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정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면 재주가 없던 사람일지라도 누구든지 그 환경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그런데 이 서당개가 이제 간신히 풍월을 읊을 수 있게 되어 그 재미에 푹 빠져있는데, 갑자기 서당으로부터 퇴학 통보를 받는다면 그 심정은 얼마나 슬플까? 정들었던 서당에 더 이상 갈 수 없다면 몹시도 슬플 것이다. 바로 지금의 내 심정이 그렇다.
난 올해로 동네 조기축구 34년 차이다. 우리 축구팀은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무조건 공을 찬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조건 모이고 무조건 찬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예전엔> 무조건 찼었다'가 맞을 듯하다.) 우리 팀은 내년이면 창단 40주년이 되는 유서 깊은 축구팀이다. (축구팀의 이름은 '삼오회(3-5회)'이다. 어느 아파트 한 동의 3번 라인과 5번 라인 동호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축구를 해 온 내 축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어떻게 표현해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호날두? 메시? 손흥민? 모두 아니다. 가장 적절한 표현은 '서당개 3년'이다. 난 학창 시절 때부터 기본기가 많이 부족했었기에 서른 넘어 시작한 축구 실력이 좋을리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형편없는 실력의 나인데도 요즘은 가끔 이상한 플레이를 한다. 어떤 때는 호날두 급의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상대편 골문 앞에서 메시 급의 드리블로 여러 명을 제친 후 슛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아주 멋진 발리슛도 때리는가 하면 치고 달리는 돌파 시도도 가끔 한다. 이러한 플레이는 전혀 내가 의도한 플레이가 아니다. 공을 잘 차려고 의식하면 내 플레이는 오히려 엉망이 된다. 그런데 나도 못 느끼는 무의식 중에서는 엄청난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내 몸이 그냥 그렇게 반응을 하는 것이다. 난 이것이 바로 '서당개 효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팀에서 나의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다. 이 자리에서 플레이할 때 마음이 제일 편하다. 내가 이 포지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한 축구 기술이 필요 없었고, 성실성과 센스만 있으면 어느 정도의 내 역할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실력도 없던 내가 축구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축구 재미에 빠져 들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축구를 하는 동안 '머리 비우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난 항상 일에 쫓기며 살았다. 박사 학위를 위한 연구에도 쫓기고 먹고사는 삶에도 쫓겼다. 따라서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었다. 그런데 축구를 하는 동안 온 신경을 공에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머릿속이 깨끗하게 리셋되어 그다음 일주일을활력 있게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축구는 운동효과도 크고 스트레스도 확 풀리는 내겐 정말 좋은 취미 활동이었다. 또한 앞으로 70세, 80세까지 계속 축구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 자체로 너무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내게 생긴 것이다. 바로 이전 글에서 자세히 기술한 바 있는데, 축구 헤딩으로 인한 뇌출혈이 내게 발생하여 아주 위험한 상황까지 갔었던 것이다. (이전글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 살려낸 남편의 목숨" 참조). 지금은 잘 회복하였으나, 재발 위험성도 있고 헤딩에 대한 트라우마도 생겨 다시 축구를 하기는 힘들 듯하다. 더구나 아내와 어머니께서 '축구 절대 불가'라는 선언을 내게 해버렸다. 아내와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편인 나로서는 일요 축구 교실에서 퇴학을 당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린 나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잘 설명될 수 있을까? 축구에는 전혀 소질이 없던 사람이 오랜 시간 축구를 해온 덕분에 이제 겨우 축구의 참 맛을 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러자마자 축구를 그만둬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래서 몹시 슬프다고 해야 할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하다. 이번에도 다시 서당개에 비유해보자. 서당에서 쫓겨나는 서당개는 몹시도 슬플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더이상 공부를 못하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더 큰 이유는 정들었던 서당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우리 축구팀 멤버들의 대부분은 나와 20년~34년 지기이며,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난다. 이들과는 운동장에서 몸을 부딪혀가며 운동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고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두런두런 별의별 얘기들을 끝없이 나누기도 한다. 살기 바쁜 세상에서 이런 지기들을 인연으로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34년이면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반 이상이다. 초창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집들이를 하기도 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온 가족을 다 초청하여 가족 체육대회를 열기도 했었다. 이들과는 정이 안들래야 안들 수가 없는 사이이다. 이들과의 "인연"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내 인생 자체의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축구를 하지 못한다면 자칫 이 귀중한 자산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자체가 큰 슬픔인 것이다.
축구로 맺어진 인연은 꼭 20년 이상의 지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십수년차 정도의 우리 축구팀 젊은 후배들에게도 각별한 정이 간다. 이들은 그냥 사랑스럽다. 이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이들이 축구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인성은 너무도 당연한 기본이다. 이것은 어느 조직에서든 마찬가지다.) 이들의 축구 사랑은 그냥 눈에 선히 보인다. 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우리 축구팀은 이 젊은 후배들을 통해서 앞으로 몇십 년 더 영속하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 젊은 후배들이 더 사랑스러운 것이다. 동물들이 새끼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새끼가 자기 생명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데 그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코로나 시절을 거치면서 자칫 우리 축구팀은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들 뻔했다. 운동장이 폐쇄되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을 잃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힘든 시절을 나이 어린 후배들이 잘 극복해 주었다. 매주 운동장을 구하고 또 상대팀을 섭외해 주었다. 귀찮을 수도 있는 일이었을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느샌가 이들이 우리 팀의 중심, 즉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정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팀은 워낙 고령화되어 있었기에 젊은 신입 멤버가 우리 팀에 정을 붙이며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로나가 우리 축구팀에'자연스러운 세대교체'라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이들 또래들끼리 단합이 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 축구팀의 영속성은 더 강해진다.
돌이켜보면 우연히 시작한 축구를 30여 년 이상 꾸준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축구에 재능도 없었고 좋은 체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또한 축구 팀원 중 나와 비즈니스로 얽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축구가 내 인생의 직업 향로와 관계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아내는 내가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러 나가는 것에 불만이 좀 있었다. 그럼에도 어쩌다보니 30여년 이상 매주 일요일은 축구를 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삼오회라는 축구팀을 통해서 내가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아내도 내 축구를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삼오회 축구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고 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 줬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것은 순전히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한번 사는 삶에서 이런 중요한 인연을 통해서 행복감을 맛보며 살 수 있었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축구팀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온 듯하다. 아내의 반대가 결사적이기 때문이다. 축구로 인한 지난번 뇌출혈이 아내에게는 무서운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4년 인연을 어찌 쉽게 끊어 버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쉬움에 상상해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아다니고 있는 내 모습을. 그러면서 계속 아내의 선처를 기대해본다.
PS:
사랑합니다. 나의 축구팀 '삼오회'. 그리고 긴 시간 인연을 맺어온 선배님들, 동기들, 그리고 후배님들 모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