이 싫다. 그 이유는, 묘사하기 어려운 어떤 특유의 맛이 등푸른 생선들에서 느껴지는데 그 맛을 내 입에서 거부하기 때문이다. 내 의지로 컨트롤할 수 없는 그냥 본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편 흰 살 생선은 입맛에 잘 맞는다. 좋아한다.
그러면 반문할 수 있다. 등푸른 생선을 안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아내는 식단의 영양 밸런스를 맞춘다면서 생선을 거의 매일 식탁에 올린다. 문제는 아내가 등푸른 생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과 심한 소식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아내가 남긴 등푸른 생선을 내가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진짜 문제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싫은 것을 억지로 하며 살 수는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난 등푸른 생선을 즐기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등푸른 생선을 '보약'으로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몸에 좋다면 쓴 약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등푸른 생선도 보약처럼 먹으니 먹을만했다. 그리고 내가 잘 먹어줘야 아내도 다양하게 생선들을 바꿔가며 먹을 수 있다. 어제 그제 먹다 남긴 생선을 오늘도 먹으면 지겨울 테니까. 이렇듯 내가 등푸른 생선을 먹는 이유에는 아주 살짝 아내에 대한 사랑도 깃들어 있다.


이제 등푸른 생선도 잘 먹을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등푸른 생선이든 흰 살 생선이든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가시이다.

생선가시를 발라내는 작업은 몹시도 번거롭고 귀찮은 이다. 이것이 귀찮은 이유는 젓가락질을 아무리 잘 가시를 깔끔하게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시 많은 생선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랬다. 가시들을 발라내는데 신경을 쓰다 보면 다른 음식들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대충 발라 먹으면 생선가시가 목에 걸리는 불상사가 생긴다. 따라서 먹는 시간보다 생선가시를 발라내야 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렸고, 이렇게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허비해야 한다는 것이 난 싫었고 그래서 귀찮게 여겨진 것이다.

자주 먹어야 하는 등푸른 생선은 가시 문제에서도 속을 썩인다. 왜 그렇게 가시들이 많은지.


생선은 내가 평생을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어쩌면 거의 매일 먹어야 한다. 따라서 생선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내 행복 지수가 조금은 더 올라갈 것이다. 내게 필요한 일은 '가시 바르기'를 귀찮아하지 않도록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할까?


그런데 있었다.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었을까?


이 비법을 발견한 후 난 더 이상 생선가시 바르기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아니 생선가시 바르기가 즐거워지기까지 했고, 따라서 우리집 식구들의 생선 가시도 발라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생선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도대체 이 비법이란 것이 무엇일까?




우리 아들은 생선구이를 아주 좋아한다. 생선구이를 너무나 좋아해 가시를 발라먹지도 않는다. 굴비 같은 생선은 입안에 훌훌 털어 넣는다. 그렇다고 가시가 목에 걸리는 일도 없다. 아들에게는 생선가시를 발라야 하는 짜증 나는 과정 자체가 아예 없기에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어찌 된 일일까? 생선을 가시와 함께 통째로 먹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다. 생선을 그 가시까지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들이 가시에 대한 부담 없이 생선을 그냥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그 가시들을 미리 다 발라놓기 때문이다. 바로 할머니이다.


우리 애는 갓난아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러니 이때부터 이미 어머니는 손자가 먹을 생선의 가시를 다 발라주셨고 이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최근에 들어서야 이 작업이 중단되었다. 난 어머니께서 생선가시를 바르는 모습을 그렇게 오랫동안 봐왔음에도 한 번도 세심하게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당연한 어머니의 일상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시력이 점점 저하되다 보니 가시를 골라내는 작업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힘든 일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도 어머니의 작업 모습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생선가시는 젓가락만으로 발라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는 젓가락 외에 양손의 손가락들까지 모두 총동원하여 생선가시를 발라내는 것이었다. 가시 하나라도 생선살 속에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그래야 손자가 생선을 입안에 훌훌 털어 넣을 수 있으니까. 어머니의 손가락 묻은 생선 찌꺼기 더럽고 불쾌한 것이 아니라 손자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랬었다. 난 비린내 나는 생선이 손에 묻는 것이 싫어서 손가락을 쓸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한쪽 손의 젓가락만으로 가시를 골라내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럼에도 가시 제거가 철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손가락들까지 활용하면 생선가시를 아주 쉽게 발라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손에 묻는 생선은 비누로 잠깐만 씻어내되는 것일뿐 더이상 나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는 이 깨달음이 엄청난 것이었다. 가시를 바르는 과정에서 느꼈던 짜증과 귀찮음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른손의 젓가락과 왼손의 손가락들을 조화롭게 활용을 한 이후에는 아주 편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가시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생선 바르기'가 아닌 '생선 먹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생선이 더 맛있어진 것은 당연지사이다.

여기에서 이 글의 1차 결론이 나온다.

맛있는 생선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손가락들을 활용하여 가시를 바르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은 [생선을 '더+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더'가 하나 더 있다. 즉, 손가락으로 가시를 발라 먹는 것보다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또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방법이란 것이 무엇일까?

이것은 아들의 생선 먹는 모습을 되새겨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녀석은 생선 가시를 바르는 일 자체를 안 한다.

그냥 입안에 훌훌 털어 넣는다고 했다. 진짜로 생선을 맛있게 먹는 모습 그 자체이다.

그렇다.

남이 발라준 생선을 먹으면 더+더 맛있다.

오로지 맛을 음미하며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 깨달음 역시 내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내가 아내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일 할 수 있다.

 

아내는 젓가락질이 서투르다. 젓가락을 쥐는 방법이 틀렸는데도 평생을 고칠 생각을 안 한다.

따라서 아내의 젓가락질 실력으로는 생선 가시를 발라 먹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해주자.

생선 가시를 내가 발라주면 아내는 생선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난 손가락까지 동원하는 신공을 쓰기 때문에 생선 가시 바르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로 요즘은 식탁에 앉으면 내가 생선을 발라줄 때가 많다. 굵직굵직한 살점들만 떼내어 아내 쪽으로 밀어 놓는다. 아쉬운 것은 아내가 워낙 소식가라서 내가 발라줄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발라주지 않더라도 가시가 없는 살점 부분만 뚝뚝 떼내어 몇 점 먹고 나면 더 이상 안 먹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아내가 더이상 먹든 안 먹든 가시를 발라낸 생선살들을 아내 쪽으로 밀어 놓는다.

   '생선 좋아하니까 많이 먹어.'

이 말에는 아내에 대한 내 사랑이 담겨있다.

아내는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어떤 깨달음의 과정을 거쳐서 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어머니는 내 아들에게 20년을 넘게 생선을 발라 주셨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께 보답할 차례이다.

난 어머니가 드실 생선도 발라드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생선을 워낙 싫어하시므로 이렇게라도 해드리면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일에는 갈등따랐다.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지 건강을 챙겨드리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갈등이었다. 내 결론은, '어머니께 필요한 것은 맛있게 먹는 것보다는 좀 더 왕성한 활동성이다'였다.

어머니는 무척 부지런하셔서 항상 무엇인가 일을 하고 계시던 분이셨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잠만 주무실 때가 종종 있다. 혹시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어머니 당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빼앗을 필요까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조금이라도 더 어머니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비록 작은 손가락 운동일지라도.

그래서 어머니께 드리는 생선의 가시 바르기는 중단을 했다.


아들이 먹는 생선도 내가 발라주기 시작했다. 아들도 이제 성인이지만 그냥 해주고 싶었다. 어머니 대신에 내가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생선을 발라줘야 하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아들이 요즘은 집밥 스타일의 식사를 거의 하지 않기에 생선이 아들의 식단에 포함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아들에게 생선가시 바르기 신공으로 사랑을 표현하려 했으나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더 아쉬운 것은 앞으로는 아들 생선의 가시 바르기를 아예 안할 작정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스스로 발라 먹도록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며느리가 아들의 생선 시중까지 들어야하는 불상사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이다.


이제 여기에서 이 글의 2차 결론을 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맛있는 생선을 '더+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남이 가시를 발라준 생선을 먹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결론이 남아 있다.

난 아내에게 생선을 발라주며 우리 가족 간의 사랑과 행복을 맛본다. 이것이 바로 최고로 맛있게 생선을 먹는 방법이리라.


끝.


(2023년 8월 6일 작성)



매거진의 이전글 고부간 갈등이 없는 이유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