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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l 05. 2022

수학으로 증명된 아내와 나의 필연

결혼기념일 아내에게 보내는 글

(2022년 7월 3일 작성: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아내에게 보내는 글)


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던 참에 어디에선가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예, 저희 애는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닙니다."

라며 아내는 통화를 끊었다.

     "무슨 전화야?"

     "응, 커플 매니저래. 우리 애 결혼시킬 의향이 있냐고."

     "허참, 그냥 아무 데나 막 전화해보는 모양이네?

      근데 우리 애도 장가가려면 선을 봐야겠지?

      여자 친구조차 없으니."

     "그런 것도 유전되는가 보다. DNA가 똑같네.

      근데 자기 선 많이 봤다고 했었잖아? 몇 번이봤어?"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그래서 요즘 아내로부터 매일 들었던 질문이 하나 있다.

     "결혼기념일 이벤트로 뭐할지 계획은 세웠어?"

     "생각해보고 있어. 근데 코로나가 다시 증가세인데 집콕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니까 더 확대되기 전에 해야지.

      그리고 결혼기념일은 내가 자기를 구해준 날인데,

      내가 말 안 하더라도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놔야지."

    "날 구해줬다고? 그래,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좋아?"


아내가 한 번도 안 하던 농담을 한다. 나를 구해줬다고? 아마도 얼마 전에  쓴 글 '아내는 자기를  추앙하라 한다. 하지만 난' 에서 내가 너무 아부성 뉘앙스를 풍겼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봤다. 이 말이 진짜 맞는 말인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답은

     '아니다. 아내가 운이 좋은 순번일 뿐이었다' 

이다.




여기서 잠깐 퀴즈 매니아들에게는 유명한 문제 하나를 풀어보자.

술탄에게 100명의 공주가 있는데 난 그중의 한 명에게 청혼할 수 있다. 단 지참금이 가장 많은 공주에게 청혼해야만 술탄이 허락을 해준다. 난 공주들의 지참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다. 공주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나오면서 자신의 지참금을 말한다. 난 그 지참금 액수를 보고 청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며, 한번 지나간 공주에게는 청혼할 수 없다.
내가 공주와의 결혼에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 있을까?
(출처: '재미있는 영재들의 수학 퍼즐' 박부성 지음(2001년), 자음과 모음)


이 문제는 '퀴즈 술탄의 딸'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자세한 해답도 제시되어 있다. 아주 복잡한 수학 계산과 함께. 그 풀이 과정을 이해하려면 머리가 아플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냥 답만 참고로 하자.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일단 37명의 공주를 그냥 지나 보낸다. 그런 후 이후로 나오는 공주 중에서 앞의 37명보다 더 큰 지참금을 제시하는 공주에게 청혼한다. 이것이 수학적으로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전략이다.


아내와 난 맞선으로 만났다. 3월 13일에 처음 만나 7월 3일에 결혼했으니 서로의 내면을 알아보기에는 정말 짧은 시간이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난 맞선에 대해서 명확한 나만의 기준이 있었는데, 아내는 첫 만남 그리고 단 몇 번의 데이트만으로도 그 기준을 200% 만족시켰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찾던 이상형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살아보니 그때의 그 판단은 300% 맞는 것이었다. 그 판단이 무엇이냐면 ...


아내는 내게 첫사랑이자 첫 연인이다. 정확하게는 내 인생의 유일한 연인이다. 내게 여자 친구란 존재는 있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연인이란 것도 있어본 적이 없다. 데이트란 것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러면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나?'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여자와의 사귐을 방해하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사귀는 여자와 그대로 결혼까지 가야 한다는 고지식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결혼할 상대가 아닌 여자와 가까이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또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귀어봐야 결혼할 상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 아냐?'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틀린 말이다. 난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고, 그것은 깊게 사귀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면 ...


내 기준은 매우 단순했다. '아주 아주 착해야 한다' 였다. 그래야 부부 싸움 없는 편안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다투며 사는 결혼 생활보다는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었다. 인생은 편안해야 하므로. 돌이켜보니 이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아주 아주'라는 제약 때문에. 그러면서 나이만 점점 들다 보니 맞선의 누적 횟수 또한 계속 늘어만 갔다. 나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꾸준히 내게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그것들을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맞선이나 소개팅을 통하여 결혼까지 가는 것은 참 어려웠다. 내 경우엔 특히 더 그랬다. 간혹 어쩌다 아가씨쪽에서 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이번에는 나의 저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는 아가씨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애프터 만남까지 간 경우는 있었으나 후속 애프터까지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가벼운 대화일지라도 아가씨가 내 말에 반대 의견을 보이면 착하지 않은 것으로 봤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랬었던 같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과 조건은 장가는 고사하고 연애조차도 못하고 있던 나에 대한 합리화의 수단이었던 것 같다.


그랬었는데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터무니없는 나의 이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아가씨가 나타난 것이다. 수차례의 데이트에서 내 기준을 모두 통과한 아가씨가 있었으니 바로 아내이다. 진짜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아내의 첫인상은  '나는 착합니다'가 얼굴에 씌어 있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착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착했는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곁들여 다음 기회에 얘기해 보겠다. 다시 이 글의 논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드디어 내가 바라던 이상형 아가씨가 나타났고, 난 청혼했고 그래서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 이상형의 아가씨가 나를 구해줬다'가 맞는 명제인지를 따져보자.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아내와의 대화를 다시 끌고 와 보자.

     "자기 선 많이 봤다고 했었잖아? 몇 번이나 봤어?

      다섯 번? 열 번? 어휴, 많이도 봤네."

     "열 번이 많다고? 그럼 놀라지 마. 적어도 37번은 넘을 거야. 애매한 것은 빼고도 37번은 되니까"

     "! 내가 구해주지 않았으면 백번은 채웠겠네."

그랬다. 난 어쩌면 백번의 맞선을 봐야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자그마치 백번이다. 백번. 백~~번.


앞의 술탄의 딸 퀴즈를 다시 상기해보자. 공주와의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난 반드시 최고의 지참금을 가진 공주에게만 청혼해야 한다. 100명의 공주 중 누가 최고 공주인지는 모른다. 2등짜리, 3등짜리 지참금도 실패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는 수학적인 해법을 갖고 있다. 최고의 공주를 찾아낼 수 있는 확률을 최대치로 만드는 해법이다. 그 해법에 따르면 처음 37명은 무조건 그냥 보내야 한다. 그런 후 이후에 등장하는 공주 중에서 처음 37명보다 지참금이 많은 공주를 선택하면, 그녀가 최고의 공주가 될 확률이 최대이다. 100명의 공주 중에서 (확률적으로) 최고의 공주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맞선을 보는 과정에서 술탄의 딸 퀴즈를 풀고 있었다. 백번의 맞선을 볼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다만 내 문제에서는 '최고의 지참금' 대신에 '최고로 착한 마음씨'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난 37번째 아가씨들까지는 무조건 그냥 보냈어야만 했다. 아무리 마음에 들더라도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38번째 이후의 아가씨들 중에서 더 착한 여자를 고르면 되었는그 시점에 아내가 등장했고 앞선 37명보다 더 착했다. 그래서 난 아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나는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필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나를 구해준 것이 아니고, 아내의 순번이 좋았기에 아내가 내 선택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난 100명의 아가씨 중에서 최고로 착한 아가씨를 찾아내었다.


그런데 이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결혼할 당시에 아내가 어떤 심정으로 날 구원해줬는지, 내 선택이 얼마나 옳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내가 내 청혼을 받아준 순간 우리는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우리의 선택을 어떻게 최고로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했다. 부부란 그런 것이다.


PS:

우리 어머니는 워낙 무뚝뚝하시고 과묵하셨던 분이다. 우리에게 한 번도 감성적인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랬던 어머니이기에, 내가 중학생 때 들은 어머니의 말씀 한 마디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느 날 밤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별당 아씨'(고전소설 '박씨부인전'이 원작)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별당 아씨의 배역은 최고의 미녀 배우 홍세미씨였다. 드라마를 보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나를 보더니,

     '우리 플마도 나중에 별당 아씨처럼 예쁜 아내를 얻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다. 그런데 난 진짜 효자이다. 어머니의 이 소원을 들어드렸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아내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예뻤고 지금도 여전히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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