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PDP 시절 2 (또 하나의 난제를 풀어내다)
본 회고록은 '우리집 추억담' 문집에 넣을 생각으로 쓴 것이라 내 일기 같은 성격의 글이다. 이 글에는 작위적이라 느껴질 정도의 자기 업적을 자랑하는 내용도 들어있고 남들에게 밝히기 싫었던 흑역사나 내 성격상의 단점도 들어있다. 이런 개인적인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이유는 좀 더 정제된 글을 쓰자는 생각에서다. 또한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 아닌 실제 있었던 사실 그대로의 얘기를 쓰고자 함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내 내면의 갈등들을 글로나마 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마흔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황당해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는 내게 수만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묵묵히 내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었다. 아내는 '먹고살만한 정도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되 그 이상의 억지스러운 성공을 좇지는 말자. 삶의 목표를 낮춰서 흘러가는 대로 즐겁게 살자'라는 행복관을 갖고 있기에 내가 무엇을 계획하든 다 받아주었다. 함께 살아온 세월 내내 항상 나를 응원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사업팀장님께서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신다는 것은 내 능력을 크게 신뢰한다는 것이니 이번 일을 잘 해내면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한번 해볼까?'
'하지만 저쪽 회사에 갑자기 못 간다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이 팀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넘쳐나므로 나하나 빠져도 괜찮잖아. 나 같은 이론가는 사업팀 성격에 맞지도 않고.'
'난 이런 큰 회사에서 승진 경쟁을 버텨낼 재간이 없어. 부장까지만도 까마득한데 임원은 언감생심이지. 더구나 임원이 되려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능력이 필요한데 내겐 그런 능력이 없잖아. 정치력도 부족하고.
저쪽 회사에서는 임원 직급과 함께 개인 차량도 준다고 하니, 나이 마흔에 이런 좋은 대우를 받기가 쉽지 않잖아.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해. 더구나 주말 부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이 이후의 내 진로는 PDP와는 대척점이 되는 LCD(액정) 쪽이었고 LCD의 핵심 부품인 BLU(Back Light Unit) 업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했던 것을 뿌리치고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 상당히 무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판명이 난다. 어차피 난 PDP를 계속할 수는 없고 새로운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PDP라는 상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LCD에 밀려서.
내가 LCD BLU 쪽으로 옮겨간 후 BLU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계의 핫이슈가 되었고, 난 온갖 종류의 새로운 BLU들을 주도적으로 연구 개발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직한 그 회사가 한국 BLU 연구 개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아주 확실한 중견기업이었다. 그리고 난 회사를 대표하여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위원회등 다양한 공식적인 대외 활동들을 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PDP를 계속했다면 나라는 존재는 회사 내 아주 작은 모래알 하나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 회사에서는 내 존재감이 확실했고 (별 의미는 없지만) BLU 업종에서 내 이름을 알릴 수도 있었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몇 년 후 S그룹 계열사 중 한 곳에 임원으로 스카우트될 뻔하는 재미있는 일도 일어났다. 그들의 신규 사업인 BLU의 사업부장 후보로 나를 타진해 온 것이다. 헤드 헌터를 통해서 내게 문의가 왔었는데 난 거절했다. 그들의 BLU는 상품화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더 이상 연락이 없었는데 아마도 그들도 나를 후보에서 제외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PDP팀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PDP팀에게도 나에 대한 평가 문의가 왔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평가가 좋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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