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플마 May 08. 2022

아내로부터 배운 행복의 기술

은퇴남의 행복 강요기

-상황 1-

"여보, 지금 나가자."

저녁을 먹기 전에 가벼운 산책을 나가자는 아내의 호출을 듣는 순간 난 갑자기 짜증이 올라왔다.

한참 영어 듣기 학습에 몰두되어 10분만 더 하면 오늘의 진도를 끝낼 수 있었는데 갑자기 중단하라니. 저녁 식사 후에는 다른 공부들에 대한 스케줄이 잡혀 있어 영어 듣기를 다시 시작할 수는 없었다.

"10분만 더 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내가 이 말을 받아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내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었기에 일단 반발부터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항상 듣는 아내의 그 대사가 다시 되돌아왔다.

"지금 빨리 나갔다 와야 저녁 식사를 제시간에 할 수 있단 말이야. 10분이면 너무 늦으니까 3분 안에 마무리해."

난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끄고 아내를 따라 산책길에 나섰다. 아내의 거의 유일한 운동이 나와 함께 걷는 것이었기에, 아내의 운동을 위해서는 내가 좀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내 공부 리듬이 깨진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상황 2-

"아이고, 또 방으로 쏙 들어갔네. 지금 양파도 까야하고, 상추도 씻어야 하고 할게 산더미 같은데."

난 또 짜증이 났다. 시킬 일이 있으면 그냥 '이것 좀 해줘' 그러면 될 것을, '또 들어갔네'라는 말은 왜 하는지? 내가 진심으로 아무리 열심히 도와줘도 아내는 나의 그 정성을 모르는 듯하다. 아내에게는 내가 그저 기회만 생기면 부엌에서 내빼려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난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물론 내 행동은 아내의 오해를 살만 했다. 조금 전 난 아내의 요리를 도와주다가 잠깐의 짬을 내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 것이다. 요즘 열을 내어 배우고 있는 3D 캐드에서 갑자기 확인해보고 싶은 기능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상해 버렸다.




이 짜증 나는 상황들은 현업에서 은퇴한 직후 내 일상에서 자주 발생되던 일들이었다. 힘들었던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며 맞이하는 은퇴 생활은 스트레스 전혀 없이 마냥 즐겁기만 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매출 실적에 쫓기며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뒤치다꺼리 업무들, 그것도 시간에 쫓기면서 처리해야 하고, 더구나 이런 일들이 연속으로 줄지어 있는 숨쉴틈 없는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었다. 하지만 막상 은퇴하고 보니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사는데도 짜증은 여전했다. 급하게 해야 할 일도 없는데 일에 쫓기는 기분이 드는 것은 여전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직장에서 만큼의 스트레스성 짜증과 강박증은 아니지만, 여하튼 마음은 편치 못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일반적인 '행복론'에 따르면, 사람이 얽매인 것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러한 행복 조건에서 살고 있는 내가 짜증과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뭔가가 잘못됐다. 내가 알고 있는 행복론이 틀린 것일까? 도대체 내 짜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에 대한 강박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 짜증과 강박증의 원인을 찾지 못하면 난 계속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난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 부분은 건너뛰기해도 됩니다. 은퇴 후의 내 일상들을 잡다하게 늘어놓은 입니다.)

난 현업에서 조금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으나 과감하게 조금 이르게 은퇴를 결정하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그에 대해 아내와 상의하였고, 아내가 흔쾌히 나의 은퇴 결정을 받아주었다.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던 바, 아내는 좀 더 아껴 쓰면 되니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였고 덕분에 난 가정 경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일단은 벗어날 수 있었다.
난 지난 10여 년간 꾸준하게 주가 변화의 파동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해왔는데 그 연구에 제법 진척이 있었고, 그래서 이것에 더 집중하여 나만의 파동 이론과 이를 이용한 거래 시스템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난 주식 매매시간인 9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주식 연구에 매진하였다. 몇몇 지인들은,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그래프와 숫자만 들여다보는 그런 생활이 지겹지 않냐며 나를 측은하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의 즐거움'이라는 글에서도 소개한 바대로 난 내가 좋아하는 이런 종류의 일이라면 24시간 연속으로 집중해서 일할 수도 있다. 주가의 파동성을 모델링하기 위해 새로운 지표를 프로그래밍하고 테스트하고, 순간적인 매매 판단에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HTS(Home Trading System)의 구성 및 설정들을 최적화시키는 갱신 작업을 그동안 수천번 아니 어쩌면 수만 번 이상을 반복했지만 전혀 지겹지 않을 정도로 난 이 연구가 재미있다. 주식 매매의 승률을 0.1%씩이라도 더 상승시켜가며 100% 승률을 만드는 것이 내 연구의 목표인 바, 연구에서 조금이라도 발전성이 보이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연구가 성공되면 경제적 자유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제 은퇴 후에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로 주식 연구를 소개했다. 그런데 내겐 주식 연구 외에도 하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들이 하도 많아서 일단은 학습, 자기 계발, 운동과 취미로 분류하여 소개할까 한다.  
매일 학습하는 첫 번째 것은 파이썬과 인공지능 학습이다. 이것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기는 한데, 능력이 된다면 주식 매매용 인공지능 거래 시스템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 현재 내가 개발한 거래 기법을 인공지능과 연계시키면 더욱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습 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현재의 나로서는 이 단계까지 쉽게 가지는 못할 것 같다. 더구나 바둑 프로그램조차도 만들 수 있을지 의심 갈 정도로 학습 진도가 느린데, 그래도 아무튼 파이썬과 인공지능을 매일 조금씩 학습하고는 있다.
내가 매일 학습하고 있는 또 하나는 3D 캐드이다. 이것은 3D 프린터를 직접 사용해보고 싶어서이다. 난 새로운 아이디어 제품들을 구상하기를 좋아하는데, 어떤 때는 그것들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3D 프린터로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므로 일단은 3D 캐드부터 익혀 놓으려는 것이다. 뒤에서 소개할 골프 연습 기구의 상품화 설계도 만들어 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3D 캐드도 진도는 아주아주 느리지만 매일 유튜브를 보며 조금씩 학습해나가고 있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 매일 훈련하는 것으로는 영어 듣기가 있다. 사실 영어 듣기 능력은 현재의 내게는 별 필요가 없는데 일종의 오기 때문에 하는 듯하다. '하는 듯'으로 표현한 이유는 왜 하는 지를 나도 정확히 몰라서이다. 아마도 여러 번 국제학회에 연사로 초청되었음에도 영어에 대한 부담 때문에 거절했었던 내가 못나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서 항상 자막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영어 듣기라는 것의 '학습법 찾기'가 내겐 큰 난제였고 어떻게든 그 난제를 풀어보고 싶은 생각 때문인 듯하다. 난 도대체 영어 듣기가 왜 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도 꽤 많은데 영 발전이 없다. 이제는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TED 받아쓰기를 해보고 있다. 내가 시도해보는 마지막 방법이다. 언젠가는 말 빠른 미드의 농담들을 알아들으며 실시간으로 웃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보기도 한다.  
필요도 없는데 매일 훈련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펜글씨이다. 멋진 글씨를 빠른 속도로 쓰고 싶어서 대학생 때부터 간간히 했던 것인데 이것도 실력이 영 늘지를 않았다. 현재의 내 글씨체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기는 하지만, '글씨체가 왜 더 발전이 없을까'가 내겐 궁금증이었고 최근 그 해답을 찾은 듯하여 그 답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매일 조금씩 연습을 해보고 있다.
운동 삼아  매일 연습하는 종목은 골프이다. 그런데 필드만 나가면 연습 때와는 다르게 공이 아주 제멋대로 엉망으로 맞는다. 이의 원인은 내 스윙폼이 엉터리라서 그렇다. 그래서 난 완벽한 스윙의 형태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익히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를 구상해 보곤 한다. 덕분에 조금씩은 발전하고 있어 언젠가는 싱글도 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한편 나는 골프 스윙 연구를 거실에서 하는데, 우리 집엔 거실용 스윙 연습기구가 있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term project용 물리 실험에서 힌트를 얻어 특허로 등록시킨 아이디어들이 있는데 이것을 내가 개량한 것이다. 현재는 이것으로 사업을 해볼까 말까  고민 중이라 공개는 못하고 있다.  골프 매니아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제품이지 않을까라고 생각될 때는 사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사업을 벌였을  때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망설여진다. 일단은 현재 학습하고 있는 3D 캐드로 완벽한 형태의 제품을 상품성 있게 설계해본 후 사업화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다.
이런 것들 외에 매일 해야 하는 잡다한 것들이 몇 개 더 있다. 독서도 그중의 하나인데, 솔직히 말하면 이것을 왜 매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 독서법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 성격은 한번 펼쳐본 책은 며칠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독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이 때문에 가끔은 그냥 덮어버리고 싶은 지루하기만 한 책 조차도 꾸역꾸역 억지로 읽으며 짜증만 받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은 독서 의무상 하루에 단 한 페이지만 읽고 덮어버릴 때도 있다.

(다시 본론입니다.)


이렇듯 은퇴 후의 내 생활을 보면 매일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여러 개 있다. 다 늘어놓으면 10개가 넘는다. 이런 생활을 하는 이유는,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학습해야 하는 탐구적인 성격과 일정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려는 워크홀릭 기질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또한, 100세 시대에는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해서 자기 계발과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어디에선가 받아서인 듯도 하다. 아무튼 현재의 내 생활은 내 성격과 기질에 잘 맞는 것이고 또한 노후 생활의 행복 조건에도 아주 잘 맞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짜증이 나는 것일까? 일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혹시라도 싫은 것들을 하고 있어서인가? 그것은 분명 아니다. 모두 내가 해보고 싶어 했던 것들이다. 그렇다면 너무 많은 것들을 하려 해서 그런 것일까? 일의 개수를 줄이면 될까? 하지만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나? 파이썬, 3D 캐드, 영어 듣기, 골프, 독서 중 무엇을 관둘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의 개수를 줄인다고 해서 앞에서 소개한 짜증 나는 상황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러던 중 이 문제는 아내와의 우연한 대화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아내와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던 중에 새로 문을 여는 탁구장이 눈에 띄었다.

'우리 이렇게 재미없게 걷는 것만 할게 아니라, 저기 등록해서 탁구를 쳐볼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부부가 탁구를 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재밌다고 그러더라구.'

'난 걷는 게 제일 좋아. 난 탁구엔 관심 없으니 하고 싶으면 자기만 등록해.'

'아니, 자기는 취미가 하나도 없잖아. 운동 겸 취미 하나 만들자구.'

'싫어. 난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게 제일 편해. 자기야 워크홀릭 기질이 있으니까, 뭔가를 해야 행복한 거겠지만 난 안 그렇거든. 각자 알아서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자구.'

'........'


난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아내의 이 말을  계속 되새겨 보았다.  

'저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도 행복한가?'  

그러고 보니 아내는 평생을 직장 외의 외부 활동은 전혀 없이 9 to 6 and home 으로 살았다. 집에서는 식구들 먹거리 준비나 드라마 보기가 전부였었다. 나처럼 자기 계발을 목표로 하는 것도 없었고, 가끔 좋은 책이 있으면 그거나 한 번씩 보는 게 유일한 교양 활동이었다. 아내의 유일한 취미라면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회나 전시회를 찾아내 함께 가보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나와의 만보 걷기 산책 외에는 별다른 운동도 없었다. 정말 단순한 삶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이로부터 난 깨달았다. 나의 행복론과 아내의 행복론이 많이 다르며, 아내의 행복론이 더 달성하기 쉽다는 것을.


아내는 자기 자신을 직접 행복해지게 하려 하는 삶을 살지 않고, 가족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 내용은 이전에 쓴 '설거지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아내는 남편의 행복, 아들의 행복으로부터 행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난 내가 직접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무단히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행복이 먼 훗날의 목표가 아니라 삶의 과정 자체였다. 하지만 난 '현재의 이 힘든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는 행복해질 거야'라는 목표성 행복론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필요도 없는 영어 듣기를 매일 해온 것이다. '현재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지만 언젠가 잘 알아듣기 시작하면 뿌듯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또한 읽기 싫으면 중간에 덮어버려도 되는 책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어야지'라는 필요 없는 목표 의식으로 짜증을 참아가며 완독 하려 애썼던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파이썬, 3D 캐드 등 다른 것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난 일상 자체를 일들의 연속으로 계획을 세워 놓고는 그것이 흐트러지는 것을 몹시 싫어한 반면에 아내에게는 일상의 계획이란 것 자체가 없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드라마 보고 싶으면 보고 산책하고 싶으면 산책을 하는 것이 아내에게는 즐거움이었다. 계획이 없으므로 언제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 자체로 만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글의 결론을 내릴 때이다. 현시점에서 내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난  

'목표 없이 그리고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억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으로 위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번쯤은 이렇게 살아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 이 말은 나처럼 은퇴한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젊을 때는 계획을 세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 더 덧붙인다면, 나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꾸면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튼 이 깨달음 이후로 난 내 일상을 바꾸었다. 일단 '오늘은 꼭 무엇을 해야지'라는 계획을 없애 버렸다. 아무것이고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넷플릭스 영화나 유튜브를 보면서 소일하기도 했다. 몇 주간 영어 듣기를 안 하기도 했고, 독서를 위한 독서도 없애 버렸다. 아내가 산책 나가자고 하면 그 즉시 따라나섰다. 아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만사 제쳐 놓고 그 일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일에 대한 강박감도 없애 버렸다. 예를 들면, 새벽 배송 택배 상자의 먹거리들을 정리할 때, 전에는 상자를 열면서 어떻게 이 물건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해야 가장 빠르게 냉장고에 수납할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 하나나 둘 단위로 냉장고에 넣기도 한다. 물론 현관에서 냉장고까지의 왕복 횟수가 훨씬 늘어나지만 필요 없이 머리를 써야 함으로써 생겼던 강박감은 없어져 버렸다. 샤워를 할 때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없애버리고, '아, 이 따끈따끈한 물이 나를 기분 좋게 해 주는구나'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사족을 달자면, 이러한 삶에는 부작용이 있는 듯하다. 난 우리 가족의 일상들과 추억들을 글로 남겨 아내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던 바, 50여 편의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쓰고 싶을 때만 쓰자'라는 생각을 가진 이후로는 글 편수가 늘지를 않고 있다. 너무도 큰 부작용이다. 이 글도 첫 문장을 쓴 후 금일까지 한 달은 걸린 듯하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누군가는 읽을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쓸 수 없다는 제약도 글의 마무리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제약 덕분에 내 글의 질은 좀 더 올라갔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글 편수가 너무 적어 아내에게 제대로 된 '우리집 추억담' 책을 선물하지 못한다면, 난 '아무것도 하지 말며 살자'와 거의 동급인 '홍플마의 행복론'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내가 꿈꿔왔던 아내와 아들의 '미소'를 못 보는 불행 말이다. 그 '미소'란 훗날 아내와 아들이 글들에서 행복 느끼짓게 미소를 말한다. 따라서 이제는 '홍플마의 사이비 행복론'을 수정하여,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야겠다. 그럼으로써 현재도 행복하지만 미래에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겠다. 아니 난 아내의 사랑 덕분에 이미 충분히 행복하므로, 아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겠다.


2022년 5월 8일


<홍플마의 또다른 재미있는 글>

목걸이를  사지 말아야 할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