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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l 10. 2022

군대 간 아들에게

논산훈련소 위문편지

(2018년 12월 10일 작성)


     "어머, 이게 뭐야? 또 축구 얘기네."

아내가 투덜거렸다.

     "이번엔 내 축구가 아니라 베트남 축구 얘기로 바꿨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하는 얘기라는데, 군에 있는 애한테 축구 얘기만 써 보내면 애가 얼마나  지겹겠어? 좀 다른 얘기도 써 봐. 좋은 글 많이 알잖아?"

     "알았어. 축구 얘기는 그만 쓸게."




다음은 아내가 잔소리한 축구 편지들의 일부이다.





이 편지들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작성 시간이다. 잘 살펴보시라. 한참 자고 있어야  할 새벽 2시, 3시에 작성되었다. 이 시간에 이런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감동받을 만한 일이지 않은가?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난 자다가도 일어나서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내 정성을 모르는 것 같다. 

물론 일요일마다 이른 아침에 나가서 실컷 축구하며 놀다가 저녁 늦게 와서는 그냥 자버리는 사람을 아내가 곱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에게 보내야 할 편지도 안쓰고 잠만 자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축구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편지 글감을 위한 내 노력이었다는 것을. 적당한 글감이 없을 때 이 세상에 글짓기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것을 아내는 모르는 듯하다.

아무튼 한동안은 축구를 소재로 편지를 해결했으나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축구 얘기를 안 쓰면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편지를 채우나? 고민이네.'




여기서 잠깐, 주구장창 축구 편지만 쓰게 된 사정은 이렇다. 얼마 전 입대한 아들에게 아내는 매일 위문편지를 보냈다. 매일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소소하게나마 즐겁게 해 주자고. 그러더니 더 이상 쓸 내용이 없는지, 갑자기 내게 위문편지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렵지 않았다. 지정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몇 자 끄적이면 되었기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매일 색다른 내용을 쓰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일단 인생철학, 훈계 등의 고리타분한 얘기는 안 쓰기로 했다. 귀중한 청춘의 황금기를 희생하며 군대에 가 있는 애를 고문하는 일이었기에. 그러다보니 아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들은 금방 다 고갈되었다. 아니 그 소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편지 쓰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글감이 없는데 억지로 편지를 써야 하는 그런 일은 거의 중노동급이었다.


그런데 일요일은 이 중노동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축구라는 색다른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고 있다. 벌써 30년째인데 근래는 컨디션이 유달리 좋다. 그래서인지 인생골이라 할만한 슈팅을 성공시키는 등 활약이 대단하다. 이러한 활약을 소재로 글을 쓰면 편지 한 통 정도는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마다 축구 얘기를 쓰게 되었고 2000 글자 제한 때문에 당일에 다 쓰지 못한 얘기는 다음날 또 다음날 이어서 쓴다. 또 근래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축구도 흥미로운 소재를 제공했다. 이런 이유로 내가 보낸 위문편지들에는 축구 얘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아내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얘기의 반복으로 보인 모양이다. 아마도 축구의 흥미진진함을 몰라서 그런 듯하다.




아들한테는 편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편지이기만 하면 괜찮았을 텐데도, 아무튼 축구 얘기는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축구의 재미를 몰라 그런 것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는가? 그래서 고민했다. 무슨 내용으로 편지 한 통을 채울 것인지를.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당구 얘기를 쓰자고. 일요일 축구가 끝나면 우리 동호 회원 몇몇은 당구장에서 또 다른 승부를 겨루며 별별 해프닝을 잘도 만들어낸다. 아슬아슬한 승부에서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일어나는 묘미가 아주 흥미진진하다. 또한 인생에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이 당구에서도 나온다. 이런 것들을 잘 엮으면 편지 몇 통은 순식간에 쓸 수 있다. 



이로써 어려웠던 고민이 쉽게 해결되었다. 이제 아들에게 보내줄 재미있는 한 통의 편지를 위하여 당구도 열심히 쳐야겠다. 당구까지 치고 늦게 들어오는 것을 아내는 극도로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들을 위한 것이니. ㅋㅋ

끝.


PS: 이 글은 원래 브런치에는 올릴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올린 '군대 간 아들의 다섯 글자 편지'가 검색을 통하여 매일매일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키워드는 주로 '군대 간 아들에게 편지'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오죽하면 편지를 검색할까 하는 동병상련의 생각으로, 우리집 가족 밴드에 있던 글을 편집하여 뒤늦게나마 올려봅니다. (2022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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