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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an 08. 2022

운수 좋은/나쁜 날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면, 작은 행운과 불운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가를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 또한 인생인데,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되는 거지.


지난 토요일 오후였다. 아내와 함께 잠실 롯데월드타워로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잠실 사거리 주변의 도로가 심하게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몇십 분 늦겠는데? 일단 잘 빠지는 길로 가자.'

난 요령껏 롯데월드타워 앞까지는 잘 접근하였다. 여기에서 도착이 아니라 접근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그때부터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잘 빠지는 차선을 따라서 오다 보니 내 차는 롯데월드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선이 아닌, 바로 옆 차선에 있었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그 진입차선은 틈 하나 없이 차들이 빽빽하게 밀려 있었으며, 그 끝은 어딘지도 모를 정도였다. 새치기를 안 하고는 영화 보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정말 난감하였다. 예매 취소 가능 시간은 이미 지나버려 영화를 안 보면 아까운 돈만 날리게 되었다.

'아, 왜 이 차선으로 왔단 말인가? 왜 차를 갖고 왔단 말인가? 지하철로 올걸. 새치기를 할까? 정말 운이 나쁜 날이군.'

양심상 새치기를 할 수 없었던 난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었고, 롯데월드타워를 끼고 빙 돌아서 밀려 있는 차들의 꽁무니에 붙을 생각을 하였다. 

'영화를 보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자.'

그런데 이게 웬 뜻밖의 행운인가? 롯데월드타워를 끼고 빙 돌다 보니 반대편에도 주차장 진입구가 또 하나 있지 않은가? 이곳은 매우 한산하여 아주 쉽게 지하 3층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입구를 알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앞으로는 복잡한 잠실 사거리를 거치지 말고 방이사거리 쪽으로 오면 되겠다. 이런 귀한 정보를 얻었으니 오늘은 운 좋은 날이네.'


운 좋다고 희희낙락 거리는 순간 다시 문제가 생겼다. 주차장 내에도 차들이 끝없이 밀려 있었으며, 주차정보 안내판에는 모든 층이 만차라는 표시를 하고 있어 시간 내에 주차를 시키기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꽉 찬 상태인데 이 많은 차들을 어디에 어떻게 주차시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영화 보기는 그른 것 같군.'

돈을 그냥 날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순간 더 화가 나는 일이 생겼다. 차들은 두 줄로 늘어서 있다가 한 줄로 합쳐지고 있었는데, 내 차가 그 합류 지점 직전쯤에 있었을 때이다. 내 바로 앞차가 뭔지 꾸물거리면서 영 앞으로 나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 옆 줄의 차들만 신나게 앞으로 나갔다. 

'정말 재수 없군. 저 차는 하필이면 내 앞에서 저렇게 꾸물거리냐? 저 차 때문에 오늘 영화는 확실하게 못 보게 되었군.'

한참을 꾸물거리던 앞차도 드디어 앞으로 전진하고 나도 한 줄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지하 4층, 5층, 6층 어디까지 내려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속으로 투덜거리며 서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내 바로 앞에서 차 한 대가 출차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난 잠시 기다렸다가 그 자리에 재빠르게 주차를 하고는 무사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앞 차가 시간을 끌어주는 바람에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은 거야. 그 차한테 욕할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해야겠군. 아까는 괜히 화를 냈네. 앞으로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어. 하지만 오늘 재수가 좋은 것은 사실이야. 흐흐흐.'


그런데 신나게 영화를 보고 난 후 차를 타러 갔을 때, 난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운수 나쁜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심하게 문콕을 해 놓은 것이다. 차 간 간격이 꽤 여유 있는 주차장이었는데도 누군가 몹시도 부주의했던 모양이다.

'하필 이 자리에 주차를 했단 말인가?'


(2017년 7월 말 어느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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