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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08. 2022

네가 있어서 편해질 줄 알았는데

라떼 시절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2016.7월 즈음 작성 글)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 기사를 보다가, '업무 카톡'이라는 단어로부터 여러 에피소드들이 생각났다. 새로 발명된 기술이 '문제 해결사'인 줄 알고 그것만 믿고 좋아라 했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낭패를 봤던 작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울러 이 글을 쓰다 보니 우리 세대는 엄청난 기술 변혁의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왔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1. 카톡

처음엔 정말 좋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약속, 골프 약속 등에서 스케쥴 조정이 매우 편리해져서. 또한 회사  업무에도 이용해보니 매우 유용했다. 하지만 퇴근 후 한밤중에도 업무 지시 및 확인이 카톡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 놈을 괜히 쓰기 시작했다는 후회가 든다.

그러고 보니 1990년대 중반에는 삐삐가 똑같은 사회 이슈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2. 네비게이션

10여 년 전 네비게이션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이놈 때문에 아내와 많이 다퉜었다. 뻔히 아는 길인데도 또 눈에 보이는 길인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네비가 시키는 대로 가봤다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안면도로 기분 좋게 놀러 가는 중이었는데, 네비가 시키는 대로 해봤다가 한 장소에서 세번을 뺑뺑 돈 적이 있었다. 아내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고 열받아 있던 나도 맞받아치면서, 힐링하러 떠난 여행길이 불쾌한 길이 되어 버렸다. 물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화해하고 재미있게 놀았지만, 그곳까지 가는 동안은 내내 서로 기분이 안 좋았다.


3. 핸드폰

1990년대 중반 소위 '핸드폰'이란 것이 처음 나왔을 때는, 무전기만큼이나 크게 생겨서 휴대하고 다니기에 매우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거의 200 만원대로  매우 비싸서 쉽게 장만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고가라는 이유 때문에 핸드폰은 폼 잴만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핸드폰은 더 커져야 좋다는 말까지 나왔다. 왜냐하면 통화할 때 남의 눈에 잘 띄게 폼 잡기 좋았으니까.

당시에 내가 몸담고 있던 일요 조기 축구회에는 이 비싼 핸드폰을 구입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이들은 은근히 자기 핸드폰을 자랑하곤 했었는데, 한번은 그네들끼리 의기투합하여 토요일 밤낚시를 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핸드폰이 있으니까 어떻게 만날 지를 미리 짤 필요가 없어요. 각자 편한 시간에 낚시터에 와서, 핸드폰으로 서로 연락합시다. 이번에 밤새워  소주 한잔하면서 즐겁게 놀아봅시다.'

그다음 주 일요일 이른 아침 축구장에서 이들을 만났을 때, 전날밤 밤낚시가 재미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이들은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술 한잔 하며 밤샘하고 축구장으로 직접 와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낚시터에 도착해보니,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 서로 연락할 수가 없었단다. 당시에는 불통지역이 많았는데 이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나는 시간이라도 대충 정해놨더라면 좋았을 텐데, 누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또 그 넓은 낚시터를 뒤져 볼 수도 없고 해서, 각자 알아서 자기만의 낚시를 했단다. 그런데 애초의 목적이 낚시가 아니었으니, 낚시가 즐겁기는커녕 괜히 험한 곳에서 밤새야 하는 것이 무척 짜증 났던 것이다.


4. 와프로

와프로는 워드프로세서의 일본식 발음이다. 1980년대 중반 애플 2용 워드프로세서로 '와프로'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흥분했었다. 그전까지는 논문을 타자기로 작성했는데, 이것은 쓸데없는 노가다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타가 생겼을 때 수정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용을 한번 교정할 때마다 전체 본문을 다 다시 쳐야 했기 때문이다. 워드프로세서는 필요한 부분만 수정한 후 프린트하면 됐기 때문에, 이제는 논문 작성이 아주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다. 타자기로 논문을 작성할 때는, 지도교수님께서 아주 세심하게 논문을 수정해주시면서 교정 횟수를 최소화시키려  했었다. 그런데, 워드프로세서로 논문 수정이 용이해지자, 교수님께서도 논문을 대충 수정하셨다. 그 때문에 논문 교정 횟수도 2배, 3배 이상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교수님께 혼나는 숫자도 많아지고, 기간도 훨씬 길어졌다. 제출 마감 시간 직전까지도 수정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5. 컴퓨터 모니터

지금은 PC(Personal Computer)가 일반화되어 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라고 하는 것은 커다란 기계 장치였다. 당시에 애플 2와 IBM PC가 개인용 컴퓨터로 처음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게임이나 문서 작성에 주로 쓰였고, 과학 계산용 컴퓨터는 대학교에도 겨우 몇 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컴퓨터를 써서 과학 계산을 하는 과정이 매우 번잡했다. 당시 이 컴퓨터들에는 각 개인이 쓸 수 있는 모니터, 키보드 등이 없었기 때문에 '천공 카드'라고 하는 것을 사용했는데, 이 '천공 카드'를 만드는 과정이 번잡했고 또 시간이 많이 걸렸었다. 그러던 중 각 개인이 이 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와 키보드로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얼마 후부터는 모니터 사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모두들 좋아했다. 이제는 프로그램  개발이 훨씬 용이해졌다고. 그런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프로그램의 디버깅(오류 수정)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천공 카드를 쓸 때는, 프로그램 알고리듬에 혹시라도 오류가 있을까봐, 사전에 알고리듬과 오타 등을 매우 신중하게 점검했다. 이런 오류를 범하면 하루 이틀은 쉽게 까먹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니터로 직접 프로그램 작성을 하게 되니까, 사전 알고리듬 점검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조금 오류가  있더라도 언제든지 쉽게 수정이 가능했으므로.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프로그램 내용이 조금 복잡해지고 길어지면, 알고리듬이 꼬이기 시작하여 디버깅이 쉽지 않게 되었고, 나중에는 프로그램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짜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경우도 발생했다. 그러면 그제서야 알고리듬 점검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며칠을 까먹은 후에.


PS:

'모니터' 얘기를 하다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라떼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후배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이 PC 본체는 놔두고 모니터만 훔쳐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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