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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플마 Jun 07. 2023

손질 잘 된 프로그램

회고록: PDP 시절 1 (난제 해결사)

(2023년 6월 6일 작성)


갑작스러운 뇌출혈 사건(이전글 "아내의 후다닥 성격이 살려낸 남편의 목숨" 참조)을 겪다 보니, 더 늦기 전에 내 삶의 회고록을 서둘러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플마의 젊은 시절은 어떤 삶이었을까?' '우리집 추억담' 문집에 담아서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특히 아들에게는 훗날 아빠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헨리의 단편 소설 중에 '손질 잘 된 램프'라는 소설이 있다. 이 제목은 성경의 내용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손질 잘 된 램프'라는 말이 전하고자 하는 교훈은, 항상 준비를 잘해놓고 있어야 어느 순간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본 글의 제목을 정했다. 잘 준비되어 있던 프로그램 하나로 큰 성과를 낸 경험을 회상해보고자 함이다.

개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예전 회사에서 난 어떤 연구 개발용 프로그램 하나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는 테마이자 프로그램이었다. 오직 나 혼자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촉하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난 진짜 몇 달을 열심히 밤을 새워가며 그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완성했다. 그런데 완성 시점에 사업팀의 신제품에서 촌각을 다퉈 해결해야 하는 아주 심각한 불량 문제가 발생했는데, 우연히도 그 프로그램이 그 불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되어 주었다. 난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그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 냈고 사업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사업팀도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나의 자랑스러운 성과도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프로그램은 '손질 잘 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다.




때는 1990년대 말엽의 S사 PDP 사업팀이다. 당시는 PDP라는 대형 평판 TV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이었다. 일본의 후지쯔사가 PDP TV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시킨 이후 한국과 일본의 모든 전자 회사들은 PDP 사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대형 평판 TV 시장이 열릴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S사도 PDP 사업팀을 발족시킨 후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회사의 중앙 연구소에서 PDP를 연구하고 있던 인력들은 모두 이 사업팀에 배치되었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본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PDP(Plasma Display Panel)의 작동 원리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PDP는 형광등과 거의 비슷하게 동작한다. 예를 들어, 50인치 PDP를 보면 50인치 평면상에 수백만 개의 작은 형광등들이 깔려 있어 이 형광등들을 개별적으로 껐다 켰다 하며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후로는 이 '형광등'을 'PDP 셀'이라 부르기로 한다.)
 
형광등을 켜고자 전기 스위치를 누르면 형광등의 양 끝단 사이에는 전압이 걸리는데 이 전압이 특정값보다 커야만 형광등이 켜진다. 이보다 작은 전압으로는 형광등은 절대로 켜지지 않는다. 이렇게 형광등을 켤 수 있는 전압을 우리는 '문턱 전압'이라고 부른다. PDP를 작동시킨다 함은 PDP 셀들에 문턱 전압보다 큰 전압을 걸어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어떤 PDP 셀의 문턱 전압이 작동 과정에서 높아져 버리면, 이 PDP 셀은 더 이상 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PDP 화면은 엉뚱한 화면으로 일그러져 나타날 것이다.

본 글에서는 갑자기 일그러진 화면이 나타나는 PDP의 불량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선 난 이 특정 셀들의 문턱 전압이 높아져버린 이유를 밝혀냈다.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핵심 사항인데, 문턱 전압이 높아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PDP 셀의 설계를 어떻게 바꿔야만 하는지를 제시했다. 이렇게 하여 당시에 발생했던 PDP 불량 문제를 해결하였다.


PDP나 형광등이 켜지면 그 내부의 가스는 플라즈마(plasma) 상태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PDP를 플라즈마(plasma) 디스플레이 패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난 플라즈마 물리학을 전공한 박사 학위자였고, 내 특기는 플라즈마의 상태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PDP 셀의 내부 상태를 물리적인 수식으로 모델링한 후 그 수식을 풀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이와 같이 내 전공은 실험 쪽보다는 다분히 이론 쪽에 치우쳐져 있었다. 따라서 내 업무 성격은 실물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사업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내가 사업팀에 있었던 이유는 회사 차원의 전략 때문인데, 회사는 PDP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앙연구소에서 PDP를 연구하던 모든 인력을 PDP 사업팀에 배치했었다. 다행히도 당시의 사업팀장님께서는 나처럼 이론을 하는 사람이 사업팀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기에 나도 큰 어려움 없이 사업팀에서 일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사업팀장님께서는 선행기술개발파트라는 조직을 만들어 일종의 연구소 성격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셨고 나도 그 조직에 소속되었다. 그 덕분에 내 능력들을 실제의 상품 개발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중앙연구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사업팀 내에서 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달리 해석하면 사업팀에는 필요 없는 잉여 인력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다. PDP '사업팀'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 연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PDP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작동 중에 있는 PDP 셀의 '문턱 전압'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내는 일이었다. 이 계산 결과를 PDP 개발에 직접 적용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약간이나마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계산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어느 누구도 이것이 가능하리라고 보지는 않았었다. PDP 셀의 구조가 복잡한 것도 문제였지만, PDP를 동작시키는 과정 중의 문턱 전압을 계산해 낸다는 것은 발상 조차 하기 어려운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아주 복잡한 세 종류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그 프로그램들은 문턱전압계산 프로그램, 플라즈마 방전 프로그램, 가스의 이온화 관련 데이타 프로그램들이다. 다행히도 난 세 종류의 프로그램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문턱전압계산 프로그램은 내가 직접 코딩을 하여 개발했다. 플라즈마 방전 프로그램은 회사 중앙연구소의 시뮬레이션 연구팀에서 이 방면의 대가인 프랑스 교수를 통하여 확보했다. 다음으로 가스의 이온화 관련 데이타 프로그램은 일본 홋카이도 대학에서 이것만 연구하시는 전문가 교수님께 위탁 과제를 주어 확보했다. 돌이켜보니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겐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이렇게 하여 난 내가 구상했던 'PDP 셀의 문턱전압 계산 프로그램'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곧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이는데, 이는 마치 제목에서 언급한 '손질 잘 된 프로그램', 즉 '잘 준비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겠다.




프로그램들을 완성한 후, 난 이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수 있는 연구 테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곧바로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당시에 일명 '비내림'이라 불렸던 화면 불량 문제였다. 이 불량은 해상도가 높은 PDP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생되기 시작했다. 아주 밝은 화면이 계속될 때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꺼져버리는 셀들이 발생하면서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불량이었다. 난 직감적으로 이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불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 화면에서는 PDP 셀의 방전이 세게 일어나 플라즈마가 더 많이 발생하고 이웃 셀 간에도 플라즈마 간섭이 일어나 문턱전압을 상당히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내 프로그램은 그러한 현상을 정량적으로 시뮬레이션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니, 이것은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 타이밍이 절묘했다. 하늘이 나를 돕는 듯했다. 내가 프로그램을 완성하자마자 이 문제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개발파트는 비내림 불량 때문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셀의 설계를 어떻게 변경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PDP 셀의 설계 변수는 (좀 극적으로 과장하자면) 수십 개나 되는데, 그 변수들 중 어느 것을 변경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략 의심 가는 변수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제조파트에서는 개발파트에게 명확한 설계 변경의 근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제조파트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성과도 없이 뺑뺑이만 도는 노가다 작업을 계속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개발파트는 쉽게 설계를 변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의심이 가는 변수가 골치를 더 아프게 했다. 이것을 변경하자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메탈 마스크를 새로 제작해야 하는데, 그것만의 제작비용이 팔천만 원 정도였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제작 비용이 아니라, 제작 시간이었다. 새로 마스크를 제작하려면 꽤 많은 시일을 필요로 했고, 그러면 해당 PDP 모델을 출품하기로 약속했던 전자전 일정을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이 설계 변경으로 '비내림' 불량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불량 문제를 접하자마자, 나도 곧바로 시뮬레이션 계산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뮬레이션이란 것이 마냥 쉬운 작업만은 아니다. 수많은 변수들 각각에 대해서 그 값을 조금씩 변경해 가며 프로그램을 돌려야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또 분석해야 한다. 데이터 분석이 끝나야 그때부터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본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 아무튼 시간이 엄청 많이 드는 '노가다' 작업이 필수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업팀에서 필요로 하는 타이밍을 못 맞출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비장의 무기들이 있었다. 난 박사 학위 시절부터 플라즈마 거동 프로그램 개발만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know-how도 연구했었다. 즉, 설계 변수가 아주 많을 경우, 최소의 '노가다'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해 놓은 것이다. 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테마는 아니었지만, 난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이 더 재미있었다. 아무튼 난 변수들을 자동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거기에서 나온 데이터들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나만의 '시뮬레이션 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뮬레이션해야 할 설계 변수들이 수십 개이든 수백 개이든 내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know-how'는 나만의 특기 중의 하나였다.

내가 갖고 있던 또 한 가지 무기는 'hgraph'라는 그래픽 툴이었다. (이전 글 '프로그래밍의 즐거움' 참조.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공모대전에서 수상을 한 프로그램임.). 학위와는 전혀 무관한 이 프로그램의 개발 때문에 내 박사학위도 상당히 늦어졌는데, 뒤늦게 회사 업무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hgraph'에는 수십 종류 데이터의 그래프를 A4 용지 한 페이지 내에 순식간에 그려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 기능이 큰 장점으로 활용되었다. 데이터 분석 시 그래프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해지는데, hgraph가 금번의 불량 분석 문제에 딱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hgraph'도 나만의 특기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난 나만의 특기들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수십 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 보고서에는 PDP 방전 셀의 각 설계 변수들이 '문턱전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상세하게 분석되어 있다. 그리고 아주 밝은 화면이 연속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이유 때문에 '비내림' 불량이 발생하는지도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적어 넣었다.


"비내림 불량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셀의 변수 중 'OO'의 값을 A에서 B로 변경하면 된다."


다행히도 내가 변경을 제시한 설계 변수는 메탈 마스크를 새로 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고, 제조파트에서 즉시 실행해 볼 수 있는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개발파트나 제조파트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내 보고서는 그냥 하나의 보고서를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내 보고서에 대한 사업팀장님의 결제 코멘트가 모든 조직을 움직이게 만들었고, 내 보고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자.

"홍플마 선임의 제안을 즉시 실행하시오"

내 보고서에 대한 사업팀장의 결재 코멘트였다. 명령을 받은 수신인란에는 개발파트, 제조파트, 품질파트 등의 조직 내 모든 파트장들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난 지금도 이 결재 코멘트를 읽던 순간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사업팀 내에서 무위도식만 하는 '월급 루팡'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는데 이 보고서를 통하여 회사에 조금이나마 빚을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사학위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내 노력과 능력들이 실질적인 제품 개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비내림 불량 문제가 정확하게 내 제안에 의해서 해결되었는지 아닌지를 난 정확하게 모른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다른 방법으로 해결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내림 불량 문제는 내 보고서 이후 사라졌고, 그 외 몇 가지 간접적인 증거들 때문에 내 제안이 비내림 불량의 결정적인 해결책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을 내 무용담 형식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비내림 불량 문제의 해결에 내 보고서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내가 정확하게 모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에 난 내 공치사를 하기 싫어서 일부러 비내림 불량 문제를 PDP 팀 내에서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더구나 비내림 불량 문제가 사라진 이후 사업팀 내 어느 누구도 이것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나서서 들쑤시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또한 이후에라도 비내림 불량 문제의 해결에 내가 절대적인 공헌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필요 없는 일이 되었다. 왜냐하면 얼마 후 난 퇴사를 했고 PDP계를 완전히 떠났기 때문이다.


난 PDP 팀에서 세 개의 난제를 풀어낸 후 PDP계를 떠난다. PDP라는 상품의 개발 전체를 놓고 보면, 이 문제들은 아주 작은 미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자랑해도 될 만한 것들이라 생각하여 회고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이 글에서 언급된 비내림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 경험은 내게 큰 자부심을 준다. 이 문제를 위해 작성한 내 보고서를 난 아름다운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박사 학위 학창 시절부터 갈고닦아온 모든 능력들이 총체적으로 사용되었고, 불량의 원인과 해결책을 아주 명쾌하게 분석해 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제 막 만들어진 PDP가 맨 처음 스위치를 켜는 순간 파괴되어 버리는 불량이었으며 두 달 넘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후에 문제가 내게까지 공개된 후, 내 아이디어로 풀어내기는 했지만 약간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업팀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골치 아팠던 난제를 해결한 것이기에 성과만으로 보면 대단한 것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PDP 개발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고 일종의 멘사급 고급 퍼즐과 같은 문제였다. '이미 만들어진 PDP의 가스 압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문제였는데 모든 사람이 해법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난 이 문제도 풀어냈다. 이 문제의 해법은 수학적인 완결성을 갖춘 아름다움 그 자체라 생각되어 더욱 사랑스럽다.

이렇게 나름대로 성과를 내던 내가 갑자기 PDP계를 떠나게 되는 것은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필연일 수밖에 없었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PDP계를 떠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내 퇴사를 다루는 다른 글에서 얘기할 예정이다.

난 퇴사한 후 LCD BLU(LCD용 백라이트) 업종으로 이직했다. 당시 LCD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호시탐탐 PDP의 아성이라고 여겨지고 있던 대형 평판 TV 시장에의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이렇듯 LCD BLU 분야에서는 새롭게 연구해야 할 테마도 엄청 많았다. 그곳에서 난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연구 개발들을 주도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중의 하나로 장영실상을 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젊음을 바쳐 일했던 PDP계를 떠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현명하게 판단했음이 증명된다. PDP가 LCD와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의 사업팀장님이 무척 고마우신 분이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일부러 나를 아껴서 나를 편하게 지내게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바쁜 사업팀 내에서 어찌 보면 필요 없을 수도 있는 인력인 내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퇴사한 이후로는 사업팀장님을 만나 뵌 적이 없어 당시의 나를 기억은 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내가 '비내림 불량 문제'와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난 확실한 활용성도 모른 채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왔었는데, 비내림 문제를 통해서 그것들의 유용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완성 시기와 비내림 문제의 발생 시기가 우연히 일치한 것도 행운이었다. 또한 박사 학위 시절에, 박사 학위 연구가 지체되는 가운데서도 취미 삼아 개발해 놓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모두 유용하게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도 행운이었다. 그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면서 했던 고생들이 작게나마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회사에 작게나마 보답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경험들을 통하여 아들에게 교훈적으로 말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언제쯤 아들이 이 글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즐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손질 잘 된 램프>가 되도록 노력해둬야 한다."

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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