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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22. 2023

모두 의대로 가버리면 소는 누가 키우나?

"형, 화가들이 붓 개발에 관심이 있겠어? 온 관심그림 쪽에 있을 텐데 붓에는 신경을 쓰지.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문제지."

약간은 항변조가 섞인 막내 동생의 대답이었다.

도대체 어떤 대화 중에 이런 말이 나왔을까?


예전에 난 동생에게 '의사가 되면 호기심과 창의력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주장을 펼치며 그 이유가 궁금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주장은 MIT 학생 하나의 TED 강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 강연의 핵심은, 수십 년 동안 의사들이 사용해 온 굉장히 위험성이 큰 어떤 수술 도구에 대해서, 우연히 수술을 참관한 MIT 학생 하나가 바로 그 현장에서 그 도구의 위험성을 제거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내용이다. 개선에 사용된 이론은 중학생 수준의 아주 단순한 물리 법칙이었다. 뉴튼의 제3법칙이라 불리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었다. 샘플 제작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난 의문이 들었었다. 의사들에게 MIT 학생이 만든 샘플과 동일한 샘플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그것을 못 만들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수십 년 동안 단 한 명의 의사도 그 수술 도구의 위험성을 개선시키려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다. 개선 아이디어를 찾아보라고 문제로 던져줬다면 쉽게 풀었을텐데 말이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을 똑똑한 의사들이 왜 그랬을까?'


이 궁금증에 대해서 난 의사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추론을 해봤다. 똑똑했던 이 사람들이 어렸을 적엔 누구보다도 호기심과 창의력이 컸을 텐데, 암기 위주의 의학 공부에 몰입하는 동안에 호기심이라는 것을 잃어버렸고 당연히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장에 대해서 동생은 동의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동생은 내과 의사이다. 아마도 내 주장이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사를 화가에 비유하여  위와 같은 대답을 한 것이리라. 내 주장은 마치 '넌 창의력이 없어'와 비슷한 말이니 기분 나쁘게 들렸을 수도 있었으리라.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의사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이 '넌 미련해'라는 말은 아니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난, '의사가 되면 창의력이 사라진다'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의사들 중에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 아주 창의적인 의학 연구를 하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동생 말대로 관심의 문제지 능력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되면 호기심이 사라진다'라는 주장은 철회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서의 호기심이란 '관심분야에의 호기심'이 아니라,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그 원인을 파헤쳐 보고 싶은 본능적인 호기심'을 말한다. 소위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을 말한다. 아래에서 소개할 MIT 학생의 TED 강연 내용을 보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MIT 학생은 호기심이 살아있었기에 수술 도구의 위험성을 보자마자 그 문제점 개선할 생각을 한 것이고, 의사들은 호기심이 없어졌기에 그 위험한 수술 도구를 개선해 볼 생각도 안하고 수십 년 동안 그냥 사용해 온 것이다.




<전동 드릴>


이 사진이 전동 드릴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디에 사용하는 전동 드릴인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깜짝 놀랐다. 이것은 뇌 수술용 드릴이란다. 이런 종류의 드릴이 뇌 수술 이외에도 온갖 수술에 사용된다고 한다.

'뇌 수술을 드릴로 하다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뇌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두개골 뼈에 구멍을 내야 하고 그러려면 드릴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칼로 뼈를 쨀 수는 없을 것이므로. 아마 얼마 전 내 뇌 수술에도 저런 드릴이 사용되었으리라.

그런데 알고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드릴이라는 장비에 대해서 사람들이 뜻밖이라는 듯이 깜짝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드릴의 위험성 때문이다. 이 위험성은 직접 경험을 안해봤더라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 당신은 두개골 뼈에 구멍을 뚫고 있다. 두개골은 아주 단단하므로 전동 드릴을 큰 힘으로 꾹꾹 눌러가며 구멍을 뚫어야 한다. 이 두개골 밑에는 아주 부드러운 뇌가 있는데 드릴이 이 뇌에는 상처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구멍이 뚫리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주 순간적으로 드릴을 회수하지 않으면 이 드릴은 그대로 뇌 속으로 파고 들어갈 것이다. 당신은 뇌에 손상을 주지 않고 드릴을 회수할 자신이 있는가? 구멍이 뚫리는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감지할 것인가?


이런 드릴로 두개골의 단단한 뼈에 구멍을 내야 하는 뇌 수술 담당 의사는 얼마나 긴장이 될까? 의사만이 아닐 것이다. 수술실 전체가 초긴장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런 드릴에는 깊이를 설정하는 안전장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최종 목표는 구멍 관통이기 때문에 마지막 구멍이 뚫리는 순간에는 자칫 사고가 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다.


MIT 학생이었던 Nikolai Begg는 어느 날 수술실을 견학하게 되었다. 그 수술실의 분위기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그 의료진에게는 수술이란 작업이 일상이었기 때문인 듯했다. 경쾌한 음악 속에 주말 데이트 등의 신변잡기 잡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술실 전체가 갑자기 정적에 휩싸였고 모두가 수술 담당 의사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갑자기 초긴장 상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그랬다. 의사는 어떤 수술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전동 드릴 하나가 들려있었다. Begg는 이 순간을 '외과 수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만약 의사의 드릴이 예상보다 깊이 들어가면 뇌나 정상적인 장기들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고가 미국에서만 매해 수만 건씩 발생했었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수술 과정을 견학한 Begg는 곧바로 이 드릴의 위험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드릴이 뼈를 관통한 후에는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도록 드릴의 구조를 바꾸고자 한 것이다. 그는 드릴 팁 끝 부분에 작용하는 힘의 평형에 초점을 맞췄다. 드릴 팁에 가해지고  있는 힘은 두 개인데 크기는 똑같고  방향은 정반대이다. 하나는 의사가 누르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반작용에 의해서 뼈가 반발하는 힘이다. 뉴튼 제3법칙에 의하면 (두개골이 관통되기 전까지는) 이 두 힘이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드릴이 갑자기 뇌 속을 뚫고 들어갈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땅에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땅을 누르는 힘과 땅이 우리를 밀어내는 힘이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릴이 뼈를 관통하는 순간에는 뼈의 반발력이 사라지므로 드릴 팁에 작용하는 힘은 의사가 누르고 있는 힘만이 유일하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의사가 누르는 힘에 의해서 드릴이 뇌를 뚫고 들어가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렇기에 의사는 뇌가 뚫리는 바로 그 순간에 드릴에 더 이상의 힘을  주지 않도록 초긴장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불상사는 종종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람이니까.


이러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Begg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뼈에 의한 반발력이 있을 때는 드릴 팁이 일정 위치에 고정되지만, 반발력이 없으면 드릴 팁이 자동으로 뒤로 회수되는 구조를 생각해냈다. 이것은 스프링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다. Begg는 아이스크림 막대와 고무 밴드를 이용하여 최초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겨우 30분 만에.


Nikolai Begg와 드릴 안전장치의 최초 샘플



Begg의 TED 강연을 듣고 나면 이러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이 간단한 원리와 구조를 왜 의사들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화가들은 붓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말처럼 의사들은 의료 기구에는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난 이 문제를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문제점을 보았을 때 그 원인을 파헤쳐 보고 싶은 본능적인 호기심'이 살아있는 의사가 있었다면, Begg와 동일한 사고 프로세스를 가동시켜 드릴의 구조를 개선했을 것이다. 그들에겐 충분히 그런 능력이 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어떤 의사도 수술용 드릴의 개선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의사들은 드릴의 위험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생각을 안했을까? 이것에 대해서 난 의문이 들었다. 정확한 답이 아닐지라도 여하튼 난 답이 필요했다. 궁금한 것은 못참는 내 성격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답은, 앞서 동생과의 대화에서 얘기했던 '의사들의 호기심과 창의성 부재'이다. 그러면 왜 의사들은 호기심과 창의성이 없을까? 학창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했던 사람들일텐데  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암기 위주로 진행되는 의과 교육의 결과라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라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양은 어마어마하다. 또한 시험을 치르는 양도 어마어마하다. 특히 '땡 시험'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문제를 듣자마자 또는 보자 마자 답을 말해야만 하는 시험이란다. 소위 '머리를 굴리는 작업' 없이 메모리에서 즉각 즉각 답을 꺼낼 수 있는 기계적인 능력이 필요한 시험이다. 이러한 암기 능력은 의학 드라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응급 환자가 왔을 때 의사들이 거의 반사적으로 긴급 처방을 지시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일체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아주 감탄스러운 능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들만을 매일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호기심에 이끌려 새로운 연구를 해보고자 하는 능력은 퇴화될 듯하다. 연구란 것은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 실수도 해가며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의사들 중 뛰어난 이공계 학자적 소양이 있었던 사람이었을지라도 의사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이러한 능력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만약 이러한 내 추측이 맞는 것이라면, 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행한 일이다. 의사 중에 과학자를 꿈꿨던 의사가 있다면 그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일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집단을 꼽으라면 단연코 의사일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의대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의대 정원을 더 늘리기로 했다고 하니, 당분간 의대 쏠림은 더 심해질 듯하다.

그러한 조짐으로 최근에는 '초등 의대반'이라는 것도 성행한다고 한다.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최상위 학생들이 의사보다는 과학자에 대한 꿈을 더 크게 가진 적도 있었다. 예비고사가 있던 시절, 예비고사 전국 1등에서 20등 중 대부분의 학생이 기초과학 분야로의 진학을 희망한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었다. 당시는 온 나라가 가난했었고, 기초과학 전공자의 미래는 불투명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아 인생 진로를 선택했었다. 돈을 좇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겠다는 낭만과 순수함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우리나라가 IMF라는 슬픈 역사를 거치면서 이러한 낭만은 모두 무너져 버렸다.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은 것임을 모두가 경험해 본 것이다. 그 결과 장래가 보장된다고 여겨지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극심하게 높아졌고, 의대 쏠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 만으로 의대 쏠림 현상이 생겼다면 덜 안타까웠을 듯하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이므로 이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근래의 의대 쏠림 현상은 다른 데 있는 듯하다. '돈은 편하게 벌 수록 좋고, 돈은 많을수록 좋다'라는 통념이 사회를 지배하는데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실제로 의대 내에서도, 편하게 돈 벌기 좋은 과와 힘들고 돈 벌기 어려운 과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는, 전문의 과정으로 진학하지 않고 일반 의사 자격증만 취득한 후 미용 쪽으로 개원하는 의사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개미 박사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에서, 수학을 잘하면 생물학에서도 세계적인 학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길들이 있다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즉, 고급 수학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듯한 생물학에서도 수학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설명하신 것이다. 그런데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모든 이공계의 근간은 수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로 진학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 동안 그들의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아니 아예 수학에의 관심을 잃어버린다.


수학 또는 물리를 잘하는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과학 분야에의 호기심이 많고 창의성도 뛰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호기심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큰 행복감을 느낀다. 어쩌면 그 행복감은 돈이라는 물질이 주는 행복감과는 차원이 다른 더 큰 행복감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이 의대가 아닌 이공계로 진학했더라면 의사로서의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하고 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삶을 살면서 더 큰 행복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의사라는 직업은, 직업적인 안정성은 보장되겠지만 행복에 대한 보장은 장담하기 어렵다.

어느 의사가 말했다. 의사에게는 뛰어난 암기력외에도 환자의 아픔을 진정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 공감 능력이 부족하면 아주 불행하게 살 수도 있다고 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할 듯하면, 차라리 아주 이기적이고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고. 이렇듯 의사라는 직종이 어느 한 사람의 인생에 무조건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린 시절 과학자를 꿈꿨던 이들이, 그저 돈 때문에 의사가 되기로 했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의대 선호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미국과 같은 과학기술의 최선진국에서도 늘 있어 왔다. 하지만 '의대 선호'를 넘어선 '의대 쏠림'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의대 쏠림' 광풍이 단발성의 사회 현상으로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행복과 불행의 문제도 있지만, 국가적인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출해야만 국가 산업 발전과 인류 문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과학자로서의 꿈과 기업 친화 정서를 길러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며, 이공계 능력자라면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는 경제 구조의 정착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의대 쏠림' 현상이 지속된다면, 한때 유행했던 개그 프로의 멘트가 현실화 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모두 의대로 가버리면 소는 누가 키우나?"


끝.


(2023년 6월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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