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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26. 2022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생활 속의 유머들

아내의 주방 일을 오랫동안 도와주다 보니, 어느샌가 난 '갑'의 위치에서 '을'의 위치로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내가 도와준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주방 보조역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아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나도 따라 들어가야 한다.

어쩌다 딴 일을 하고 있으면 기어코 부엌으로 불러낸다.

그러면서 진짜 아주 시시한 것까지도 다 부려먹고 제대로 못하면 꾸지람까지 한다.

만약 내가 득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숱하게 싸웠을 것이다.

아내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경우가 워낙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모든 것을 다 '그것'으로 표현한다.

      '여보, 그것 좀 이리 꺼내와.'

      '여보, 그것 좀 씻어줘.'

      '여보, 그것 좀 전자레인지에서 데워와.'

이러다 보니 의사소통의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그것'을 임의로 해석하여 처리했을 때, 종종 아내의 '그것'과 매칭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오늘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아내는 이러한 미스 매칭을 은근히 즐기는 듯하다.

진짜 내가 득도를 했는지 시험해보는 듯하다.

아내는 이 미스 매칭으로 나를 꾸짖듯이 놀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 상황 자체가 웃기는지 깔깔거리며 즐거워한다. 그러면서 꼭 이 말을 덧붙인다.

    '우리 여보 이제 큰일 났네. 이해력이 점점 떨어져 가니. 아니 원래 그랬던 사람인가? ㅋㅋ'




의사소통 오류의 원인은 '그것'처럼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에 생기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단어에 대해서 서로 딴생각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한 착각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일어났을 때, 더구나 아주 의외성이 높을 때는 해학성을 갖게 된다. 얼마 전 법무부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이모 교수'를 '이모님 교수'로 착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에 많은 국민들이 잠시나마 아주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한 편의 코메디 프로를 보는 듯해서. 아마도 당사자는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당혹스럽기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의 사고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라는 당혹감이다. 이와 같이 의외성 높은 착각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실생활에서 경험했던 유사 사례 몇 가지를 끄집어내 소개해본다. (사실은 그냥 한번 웃어보자는 생각으로 작성을 시작했던 글들인데, 어쩌다 씁쓸함이 강조되어 버렸다. 그냥 유쾌하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에피소드 1: (금일 축구 동호회에서)

금일 축구팀에서의 일이다.
오늘은 인원이 많아서 쿼터별로 쉬어야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나도 쉬고 있었다.
A 형님이 물었다.
     '성호는 들어갔나?'
난 재빨리 성호 형님의 차가 아직도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대로 있었다.
    '(집으로) 안들어 가셨는데요. 차가 그대로 있네요.'
그러자 B 형님이 빙그레 웃더니
    '아니, 이번 쿼터에 공차러 들어갔냐고
     물어보시는 거잖아. 
     저기 지금 공을 잡은 사람이 성호 형님이구만.'

참으로 큰일이다.
아내 말대로 진짜 순간순간의 이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슬프다.


에피소드 2: (아내가 어느 엄마로부터 들었다며 전해 준 이야기)

하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제 엄마한테 걱정스러운 얼굴로,
     "엄마, 학교에 짜장면을 어떻게 싸가요?"
하더란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엄마에게  이 녀석이 한 말은
     "다음 주부터 학교 식당을 수리한다고,
      집에서 중식을 가져오래요."


에피소드 3: (에피소드 2와 동일인이라고 함)

이 녀석이 또 하루는,
     "엄마, 선생님이 내일 총 가져오래요.
      빨리 사러가요."  
하더란다. 또 한 번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엄마에게 이 녀석 왈,
     "내일은 총 연습할꺼니까,
      준비를 잘 해오랬어요."
이 녀석은 가을 운동회 준비로 매일 방과 후 연습 중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엄마의 이어지는 말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애한테 놀림을 당한 것  같아요.
      사실은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 편해요.
      설마 우리 아들 이해력이...."


에피소드 4: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경험한 일)

동료 과장에게 들은 얘기이다. 나중에는 사내에 다 퍼졌다.
대리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담당 과장을 찾아와서,
     "과장님, 저 어쩌면 퇴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깜짝 놀란 과장이
    "왜? 갑자기 무슨 일이야?"
대리 왈,
    "우리 사업부가 수원에서 여기 천안으로 내려올
     때도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만둘까 말까를.
     근데 좀 있으면 양산으로 내려간다고 하니,
     제가 거기까지 따라가기는 좀 ..."
그 말을 듣던 과장은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 사업부가 개발하던 상품은 PDP (TV) 였는데, 수원의 연구소 시절을 거쳐 천안에서 사업부로 변신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제품의 상품화를 금년 내에 꼭 성공시키자는 의미에서 사업부의 묵시적인 슬로건으로,
     '금년 안에 양산으로 가자!'
를 외치고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mass production(양산)을 성공시키자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랬던 것을 그 대리는 사업부가 양산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오해를 했던 것이다. 당시에 우리 회사는 양산에도 큰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 대리는 우리를 보면 멋쩍어했었다.


에피소드 5: (우리 어머니)

동생들하고 영화 '도둑들'이 천만을 넘었다는 화제로 한참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방에서 낮잠을 주무시다가 깨어나신 어머니께서 갑자기 놀라신 표정으로
     "왜 갑자기 도둑들이 그렇게 많아졌냐?"
하셔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글퍼졌다.
아, 우리 어머니도 이제 연세가 ...


(2022년 6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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