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PDP 시절 1 (난제 해결사)
본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PDP(Plasma Display Panel)의 작동 원리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PDP는 형광등과 거의 비슷하게 동작한다. 예를 들어, 50인치 PDP를 보면 50인치 평면상에 수백만 개의 작은 형광등들이 깔려 있어 이 형광등들을 개별적으로 껐다 켰다 하며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후로는 이 '형광등'을 'PDP 셀'이라 부르기로 한다.)
형광등을 켜고자 전기 스위치를 누르면 형광등의 양 끝단 사이에는 전압이 걸리는데 이 전압이 특정값보다 커야만 형광등이 켜진다. 이보다 작은 전압으로는 형광등은 절대로 켜지지 않는다. 이렇게 형광등을 켤 수 있는 전압을 우리는 '문턱 전압'이라고 부른다. PDP를 작동시킨다 함은 PDP 셀들에 문턱 전압보다 큰 전압을 걸어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어떤 PDP 셀의 문턱 전압이 작동 과정에서 높아져 버리면, 이 PDP 셀은 더 이상 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PDP 화면은 엉뚱한 화면으로 일그러져 나타날 것이다.
본 글에서는 갑자기 일그러진 화면이 나타나는 PDP의 불량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선 난 이 특정 셀들의 문턱 전압이 높아져버린 이유를 밝혀냈다.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핵심 사항인데, 문턱 전압이 높아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PDP 셀의 설계를 어떻게 바꿔야만 하는지를 제시했다. 이렇게 하여 당시에 발생했던 PDP 불량 문제를 해결하였다.
난 PDP 팀에서 세 개의 난제를 풀어낸 후 PDP계를 떠난다. PDP라는 상품의 개발 전체를 놓고 보면, 이 문제들은 아주 작은 미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자랑해도 될 만한 것들이라 생각하여 회고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이 글에서 언급된 비내림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 경험은 내게 큰 자부심을 준다. 이 문제를 위해 작성한 내 보고서를 난 아름다운 예술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박사 학위 학창 시절부터 갈고닦아온 모든 능력들이 총체적으로 사용되었고, 불량의 원인과 해결책을 아주 명쾌하게 분석해 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제 막 만들어진 PDP가 맨 처음 스위치를 켜는 순간 파괴되어 버리는 불량이었으며 두 달 넘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후에 문제가 내게까지 공개된 후, 내 아이디어로 풀어내기는 했지만 약간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업팀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골치 아팠던 난제를 해결한 것이기에 성과만으로 보면 대단한 것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PDP 개발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고 일종의 멘사급 고급 퍼즐과 같은 문제였다. '이미 만들어진 PDP의 가스 압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문제였는데 모든 사람이 해법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난 이 문제도 풀어냈다. 이 문제의 해법은 수학적인 완결성을 갖춘 아름다움 그 자체라 생각되어 더욱 사랑스럽다.
이렇게 나름대로 성과를 내던 내가 갑자기 PDP계를 떠나게 되는 것은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필연일 수밖에 없었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PDP계를 떠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내 퇴사를 다루는 다른 글에서 얘기할 예정이다.
난 퇴사한 후 LCD BLU(LCD용 백라이트) 업종으로 이직했다. 당시 LCD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호시탐탐 PDP의 아성이라고 여겨지고 있던 대형 평판 TV 시장에의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이렇듯 LCD BLU 분야에서는 새롭게 연구해야 할 테마도 엄청 많았다. 그곳에서 난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연구 개발들을 주도적으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중의 하나로 장영실상을 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젊음을 바쳐 일했던 PDP계를 떠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현명하게 판단했음이 증명된다. PDP가 LCD와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