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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퇴사 이유는 어디로 갔을까?

회고록: PDP 시절 2 (또 하나의 난제를 풀어내다)

by 홍플마
본 회고록은 '우리집 추억담' 문집에 넣을 생각으로 쓴 것이라 내 일기 같은 성격의 글이다. 이 글에는 작위적이라 느껴질 정도의 자기 업적을 자랑하는 내용도 들어있고 남들에게 밝히기 싫었던 흑역사나 내 성격상의 단점도 들어있다. 이런 개인적인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이유는 좀 더 정제된 글을 쓰자는 생각에서다. 또한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 아닌 실제 있었던 사실 그대로의 얘기를 쓰고자 함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내 내면의 갈등들을 글로나마 전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마흔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황당해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는 내게 수만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묵묵히 내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었다. 아내는 '먹고살만한 정도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되 그 이상의 억지스러운 성공을 좇지는 말자. 삶의 목표를 낮춰서 흘러가는 대로 즐겁게 살자'라는 행복관을 갖고 있기에 내가 무엇을 계획하든 다 받아주었다. 함께 살아온 세월 내내 항상 나를 응원해 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본 글은 첫 직장이었던 국내 전자회사의 PDP(Plasma Display Panel) 사업팀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서 이전글(회고록: 손질 잘 된 프로그램)에 이어지는 글이다. 이번 글에서는 또 하나의 난제를 풀어낸 성과와 곧바로 이어지는 퇴사 과정이 회고된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더구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던 시점에 갑자기 왜 퇴사를 했을까?




"홍플마 선임, 요즘 신규 모델에서 화면 불량이 생겼다는 얘기는 들었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홍선임이 TFT를 구성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데, 할 수 있겠지? TFT 멤버는 PDP 내에서 홍선임이 원하는 대로 누구든지 뽑을 수 있도록 해주겠네. 6명 정도면 될 듯한데, 어떤가?"

사업팀장님께서 갑작스럽게 나를 호출하더니 하신 말씀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느닷없는 지시였기에, 난 엉겁결에 '예'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난 대답이 잘못되었다는 현실을 자각한 후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난 퇴사하기로 마음을 굳혀 놓은 상태였고 더구나 이직해 갈 회사와도 근무 조건에 대한 협의가 마무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업팀장님께서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신다는 것은 내 능력을 크게 신뢰한다는 것이니 이번 일을 잘 해내면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한번 해볼까?'
'하지만 저쪽 회사에 갑자기 못 간다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이 팀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넘쳐나므로 나하나 빠져도 괜찮잖아. 나 같이 이론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업팀 성격에 맞지도 않고.'
'난 이런 큰 회사에서 승진 경쟁을 버텨낼 재간이 없어. 부장까지만도 까마득한데 임원은 언감생심이지. 더구나 임원이 되려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능력이 필요한데 내겐 그런 능력이 없잖아. 정치력도 부족하고.'
'저쪽 회사에서는 임원 직급과 함께 개인 차량도 준다고 하니, 나이 마흔에 이런 좋은 대우를 받기가 쉽지 않잖아.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계속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해야만 한다. '내가 퇴사해야 할 이유'가 수십 개도 넘지 않았던가? 그 이유들이 갑자기 사라질리는 없다. 그랬던 내가 퇴사를 망설였던 이유는 간단했다. PDP 팀 내의 누구든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파격적인 권한이 나를 혹하게 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금번의 불량 문제를 꼭 풀어보고 싶다는 바램도 있었다. 그러나 난 떠나야 했다. 새 직장은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였기에, 주말 부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반드시 떠나야 했던 것이다.


잠시 후 난 되돌아가 퇴사 의사를 밝혔고, 뜻밖인지라 사업팀장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그 이후 나와 인사파트는 수차례의 미팅을 가졌는데, 난 이직해 가는 회사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면서 횡설수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라도 이직 계획이 불발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인사파트가 최종 정리한 내 퇴사 사유는 다음으로 추측된다.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지친 상태라 휴식기를 갖고자 퇴사'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여 난 내 첫 직장과 결별을 한다.

사실 인사파트의 결론은 잘못된 추론이다. 난 회사에 대한 불만보다는 나에 대한 불만이 더 컸다. 사업팀내에서의 애매한 내 위치에 대한 불만이었다. 따라서 나에게 변화를 줘야만 했다.


이 이후의 내 진로는 PDP와는 대척점이 되는 LCD(액정) 쪽이었고 LCD의 핵심 부품인 BLU(Back Light Unit) 업종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했던 것을 뿌리치고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 상당히 무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현명했던 것으로 귀결된다. PDP라는 상품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LCD에 밀려서. 즉, 내가 퇴사를 안했더라도 난 PDP를 계속할 수는 없고 새로운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었는데, 아주 타이밍 좋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내가 LCD BLU 쪽으로 옮겨간 후 BLU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계의 핫이슈가 되었고, 난 내 물리 지식을 활용하여 온갖 종류의 새로운 BLU들을 주도적으로 연구 개발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직한 그 회사가 한국 BLU 연구 개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아주 확실한 중견기업이었다. 그리고 난 회사를 대표하여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위원회등 다양한 공식적인 대외 활동들을 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PDP를 계속했다면 나라는 존재는 회사 내 아주 작은 모래알 하나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 회사에서는 내 존재감이 확실했고, (별 의미는 없지만) BLU 업종에서 내 이름을 알릴 수도 있었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몇 년 후 내가 다녔던 회사 그룹의 계열사 중 한 곳에 임원으로 스카웃될 뻔하는 재미있는 일도 일어났다. 내가 나올 때는 과장이었는데, 그 사이 몸 값이 올라간 모양이다. 그들이 신규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던 신기술 BLU 사업의 사업부장 후보로 나를 타진해 온 것이다. 헤드 헌터를 통해서 내게 문의가 왔었는데 난 거절했다. 난 여전히 그런 조직에서는 쉽게 살아남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BLU는 상품화 가능성이 매우 어렵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 이후 더 이상 연락이 없었는데 아마도 그들도 나를 후보에서 제외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PDP팀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PDP팀에게도 나에 대한 평가 문의가 왔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평가가 좋았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난 그들을 저버리고 경쟁 업종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좀 길어졌지만, 여기까지가 본 글의 서론이다.

이 서론을 보면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기는데, 이 궁금증을 해소하는 내용으로 글을 풀어가고자 한다.

첫번째 궁금증은, 왜 사업팀장님이 내게 중차대한 TFT 권한을 맡기려고 했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그랬을까?

둘째는, 내가 왜 퇴사를 해야만 했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안정된 대기업에서 왜 롱런할 생각을 안 했을까? 더구나 사업팀장님이 절대적인 신임을 보여줬는데 말이다.




사업팀장님은 왜 내게 불량 해결 TFT 권한을 맡기려고 했을까?


내가 유달리 똑똑해서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당시 PDP 사업팀 내에는 말고도 박사급 인력들이 넘쳐났었다. 똑똑한 해외 박사들도 많았다. 더구나 나는 PDP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부서도 아니었다. 난 선행기술파트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 부서는 '내 업무는 내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의 연구소 성격의 별동대였다. 이 부서에서 난 PDP 플라즈마의 물리현상들을 시뮬레이션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즉 내 업무는 실질적인 제품 개발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이런 내게 사업팀장님이 중책을 맡기려 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전의 내 활약들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난 우연치 않은 기회에 PDP팀을 괴롭히고 있던 치명적인 불량 문제들을 해결해 냈었다.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풀어낸 것이다. 과장하여 자화자찬을 해보자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던 PDP팀을 고민을 깨끗하게 해결해 준 것이다. 물론 내가 아니었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그들도 답을 찾아낼 수는 있었으리라. 하지만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너무 늦어지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한 일들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적절한 시간 내에 문제들을 해결해 냈다는 것이다. 내가 풀어낸 문제들 중 두 가지만 살펴보자.


이전글(회고록: 손질 잘 된 프로그램)에서 난 자칭 '비내림'이라 불렸던 불량 현상을 해결한 성과를 소개했었다. 내가 개발한 여러 프로그램들복합적으로 활용하여 비내림 불량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PDP 팀에서는 이 불량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개발 일정도 시급했었기에 내 공헌은 매우 큰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성과로 인해서 내 위상이 올라가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불량이 없어지자 PDP 팀은 다시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마치 언제 불량이 있었느냐는 모습이었다. 나 자신도 이것을 내 성과라고 내세우지 않았기에, 이 불량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즉 내 성과는 조용히 묻혀 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후였다. 또 하나의 심각한 불량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난 별동대 소속이었기에 이러한 불량 문제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제가 너무 장기화되자 어느날 사업팀내 모두에게 공개되었고, 이 문제에 대해서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해결하기로 했다.

난 당연히 이 불량 대책 회의에 참석했다. 우선 불량이 발생하고 있는 공정을 맡고 있는 담당부서에서 불량 현상에 대해서 설명했다. 불량의 내용은 정체모를 과방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공개회의에서는 해결책에 대한 작은 실마리조차 전혀 찾지 못했다. 불량 상황을 공유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날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이 회의에는 조건이 달렸다. 이 회의에서 나온 제안은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적용해 본다는 것이었다. 회의에는 나를 포함하여 단 네 명 정도만이 참석했다. 개발 파트, 제조 파트 등과 나였다. 난 전날 밤 불량의 발생 이유를 다각도로 추정해 보면서 그에 대한 대책안을 하나 만들어 회의에 참석했다. PDP에 인가되는 전압들의 조건을 과방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효과가 있으리라는 자신은 없었다. 내가 추론한 방전 현상이 물리학적으로 확실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추정일 뿐이었다. 염려했던 대로 내가 대책안을 제시했을 때 해당 공정의 담당자는 반대를 했다. 자신들이 이미 다 해본 방법으로서 전혀 쓸모없는 방법이라고 했다. 내가 제시한 전압 조건으로는 과방전이 문제가 아니라 PDP가 아예 켜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실망했다. 이제 회의는 소강상태가 되었고, 이번 불량은 영원한 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저쪽 구석에서 흥분된 한마디 외침이 들렸다.

'해결이 됐어요. 불량이 안생겨요.'

그랬다. 이 회의에는 조건이 있었다. 이 회의에서 나온 제안은 무조건 시도해 본다는 조건이 있었다. 나와 공정 담당자 간에 '되네, 안되네'를 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던 중, 개발 담당자가 내 제안을 적용해 본 것이었다. 내 추론이 맞았다. (담당부서가 했을 때는 왜 안 됐었을까? 미스테리다.)

아무튼 이렇게 난 또 하나의 난제를 풀어냈다. 하지만 PDP 셀 내에서 일어나는 방전이 내 이론대로 일어났는지 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결과는 맞았지만 과정은 정확하게 모른다는 얘기다. 추론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난 이 성과에 대해서는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렇더라도 이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 불량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라. 생산되는 모든 PDP가 못쓰게 되어 버리면, 그 손실이 큰 것도 문제였지만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었다. 난 PDP 팀에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이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비내림 불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경우에도 불량이 없어지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PDP 팀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내 성과도 조용히 잊혀졌다.


정리하자면 난 아무도 풀지 못하는 불량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을 해결해 내는 해결사였다. PDP 방전 이론에 대해서 누구 못지않은 명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불량 방전들의 문제점들을 간파해 낸 것이다. 그런 내 능력을 인정한 사업팀장님께서는 또 하나의 플라즈마 방전 문제가 발생하자 즉시 나를 해결사로 투입하려 했던 것이다.





이제 두 번째 궁금증을 풀어보자.

이렇게 능력 있는 난 왜 퇴사를 해야만 했을까?


당시에 아내와 지인들에게 말했던 내 퇴사 이유는 수십 개나 되었다. 이유가 왜 이렇게 많을까? 그것은 '자발적 구조조정'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내 퇴사를 합리화시키는 그럴 듯한 핑계가 필요했고, 이런저런 핑계를 찾다 보니 그 수가 계속 늘어난 것이다.

여기서 '자발적 구조조정'이란 무엇일까?


당시에 회사에서는 전사 간부 교육이란 것을 가끔 했었다. 합숙까지 해가며 진행될 때도 있었다. 이러한 교육은 간부들의 업무 능력 향상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난 이런 교육들을 통하여 내 자신의 현 위치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 결과 '나'라는 사람은 구조조정해야 할 인력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였다. 이 교육에는 중간중간 초청 강연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이 강연들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이 강연들의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략 이런 내용들이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당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러운 모습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과 꿈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기 바랍니다.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인생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강연은 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현재가 만족스럽습니까'라는 질문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PDP 사업팀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난 난제를 풀어가는 연구 개발을 좋아했고 그것이 프로그래밍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더욱 좋았다. 하지만 제조업 중심의 PDP 사업팀에서 이러한 성격의 업무를 계속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되었다. 즉, 앞으로의 내 입지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고, 언젠가는 도태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은 PDP 사업팀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내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구조조정해버리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이후 난 조용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PDP 팀에서 마음이 떠난 순간 내가 퇴사해야만 할 이유는 수십 개나 되었었다. 워라밸을 찾기 위해서, 주말부부에서 탈출하고자, 전문 프로그래밍 개발직으로 전공을 바꾸기 위해서 등등. 난 이후에도 여러번 직장을 옮겼는데,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어느 때나 퇴사의 이유는 단 한 개였든 듯하다. 내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자.


이제 이 긴 글을 마무리해보자.


회사에 다니는 젊은 후배들이 가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며 고민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있었다.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며 비젼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럴 때면 난 어김없이 말한다. 그대로 버티라고. 그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더 험난한 정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그리고 퇴사라는 행위도 버릇이 된다고. 내가 그랬다고.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정작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 충고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퇴사 여부를 고민했던 당시의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이 문제의 답은 뻔하다. 난 분명히 그냥 퇴사해 버릴 것이다. 회사 내에서 내 입지가 불안해지는 경우가 발생하면, 나는 자존심을 지키는 그런 인생을 택할 것이 확실하다. 내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조직에 계속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내 인생의 전체 역정을 돌이켜보니 내가 퇴사를 했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퇴사한다고 한 것은 사실은 그 이유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란 것이 무엇이냐면 ...

아내가 가끔 나를 놀리는 말이 하나 있다. 내 관심사의 지속성에 대한 것이다.

"이번에는 뭐에 빠졌어? 이번에는 한 6개월은 갈까?"

그랬다. 난 한가지 일에 꾸준히 집중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취미 활동이 그랬고, 장기적으로는 직업이 그랬다. 돌이켜보니 난 한 직장에서 5년 이상을 넘겨 근무한 적이 별로 없다. 한 직장에서 약 5년 정도 지나면 새로운 분야를 해보고 싶어하는 본능이 강하게 치고 나왔었다. 난 전공도 과감하게 바꾼 바 있고, 직업도 대학과 기업간을 오간 바 있다. 본 글의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PDP 업계에서 LCD 업계로 바꾼 바 있다. 당시 PDP는 새롭게 대형 평판 TV 시장을 열어가는 미래가 보장될 듯한 분야였으나, 난 PDP에서는 내 능력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LCD의 백라이트 분야를 넘겨본 것이다.


다행히도 아내는 내가 변신을 시도할 때마다 묵묵하게 나를 응원해주었다. 그랬기에 내가 퇴사를 할 때마다 내 퇴사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반대도 없이 새 출발 하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 사실 S사에서의 퇴사도 무모한 퇴사로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내에게 진짜로 미안한 마음이다. 배우자로서 믿음감을 주지 못하는 이런 돌발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당시에 아내가 퇴사를 말렸다면 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더 치열한 경쟁속에서 승리하는 형태일 수도 있었고 또 어쩌면 그것이 더 성공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물론 완전히 몰락한 삶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의미없다. 중요한 것은 난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이 좋다는 사실이다. 아내와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정말로 행복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러한 삶에 이르게 도와준 아내가 진심으로 고맙다.


결론적으로 인생이란 길에는 어떤 쪽이 더 좋다라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길로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하나의 삶이 된다. 어떤 경로를 밟는 삶이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인생이 아니겠는가?


끝.


(2023년 7월 1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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