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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an 24. 2023

은퇴자의 행복한 삶에 대한 재정의

며칠 전 우연히 브런치의  알림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약 3주 전에 브런치에서 보내온 알림이었다.

'작가님의 글을 못 본 지.. 무려 150일이 지났어요.ㅠ_ㅠ'


    '아니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브런치를 잊고 살았었나? 이러면 안 되는데. 내겐 중요한 목표가 있지 않았던가? 정말 큰일이네.'




난 2023년 6월 말까지 반드시 50편의 글을 쓰겠다는 나름대로의 큰 목표를 세워놓고 있었다. 내 일생에서 단 한번 밖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정말 중요한 목표이다. 써 놓은 글은 겨우 20여 편뿐이었는데 마냥 놀고만 있다 보니 어느샌가 벌써 2023년이 되어 있어 깜짝 놀랐던 것이다.

     '어찌 그리도 무책임한 행동을 했던가?'

참으로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쓴다 해도 기껏해야 40편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서투른 글 솜씨와 느릿느릿 쓰는 속도를 감안하면 이마저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 글도 거의 반년만에 쓰는 글인데 일주일에 한 편 작성이 과연 쉽게 될 것인가?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분명히 브런치에 글 올리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읽기 조차도 안 한 지 꽤 오래되었다. 이미 모든 사회 활동에서 은퇴를 했고 더구나 코로나를 핑계로 친목 활동조차도 거의 하지 않았던 내게 바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엇 때문에 그리 게을러졌을까?'

일단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는 것으로 브런치 활동을 재개하기로 하고 이를 소재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브런치를 잊고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새 글을 올리려니 뭔가 내키지도 않았고 쑥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떠났던 이유에 대한 적절한 핑계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볍게 시작한 이 핑계 찾기가 예상치 못했던 좋은 인생 교훈을 내게 주었다. 남아 있는 삶 동안 내가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난 '아내로부터 배운 행복의 기술'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은 '은퇴자의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글이었다. 은퇴를 하면 직장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므로 마냥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었는데 난 여전히 쫓기면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글을 통해 내린 결론은 '목표 없이 그리고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라는 것이었다. 목표를 세우는 순간 목표 달성에 대한 스트레스가 생기기 때문이다. 난 습관상 항상 여러 가지 목표를 세우면서 살아왔었는데 은퇴 후에도 그 버릇이 여전했던 것이다. 주로 자기 계발을 위한 가벼운 학습 정도의 단순 목표이기는 했지만, 계획했던 일정에 쫓기다 보니 그 작은 목표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런 사소한 목표에서 조차도 완전히 벗어나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에 일과처럼 해오던 여러 활동 중에서 주식 이외의 모든 패턴화 된 활동들은 다 없애버리고 생각나면 조금씩 해보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들을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든지 운동이나 산책을 한다든지 등의 무계획한 일상으로 소일하기 시작했다. 정말 편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브런치 글쓰기도 중단되었고 급기야는 글 읽기 조차도 안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난 이렇게 단순하고 무계획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진짜로 착각하고 있었다. 브런치의 알림을 보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 마음속의 불편함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브런치의 알림으로부터 촉발된 불편함의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내게는 '2023년 6월까지 50편 글쓰기'라는 목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목표를 다 없애버린 줄 알았는데 한 가지 목표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가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거의 어려워 보였고 그에 따른 '실망감'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아주 단순하지 않은가? '실망감'의 원인을 없애버리면 될 것이다. 즉, 이제라도 50편 글쓰기라는 목표를 없애버리면 되리라.

하지만 난 곧바로 깨달았다. 이 목표는 절대로 없앨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을. '50편' 목표는 내가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목표였다. '내 마음속의 불편함'은 이로부터 생긴 것이었다. '50편' 목표는 어떻게든 내가 달성해내야만 하는 아주아주 중요한 내 인생 목표였다.


올해는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 해이다. '30주년'이라니 정말로 뜻깊은 해이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 쫓기며 살다 보니 난 아내에게 뜻깊은 결혼기념일 이벤트를 한 번도 못해줬고 그것이 내심 미안했었다. 그래서 30주년에는 그동안의 모든 것을 퉁쳐서 멋진 결혼기념일을 마련해 주겠다고 내심 다짐해 왔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의 상황에서 어떤 이벤트가 아내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브런치 북이다. 우리 부부의 추억담을 브런치 문집으로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하면 가장 뜻깊고 정성 어린 선물이 될 것이리라. 그동안 내가 썼던 글들을 읽다 보면 우리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문집이라면 우리 부부에게는 길이길이 남을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아들에게도 훌륭한 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0주년 결혼기념일에 내가 정성으로 작성한 두툼한 브런치 문집을 선물 받고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면 무척이나 즐거웠었다. 그런데 브런치의 알림을 받으면서 이러한 상상이 갑자기 깨져버렸다. 어쩌면 브런치 문집을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실망감이 몰려온 것이다. 현재까지 써놓은 20여 편의 글들 중에는 아내가 이미 읽어본 글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이 글들로부터 아내의 새로운 감동을 끌어낼 수는 없다. 더구나 책의 두께가 얇디얇다면 시각적으로도 가치가 떨어진다. 내 계산대로라면 우리 집 추억담 브런치 북에는 적어도 50편의 글은 실려야 하고 아내가 모르는 새로운 글들이 듬뿍 담겨야 한다.


자, 그러면 이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브런치 글을 써서 50편을 채워야 한다. 아니, 40편만이라도 써내야 한다.

난 우리 집 추억담 브런치 북을 선물 받고 한껏 웃음 짓는 아내의 모습을 봐야만 한다. 이것이 30주년 결혼기념일에 내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어떻게든 이 브런치 북을 완성해야만 한다. 금년 6월까지는.




이제 이 글의 중요한 주제 하나를 마무리해 보자.

앞에서 난 이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남아 있는 삶 동안 내가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다고 했었다. 그 깨달음은 '은퇴자의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전에 쓴 '아내로부터 배운 행복의 기술'이라는 글에서는 '은퇴자는 목표 없이 그리고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살아야 행복하다'라는 어설픈 주장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이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로 행복한 삶이란 이런 것인 듯하다. 

    '자기 자신을 직접 행복하게 만들려는 목표는 없어도 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목표는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때, 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난 내 삶의 일상을 바꾸고자 한다. 아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내 삶에 집어넣고자 한다. 일단은 '우리 집 추억담'이 당장의 목표이므로 지금은 글쓰기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브런치 생활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2023년 1월 24일 작성)


PS:

뒤늦게 알았다.

결혼 30주년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라는 것을.

내가 왜 이렇게 멍청할까라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글 50편에 대한 마감 시한이 일년 더 연장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기쁘게 한다.

아주 천천히 써도 50편은 채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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