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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05. 2022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는 아이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라

아이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교육 방식 때문에 아이들을 망치는 부모에 대한 기사가 금일 한 일간지에 실렸다. 이 기사는 '어른의 시간'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사회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는 현대의 사회 초년생들에 대한 문제점과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난 아이들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장해야만 자신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자립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아이도 그렇게 키웠던 바, 기사의 내용이 내 지론과 잘 부합되기에 한번 인용해본다.

‘어른 아이’ 뒤엔 과잉보호하는 부모가 있다. “현대 부모들이 양육에서 이상하리만큼 ‘완벽’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작은 행동마다 ‘완벽해!’라고 칭찬하면 이들은 교사나 직장 상사도 자신을 완벽하다고 칭찬해주길 바란다고 썼다. 모든 걸 다 해준 부모 때문에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못한 딸이 “실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럽다”라고 털어놓은 사례도 소개한다.
                                                                                               (조선일보 2022.6.4 기사 중에서)




얼마 전 인근 백화점에서의 일이다. 아내가 식품관에서 쇼핑을 하는 동안 난 근처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 옆에는 아주 귀여운 꼬마 여자 아이와 아빠가 앉아 있었는데, 아이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애지중지 핥아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빠의 느닷없는 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조금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흘리면 안된다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먹는 법을 설명하려 하고 있었다. 또한 약간 삐딱하게 앉아 있는 아이의 자세에 대해서도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갑자기 내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가르쳐주려는 아빠의 심정은 알겠으나, 아이에게 나름대로의 자유도를 주지 않고 정해진 틀에 맞추게 하려는 모습에 심한 거부감이 들어서였다. 이런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난 아이의 교육에 관한 한 조금은 열린 사람인가 보다. 난 속으로

'아이들은 실수도 해가며 크는 것이랍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아빠의 방식대로 가르칠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 깨달아가며 성장해가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라고 생각하며 그 아빠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예전에 슈퍼마리오 게임이 처음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우리 집에 그 게임기가 생겼다. 난 동생이 셋 있는데, 이 중의 두 동생이 이 게임의 재미에 푹 빠져 서로 간에 치열한 게임기 쟁탈전이 자주 벌어지곤 하였다. 그래서 규칙이 만들어졌다. 마리오가 다 죽으면 무조건 상대방에게 게임기를 넘겨주기로. 그러니 동생들은 마리오를 죽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게임을 진행하였다. 자칫 조작 잘못으로 마리오가 죽으면 안 되므로 자기가 잘 아는 정해진 길로만 다녔고 필요 없는 점프 동작은 하지도 않았다. 동생들이 게임 중에 제일 신나 했던 순간은 마리오의 보너스 생명을 얻을 때였다. 금화를 먹으러 이동하는 길목 중에는 곳곳에 보너스 생명을 주는 장소들이 숨겨져 있었기에, 동생들은 이런 곳을 찾아내려고 많은 애를 썼다. 지만 그것도 마리오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 정도에서의 조작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이런 의 게임에는 흥미도 없어했고 서툴렀던 여동생이 자기도 마리오 게임을 한판만 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다른 동생들은 시간 낭비라며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계속 거부할 명분도 없어 딱 한판만 하는 조건으로 게임을 하게 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여동생은 게임기를 잡자마자 마리오를 천방지축으로 날뛰게 만들었다. 다른 동생들은 조작이 너무 서투른 여동생의 모습이 안타까왔는지 마리오를 얌전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코치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이 순간 (당시의 흥분된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방향도 없이 날뛰던 마리오가 허공 중의 어느 한 곳으로 높이 점프하자, 그곳에서 보너스 생명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곳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가 볼만한 곳이 아니었고, 정상적인 조작으로는 닿지 않는 곳이었다. 여동생의 서투름에 의한 실수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보물을 발견하게 만든 것이다.

이후로 두 동생들의 마리오 다루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동생들은 마리오가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가보기 시작했다. 마리오를 조심스럽게 조작하여 죽지 않게 하던 방식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보너스 생명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게임의 목표가 금화 많이 먹기에서 보너스 생명 찾기로 바뀌었다. 동생들은 아주 이상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보너스를 몇 군데 더 찾아내었다. 게임 곳곳에 이러한 보너스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비밀은 동생들의 게임을 더욱 흥미 있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게임에 서툴렀던 동생의 실수 하나가 게임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자칫 금화 먹기만 반복하며 무미건조하게 진행될 뻔했던 게임을 아주 액티브하고 흥미진진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동생의 실수로부터 유발된 이 경험이 내게는 아주 인상 깊었고, 피상적으로만 배웠던 인생의 교훈을 되새기게 해 주었다.

'실수와 서투름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창의적인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어야 더욱 풍요로운 인생을 펼쳐갈 수 있다.'




이 당시 과학도의 길을 걷고 있던 내게는 이러한 교훈들이 더욱더 크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서 많은 위대한 발견과 발명들이 실수를 통해서 나왔고 또 수많은 실패 끝에 나왔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전구 필라멘트,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그 외 나일론, 고무, 페니실린 등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당시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실수를 통해 얻은 위대한 발견'의 예는 전도성 플라스틱(전기가 흐르는 플라스틱)이다. 일설에  의하면  한 대학원생이 선배가 지시하는 촉매의 양을 잘못 알아듣고 1,000배나 더 첨가했는데, 이로부터 전기가 흐르는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마리오 게임을 잘했던 두 동생은 아마 평생을 했어도 이상한 위치에 있던 보너스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로 또 정상적인 조작으로는 그곳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도성 플라스틱의 연구에서 촉매의 양을 1,000배나 더 넣는다는 것도 정상적인 실험 계획에서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실수만이 선물해 줄 수 있는 발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이러한 교훈들은 내 의식 속에 깊이 잠재하게 되었는데, 후에 아이를 키우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난 아이가 엉금엉금 길 때부터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주려 노력했고 어떤 때는 일부러 실수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장난감을 망가뜨리거나 내가 아끼는 카세트테이프의 테이프를 끄집어 내 엉망으로 만들거나 해도 난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다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무엇을 하든 방임하였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켜보기만 했을 뿐 요령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또한 결과에 대해서 칭찬하기보다는 노력하는 과정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었다.




(주의: 여기서부터는 '팔불출 아빠'의 얘기가 시작되므로, 읽기 중단을 하셔도 됩니다.)

한번은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침대에 기어올라가려는 장면을 우연히 녹화하기 시작했는데, 이 기록은 아이의 성장 기록 중 나의 보물 1호이다. 아이는 한 시간 여를 계속 굴러 떨어지면서도 결국은 침대에 올라가는 데 성공했고 아이의 끈질긴 노력과 도전 정신과 인내심을 한꺼번에 엿볼 수 있었다.  

4살 무렵인가에도 아이의 이런 면모를 또 한 번 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외국의 한 휴양지로 여행을 갔었는데 그곳의 야외 수영장에는 물 위에 고무판 징검다리가 7m 정도 길게 점점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 고무판은 밟는 순간 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이 징검다리를 건너려면 큰 요령이 필요했다. 우선 고무판의 중심부를 최대한으로 잘 밟아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했고 또한 최대한 빠르게 다음번 고무판으로 이동해야만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징검다리의 중간에서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이러한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이도 상당히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아이가 그 수영장으로 달려가더니 그 징검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없을 때 자기도 도전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아이는 빠지고 또 빠지고 거의 한 시간여를 실패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쳤으리라 생각하며 포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 이후로도 거의 두 시간여를 더 계속 도전했고 마침내는 그 징검다리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고 참으로 대단히 끈질긴 아이라는 칭찬도 받았다. 계속되는 실패로 힘도 빠지고 마음도 지치고 또 창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에게는 그런 것보다는 목표 달성에 대한 의지가 더 컸었던 듯하다.

 

이후 아이는 끈기와 노력과 도전 정신이 충만한 자립심 강한 아이로 자랐다. 아이는 특별히 수학, 물리, 사고력 퍼즐 등에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난 물리학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분야에 대해서 아이를 한번도 지도해 볼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나는 가르쳐보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었으나 아이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모든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푸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기존의 정해진 해법과 요령에 의존하려 하지 않았다. 즉, 단순히 답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더 즐긴 듯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아이의 사고력은 엄청나게 발달했던 듯하다. 아이가 보여준 남다른 특성 또 하나는 경진대회  등의 시험들을 무척 즐겼다는 것이다. 성적에 연연하다 보면 점수가 낮게 나올 것을 두려워하여 시험을 기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이는 성적보다는 자신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없는지에 더 초점을 둔 듯하다. 즉, 시험문제 풀이에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듯하다. 중학교 때 아이는 서울과고 영재원에 수석으로 입학한 바가 있는데, 입학시험문제가 사고력 위주의 문제였기 때문에 행운이 따른 듯했다. 그리고 아이는 서울과고에 진학하여 입시를 목표로 한 공부가 아닌 재미로 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이는 모두 본인의 선택과 노력의 결과였다. 아이의 자립심의 결정판은 대학 진학 과정에서 나왔다.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한번도 본인의 진로에 대해서 상의를 한 적이 없었고 또한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대학의 학과는 본인이 선택했고 우리는 결과에 대한 통보만 받았을 뿐이었다. 아이의 이 선택이 향후 아이의 인생행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아이는 미래의 모습이 예측 가능한 진로를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아마도 그보다는 미지의 세계에서 마음껏 창의력을 펼쳐보고자 하는 선택을 한 듯하다. 현재는 대학원에 재학 중인데 아직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직까지는 이제까지의 선택과 생활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움들을 겪겠지만 아마도 아이는 잘 극복해내리라 생각한다. 항상 본인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왔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도 본인이 책임질 준비는 되어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린아이들의 교육 방식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얘기해보자면,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자신만의 틀을 찾도록 만들어 줘라.

그리고 아이들이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끈기를 갖도록 교육하라'

이다. 더 나아가서는 일부러라도 실수를 하게끔 유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단 그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2022년 6월 4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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